기획특집

[FF MAGAZINE] FOREVER 최남선

  • 09.12.09 / 운영자


 

 

출판기획자이자 북디자이너 최남선. 그가 성취해낸 여타의 성과에 비하면 별거 아닌 것으로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나에게는 진정 시대를 앞선 그의 면모가 바로 이것이 아닐까 싶다. 물론 출판인 최남선에 대해선 이미 많은 연구가 이루어져왔다. 하지만 대개는 문화적, 역사적 의의를 다루고 있어 기획자와 디자이너로서의 면모는 잘 드러나 있지 않다. 그 당시에는 오늘날 우리가 즐겨 쓰는 기획자이니 디자이너이니 하는 말도 없었다. 우리는 90년대 이후에야 비로소 기획이니 디자인이니 하는 것에 주목하기 시작했으니, 90년대 이전에 최남선에게서 이런 면모를 발견하는 것이 애당초 불가능했을 것이다. 그러니 놀라운 일이다. 기획이니 디자인이니 하는 개념이 없던 100년 전에 그는 기획과 디자인에서 경이로운 ‘사건’이라 할 만한 성취를 해냈으니 말이다. 책에 대한 그의 발상은 혁신적이었고 기획의 의도는 정확했다. 디자인은 더할 나위 없이 세련된 것이었다. 이제 그가 펼쳐낸 출판기획과 디자인의 세계를 들여다보자.

 

 

 

 

혼자서 잡지를 만들다

<소년>이라는 잡지는 우리 근대시의 출발점인 ‘해(海)에게서 소년(少年)에게’가 실린 잡지로 유명하다. 이 잡지를 최남선이 만든 때가 1908년이니, 그의 나이 19살이었다. 18살이라는 나이에 최남선은 신문관 이라는 출판사를 세우고, 그 1년 뒤,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잡지를 출간한 것이다. 잡지를 낸다는 것은 오늘날에도 대단한 기획력과 준비가 없이는 엄두도 낼 수 없는 작업이다. 잡지는 그 출판사의 정체성을 명확하게 드러내는 측면이 강하고, 그런 만큼 출판사를 어떻게 운영할지에 대한 장기적인 플랜이 마련되어 있어야 한다. 또한 단행본 책들에 미칠 파급효과도 섬세하게 고려해야 한다. 한 마디로 말해서 고도로 전략적인 사업인 것이다. 그래서 잡지는 한 사람의 노력만으로 절대로 이루어질 수 없다. 하나의 주제를 일관되게 전개하는 단행본들과는 달리, 잡지는 다양한 읽을거리와 볼거리를 제공해야 하는 탓에 여러 인사들이 참여해야만 가능한 미디어다.
최남선은 잡지에 관한 이 모든 상식을 뒤엎는다. 그는 19살 나이에 혼자서 잡지를 만들어낸다. 잡지에 수록되는 모든 글을 혼자서 썼고, 편집, 디자인 역시 그가 직접 다했다. 인쇄 역시 그가 상당부분 관여했던 것으로 보인다. 잡지를 혼자서 내다니! 정신 나간 사람이라 할 만하다. 그냥 장난 삼아 한번 해본 것이라면 이해해 줄 수 있을까. 하지만, 최남선 혼자서 만든 잡지 <소년>은 우리 출판 역사에서 믿을 수 없는 성과를 일궈낸다. 당대의 어떤 잡지와도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뛰어난 잡지를 만들어낸 것이다. 잡지 <소년>이 출간된 11월 1일을 ‘잡지의 날’로 지정하여 기념할 정도이니 말이다.

 

 

<소년>, 19세 열정이 빚은 숭고하고 아름다운 실패작!


우선 이 잡지는 출간 당시에 철저하게 실패했다! 창간호가 6부 팔렸고, 2호가 14부 팔렸다고 하니, 독자를 확보하는 데서 <소년>은 두말할 나위 없는 대 실패작이었다. 하지만 우리는 <소년>을 그렇게 평가할 수가 없다. 그러기에는 잡지 <소년>이 우리 출판의 역사에 미친 영향이 너무 크기 때문이다. 굳이 실패라고 한다면, 그것은 너무나 숭고하고 아름다운 실패였다고 해야 할까. <소년>은 아직 존재하지 않는 독자들을 새로 만들어내고자 했다. 당시의 잡지들은 정치나 종교상의 학회와 같은 단체를 배경으로 해서 사실상 회원을 대상으로 한 회보에 가까운 것이었다. 다른 말로 하자면 당시에 잡지를 볼 만한 대중독자들은 없었던 것이다. 대중독자들이 볼 수 있는 잡지가 존재하지 않았으니 실패는 당연한 이치일 것이다.
존재하지 않는 대중독자를 대상으로 만든 종합 잡지 <소년>은 기획으로 치자면 이보다 황당한 경우가 있을까 싶다. 그렇다. 보통 사람이라면 결코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어쩌면 19세의 열정만이 할 수 있는 일이었는지도 모른다. 그에게는 불가능한 것으로 보이는 일을 가능하게 만들어야 할 이유가 있었고, 그리곤 과감하게 그 일을 해낸 것이다. 마침내 창간 1주년이 될 즈음에는 독자들이 200여 명으로 늘어나게 되고, 그들은 모두 <소년>의 열성 독자들로 탄생하게 된다. 소년 혹은 청소년이 잡지의 독자층이 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을 할 수 없을 때, 그래서 어떤 잡지도 청소년을 독자로 상정하지 않을 때, 최남선은 그 비어 있음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정확하게 인식하고 있었다. 그래서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과감하게 실행한 것이다. 이제 조선에서 독자로 탄생한 200여 명의 청소년은 새로운 안목으로 세계를 보고, 그래서 더 이상 자조와 탄식으로 비분강개하는 세상에서 진취적인 기상을 가진 새로운 독자, 새로운 세대로 거듭난다. 어떤 잡지가 이만한 일을 해낼 수 있겠는가.

 

 

 

 

새로운 대중독자들을 위한 기획

 

당시의 신문이나 인쇄매체는 당시 조선의 상황에서 가장 긴요한 것이 ‘정치’라고 여겼다. 그래서 이런 매체들에서는 철저하게 글이 중심적이며 이미지는 거의 보이지 않는다. 글도 대개의 경우 한문이 주를 이루고 있어 새로운 시대의 근대적 독자들을 견인하기에는 지나치게 고루한 느낌이 들었을 것이다.
최남선은 새로운 시대에 맞는 근대적 독자들이 어떤 사람들이고, 그들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그리고 그들에게 효과적으로 다가설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인지를 매우 진지하게 고민했다. 오늘날 기획자가 가져야 가장 기본적인 태도, 즉 생산자보다는 독자를 훨씬 더 중요하게 고려해야 하는 것들을 정확하게 꿰뚫고 있었다. 그래서 <소년>에서는 교조적이고 권위적인 태도를 찾아볼 수 없다. 일방적으로 자기주장을 설파하는 글도 찾아볼 수 없다. <소년>은 세계에 대한 정보와 정세를 바탕으로 스스로 적극적인 계몽에 참여할 수 있는 독자를, 활동적이고 진취적이고 발명적인 독자들을 상정하고 있다. <소년>이 우리 잡지의 역사에서 기념비적인 성취를 이룬 것도 기획자로서의 최남선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소년>에서 최남선은 구체적으로 어떻게 기획자다운 면모를 펼쳐 보이는지 살펴보자. 우선 표지를 보자. 컬러가 눈에 들어온다. 그것도 연두색과 분홍색이다. 흑백으로 내는 잡지조차 몇 권 없었던 때에 <소년>의 표지가 시각적으로 얼마나 대범한지를 한눈에 알려주기에 충분하다. 새로운 세대에 맞는 새로운 감수성을 과감하게 표현하고 있다. 그런데 더욱 놀라운 점은 이처럼 화려한 색을 사용하면서도 그것은 매우 절제되어 있다는 것이다. 19살의 나이에 과감한 패기를 드러낼 때 자칫 과잉으로 나타나기 쉬울 터이지만, 최남선은 스스로를 매우 절제된 방식으로 다스리고 있다. 그래서 100년이 지난 지금 봐도 눈에 거슬리는 것이 전혀 없고, 시대에 뒤떨어진 느낌도 들지 않는다.

 

 

 

 

표지를 넘겨서도 <소년>다운 특징을 바로 알 수 있다. 사진과 그림을 과감하게 도입하여 읽는 책이 아닌 ‘보는 책’ 으로써의 면모를 혁신적으로 펼쳐 보이고 있다. 최남선은 이미지의 힘, 사진의 힘을 정확하게 인식하고 있었다. 당시의 신문이나 책에서 사진이 등장하는 경우를 발견하기란 쉽지 않다. 그런데 최남선은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사진 한 장으로 강력하게 전달하고 있다. 정치적인 메시지를 글로써 전달하고자 할 때 생기는 문제들, 이를테면 그 장황함이나 일제의 검열 등의 문제도 사진을 통해 해결하고 있다. 창간호의 표지를 넘기면 <일본에 유학하시는 황태자 전하와 태사 이등박문공>이라는 표제의 사진이 권두사진으로 실려 있다. 최남선은 사진의 제목과 내용을 교묘하게 비틀어 사용하고 있다. 즉 엄혹한 검열의 시선을 피하기 위해 제목은 짐짓 일제에 순응하는 듯한 시늉을 하지만, 그 사진을 통해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당시 조선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쉽게 알 수 있는 것이다. 당시 조선이 처한 상황, 조선이 당면한 문제가 무엇인지를 이보다 명징하게 환기해주는 것이 있을까? 이 사진 뒤에 등장하는 <나이아가라 폭포>나 러시아의 <페터 대제>의 사진 역시 근대로 들어선 조선에서 청소년들이 무엇을 구가해야 하는지를 간단하게 말해주고 있다.

 

 

육전소설, 더할 수 없이 매혹적인 기획

 

최남선은 잡지 <소년>을 야심차게 펴내고 있는 와중에 또 다른 기획을 실행하니, 그것이 바로 우리나라 최초의 문고본인 ‘십전총서’다. 십전총서는 여러 사정으로 <걸리버유람기>, <산수격몽요결> 두 권밖에 출간하지는 못했다. 그럼에도 ‘십전’이라는 말에서 최남선이 노리고 있는 기획의 요점이 무엇인지를 잘 알 수 있다. 십전총서에서 미처 다 성취하지 못한 그의 기획력은 1912년에 ‘육전소설’이라는 새로운 문고본에서 성취된다. 육전소설은 십전총서와 달리 대단한 성공을 거둔다. 잡지 <소년>이 아직 존재하지 않은 대중 독자층을 만들어내기 위한 기획이었다면, 육전소설은 이미 존재하는 대중 독자들을 겨냥한 기획이었다. 당시 일명 ‘딱지본’이라는 형태로 출간된 많은 고대 소설들이 대중 독자들의 주요한 읽을 거리로 자리 잡고 있었으니, 육전소설은 바로 이 독자들을 대상으로 한 기획이었다.
육전소설은 딱지본과 어떻게 다른가? 무엇보다도 ‘육전소설’이라는 발상 자체가 신선하다. 당시의 딱지본 가격이 평균 20~30전이었던 것에 비추어볼 때, 최남선이 발간한 소설의 가격 ‘육전’은 딱지본의 1/3~1/4에 불과하다. 저러고도 망하지 않았을까 걱정이 들 정도다(육전소설에는 기획 취지를 실은 글이 있는데, 책을 통해 턱없는 이익을 탐하는 세태를 질타하고 있다). 참신함을 넘어서 일견 무모해 보이는 이러한 기획은 어떤 연유에서일까? 그의 관심사는 조선의 역사와 문화를 많은 조선 사람들이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그는 조선의 역사와 문화와 관계된 책뿐만 아니라 세계의 명작들을 번역해 시리즈로 간행하기도 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독자들의 책에 대한 접근성을 획기적으로 높여야 한다. ‘육전’이라는 가격을 전면에 표방한 그의 전략은 바로 이러한 목적에서 만들어진 것이다.

 

 

 

 

오늘날 ‘한국학’을 정립한 사람으로 평가받는 최남선은 누구보다도 유구한 역사에서 만들어낸 조선의 갖가지 서책들을 현대적으로 보급하고자 했고, 많은 독자들이 그것의 중요성을 알고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을 자신의 사명이라 여겼다. 조선 사람 누구나 가격에 부담을 느끼지 않고 양질의 책을 읽게 만드는 것, 그것이 육전소설에 대한 최남선의 기획 의도였다. 육전소설은 기획의 참신성도 놀랍지만 그 진정성에서 책을 만드는 이의 열정, 나아가서 시대적 소명의식까지 느끼게 한다.
우리는 육전소설이 ‘육전’이라는 말에서 환기될 수 있는 값싼 책일 것이라는 짐작을 버려야 한다. 최남선의 육전소설은 디자인, 종이, 인쇄 상태 등에서 당시의 어떤 딱지본도 필적할 수 없는 경지를 보여준다. 최남선이 만든 육전소설들은 지금 서점에 내놓아도 전혀 손색이 없을 만큼 디자인이나 편집의 원칙 등이 철저하게 독자 중심으로 이루어져 있고, 바로 이런 요소 때문에 현대적이고 세련된 느낌을 준다.

 

 

 



 

 

육전소설의 표지부터 살펴보자. 육전소설의 디자인은 모두 통일적이다. 표지에서부터 본문에 이르기까지 통일된 느낌을 제공하는 것은 오늘날의 총서 기획에서도 결코 쉽지 않은 문제이다. 당시의 딱지본들과 비교해볼 때, 딱지본들이 요란하게 표지를 장식하고 있는 반면에 최남선이 만든 육전소설은 이제 막 시작한 근대출판의 성과물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고전적인 권위와 모던한 절제미가 견고하게 구현되어 있다. 그 견고함이 100년이 지난 지금까지 힘을 잃지 않고 있으니 기념비적인 책이라 할 만하다. 당시에는 거의 찾아볼 수 없는 고딕 계열의 서체를 제목에서 활용하고 있는 점이나, 아르누보 풍의 문양에 붉은색과 진청색을 보색 대비로 활용하고 있는 디자인은 아무리 보아도 질리지 않을 성 싶다 .
이뿐만이 아니다. 제작이라는 물질적인 프로세스에서도 육전소설은 단연 돋보인다. 100년이 지나도 그 상태 그대로 유지하는 책을 만들기는 지금 형편으로도 쉽지 않다. 최남선은 양질의 책을 만들기 위해 가장 좋은 잉크와 종이를 이용했다 한다. 그 덕택에 당시의 책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번짐 등의 현상이 육전소설에서는 전혀 찾아볼 수가 없다.

 

 

 

 

종이 문제 역시 지금 남아 있는 다른 딱지본들은 쉽게 바스러져 만지기가 두렵지만, 육전소설의 경우 100년이 지난 지금도 바스러짐이나 변색 등이 거의 없으니 그저 놀라울 뿐이다.
독자들이 편안한 글 읽기를 할 수 있기 위해선 적절한 줄 간격과 글씨 크기, 그리고 적절한 여백이 필수적이다. 육전소설에서 우리는 오늘날 책의 교과서라고 할 만한 안정된 틀을 볼 수 있다. 이러한 틀은 당시의 어떤 책에서도 볼 수 없는 것이다. 최남선이 책을 읽는 독자 입장에서 얼마나 고심했는지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그러한 고민들을 90년대 이후에야 우리 출판계는 본격적으로 하기 시작하니, 최남선의 진정한 기획자다운 면모가 얼마나 선구적이었는지를 되새겨보게 한다.

 
최남선이 만들어낸 책들은 범접하기 힘들 만큼 방대하다. 여기에서는 그가 초기에 만든 몇몇 책에 국한해 기획자로서, 그리고 디자이너로서의 최남선을 살펴보았을 뿐이다. 최남선이 100년 전에 이룩해 놓았던 성과들은 지금도 여전히 유효하다. 기획자로서, 그리고 디자이너로서 책에 대한 태도, 독자들에 대한 태도, 시대적 요구에 대한 인식 등 그의 전방위적 고민과 실천은 아직까지도 살아있는 귀감이다.
 


[FF MAGAZINE] FOREVER 최남선


 

 

출판기획자이자 북디자이너 최남선. 그가 성취해낸 여타의 성과에 비하면 별거 아닌 것으로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나에게는 진정 시대를 앞선 그의 면모가 바로 이것이 아닐까 싶다. 물론 출판인 최남선에 대해선 이미 많은 연구가 이루어져왔다. 하지만 대개는 문화적, 역사적 의의를 다루고 있어 기획자와 디자이너로서의 면모는 잘 드러나 있지 않다. 그 당시에는 오늘날 우리가 즐겨 쓰는 기획자이니 디자이너이니 하는 말도 없었다. 우리는 90년대 이후에야 비로소 기획이니 디자인이니 하는 것에 주목하기 시작했으니, 90년대 이전에 최남선에게서 이런 면모를 발견하는 것이 애당초 불가능했을 것이다. 그러니 놀라운 일이다. 기획이니 디자인이니 하는 개념이 없던 100년 전에 그는 기획과 디자인에서 경이로운 ‘사건’이라 할 만한 성취를 해냈으니 말이다. 책에 대한 그의 발상은 혁신적이었고 기획의 의도는 정확했다. 디자인은 더할 나위 없이 세련된 것이었다. 이제 그가 펼쳐낸 출판기획과 디자인의 세계를 들여다보자.

 

 

 

 

혼자서 잡지를 만들다

<소년>이라는 잡지는 우리 근대시의 출발점인 ‘해(海)에게서 소년(少年)에게’가 실린 잡지로 유명하다. 이 잡지를 최남선이 만든 때가 1908년이니, 그의 나이 19살이었다. 18살이라는 나이에 최남선은 신문관 이라는 출판사를 세우고, 그 1년 뒤,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잡지를 출간한 것이다. 잡지를 낸다는 것은 오늘날에도 대단한 기획력과 준비가 없이는 엄두도 낼 수 없는 작업이다. 잡지는 그 출판사의 정체성을 명확하게 드러내는 측면이 강하고, 그런 만큼 출판사를 어떻게 운영할지에 대한 장기적인 플랜이 마련되어 있어야 한다. 또한 단행본 책들에 미칠 파급효과도 섬세하게 고려해야 한다. 한 마디로 말해서 고도로 전략적인 사업인 것이다. 그래서 잡지는 한 사람의 노력만으로 절대로 이루어질 수 없다. 하나의 주제를 일관되게 전개하는 단행본들과는 달리, 잡지는 다양한 읽을거리와 볼거리를 제공해야 하는 탓에 여러 인사들이 참여해야만 가능한 미디어다.
최남선은 잡지에 관한 이 모든 상식을 뒤엎는다. 그는 19살 나이에 혼자서 잡지를 만들어낸다. 잡지에 수록되는 모든 글을 혼자서 썼고, 편집, 디자인 역시 그가 직접 다했다. 인쇄 역시 그가 상당부분 관여했던 것으로 보인다. 잡지를 혼자서 내다니! 정신 나간 사람이라 할 만하다. 그냥 장난 삼아 한번 해본 것이라면 이해해 줄 수 있을까. 하지만, 최남선 혼자서 만든 잡지 <소년>은 우리 출판 역사에서 믿을 수 없는 성과를 일궈낸다. 당대의 어떤 잡지와도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뛰어난 잡지를 만들어낸 것이다. 잡지 <소년>이 출간된 11월 1일을 ‘잡지의 날’로 지정하여 기념할 정도이니 말이다.

 

 

<소년>, 19세 열정이 빚은 숭고하고 아름다운 실패작!


우선 이 잡지는 출간 당시에 철저하게 실패했다! 창간호가 6부 팔렸고, 2호가 14부 팔렸다고 하니, 독자를 확보하는 데서 <소년>은 두말할 나위 없는 대 실패작이었다. 하지만 우리는 <소년>을 그렇게 평가할 수가 없다. 그러기에는 잡지 <소년>이 우리 출판의 역사에 미친 영향이 너무 크기 때문이다. 굳이 실패라고 한다면, 그것은 너무나 숭고하고 아름다운 실패였다고 해야 할까. <소년>은 아직 존재하지 않는 독자들을 새로 만들어내고자 했다. 당시의 잡지들은 정치나 종교상의 학회와 같은 단체를 배경으로 해서 사실상 회원을 대상으로 한 회보에 가까운 것이었다. 다른 말로 하자면 당시에 잡지를 볼 만한 대중독자들은 없었던 것이다. 대중독자들이 볼 수 있는 잡지가 존재하지 않았으니 실패는 당연한 이치일 것이다.
존재하지 않는 대중독자를 대상으로 만든 종합 잡지 <소년>은 기획으로 치자면 이보다 황당한 경우가 있을까 싶다. 그렇다. 보통 사람이라면 결코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어쩌면 19세의 열정만이 할 수 있는 일이었는지도 모른다. 그에게는 불가능한 것으로 보이는 일을 가능하게 만들어야 할 이유가 있었고, 그리곤 과감하게 그 일을 해낸 것이다. 마침내 창간 1주년이 될 즈음에는 독자들이 200여 명으로 늘어나게 되고, 그들은 모두 <소년>의 열성 독자들로 탄생하게 된다. 소년 혹은 청소년이 잡지의 독자층이 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을 할 수 없을 때, 그래서 어떤 잡지도 청소년을 독자로 상정하지 않을 때, 최남선은 그 비어 있음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정확하게 인식하고 있었다. 그래서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과감하게 실행한 것이다. 이제 조선에서 독자로 탄생한 200여 명의 청소년은 새로운 안목으로 세계를 보고, 그래서 더 이상 자조와 탄식으로 비분강개하는 세상에서 진취적인 기상을 가진 새로운 독자, 새로운 세대로 거듭난다. 어떤 잡지가 이만한 일을 해낼 수 있겠는가.

 

 

 

 

새로운 대중독자들을 위한 기획

 

당시의 신문이나 인쇄매체는 당시 조선의 상황에서 가장 긴요한 것이 ‘정치’라고 여겼다. 그래서 이런 매체들에서는 철저하게 글이 중심적이며 이미지는 거의 보이지 않는다. 글도 대개의 경우 한문이 주를 이루고 있어 새로운 시대의 근대적 독자들을 견인하기에는 지나치게 고루한 느낌이 들었을 것이다.
최남선은 새로운 시대에 맞는 근대적 독자들이 어떤 사람들이고, 그들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그리고 그들에게 효과적으로 다가설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인지를 매우 진지하게 고민했다. 오늘날 기획자가 가져야 가장 기본적인 태도, 즉 생산자보다는 독자를 훨씬 더 중요하게 고려해야 하는 것들을 정확하게 꿰뚫고 있었다. 그래서 <소년>에서는 교조적이고 권위적인 태도를 찾아볼 수 없다. 일방적으로 자기주장을 설파하는 글도 찾아볼 수 없다. <소년>은 세계에 대한 정보와 정세를 바탕으로 스스로 적극적인 계몽에 참여할 수 있는 독자를, 활동적이고 진취적이고 발명적인 독자들을 상정하고 있다. <소년>이 우리 잡지의 역사에서 기념비적인 성취를 이룬 것도 기획자로서의 최남선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소년>에서 최남선은 구체적으로 어떻게 기획자다운 면모를 펼쳐 보이는지 살펴보자. 우선 표지를 보자. 컬러가 눈에 들어온다. 그것도 연두색과 분홍색이다. 흑백으로 내는 잡지조차 몇 권 없었던 때에 <소년>의 표지가 시각적으로 얼마나 대범한지를 한눈에 알려주기에 충분하다. 새로운 세대에 맞는 새로운 감수성을 과감하게 표현하고 있다. 그런데 더욱 놀라운 점은 이처럼 화려한 색을 사용하면서도 그것은 매우 절제되어 있다는 것이다. 19살의 나이에 과감한 패기를 드러낼 때 자칫 과잉으로 나타나기 쉬울 터이지만, 최남선은 스스로를 매우 절제된 방식으로 다스리고 있다. 그래서 100년이 지난 지금 봐도 눈에 거슬리는 것이 전혀 없고, 시대에 뒤떨어진 느낌도 들지 않는다.

 

 

 

 

표지를 넘겨서도 <소년>다운 특징을 바로 알 수 있다. 사진과 그림을 과감하게 도입하여 읽는 책이 아닌 ‘보는 책’ 으로써의 면모를 혁신적으로 펼쳐 보이고 있다. 최남선은 이미지의 힘, 사진의 힘을 정확하게 인식하고 있었다. 당시의 신문이나 책에서 사진이 등장하는 경우를 발견하기란 쉽지 않다. 그런데 최남선은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사진 한 장으로 강력하게 전달하고 있다. 정치적인 메시지를 글로써 전달하고자 할 때 생기는 문제들, 이를테면 그 장황함이나 일제의 검열 등의 문제도 사진을 통해 해결하고 있다. 창간호의 표지를 넘기면 <일본에 유학하시는 황태자 전하와 태사 이등박문공>이라는 표제의 사진이 권두사진으로 실려 있다. 최남선은 사진의 제목과 내용을 교묘하게 비틀어 사용하고 있다. 즉 엄혹한 검열의 시선을 피하기 위해 제목은 짐짓 일제에 순응하는 듯한 시늉을 하지만, 그 사진을 통해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당시 조선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쉽게 알 수 있는 것이다. 당시 조선이 처한 상황, 조선이 당면한 문제가 무엇인지를 이보다 명징하게 환기해주는 것이 있을까? 이 사진 뒤에 등장하는 <나이아가라 폭포>나 러시아의 <페터 대제>의 사진 역시 근대로 들어선 조선에서 청소년들이 무엇을 구가해야 하는지를 간단하게 말해주고 있다.

 

 

육전소설, 더할 수 없이 매혹적인 기획

 

최남선은 잡지 <소년>을 야심차게 펴내고 있는 와중에 또 다른 기획을 실행하니, 그것이 바로 우리나라 최초의 문고본인 ‘십전총서’다. 십전총서는 여러 사정으로 <걸리버유람기>, <산수격몽요결> 두 권밖에 출간하지는 못했다. 그럼에도 ‘십전’이라는 말에서 최남선이 노리고 있는 기획의 요점이 무엇인지를 잘 알 수 있다. 십전총서에서 미처 다 성취하지 못한 그의 기획력은 1912년에 ‘육전소설’이라는 새로운 문고본에서 성취된다. 육전소설은 십전총서와 달리 대단한 성공을 거둔다. 잡지 <소년>이 아직 존재하지 않은 대중 독자층을 만들어내기 위한 기획이었다면, 육전소설은 이미 존재하는 대중 독자들을 겨냥한 기획이었다. 당시 일명 ‘딱지본’이라는 형태로 출간된 많은 고대 소설들이 대중 독자들의 주요한 읽을 거리로 자리 잡고 있었으니, 육전소설은 바로 이 독자들을 대상으로 한 기획이었다.
육전소설은 딱지본과 어떻게 다른가? 무엇보다도 ‘육전소설’이라는 발상 자체가 신선하다. 당시의 딱지본 가격이 평균 20~30전이었던 것에 비추어볼 때, 최남선이 발간한 소설의 가격 ‘육전’은 딱지본의 1/3~1/4에 불과하다. 저러고도 망하지 않았을까 걱정이 들 정도다(육전소설에는 기획 취지를 실은 글이 있는데, 책을 통해 턱없는 이익을 탐하는 세태를 질타하고 있다). 참신함을 넘어서 일견 무모해 보이는 이러한 기획은 어떤 연유에서일까? 그의 관심사는 조선의 역사와 문화를 많은 조선 사람들이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그는 조선의 역사와 문화와 관계된 책뿐만 아니라 세계의 명작들을 번역해 시리즈로 간행하기도 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독자들의 책에 대한 접근성을 획기적으로 높여야 한다. ‘육전’이라는 가격을 전면에 표방한 그의 전략은 바로 이러한 목적에서 만들어진 것이다.

 

 

 

 

오늘날 ‘한국학’을 정립한 사람으로 평가받는 최남선은 누구보다도 유구한 역사에서 만들어낸 조선의 갖가지 서책들을 현대적으로 보급하고자 했고, 많은 독자들이 그것의 중요성을 알고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을 자신의 사명이라 여겼다. 조선 사람 누구나 가격에 부담을 느끼지 않고 양질의 책을 읽게 만드는 것, 그것이 육전소설에 대한 최남선의 기획 의도였다. 육전소설은 기획의 참신성도 놀랍지만 그 진정성에서 책을 만드는 이의 열정, 나아가서 시대적 소명의식까지 느끼게 한다.
우리는 육전소설이 ‘육전’이라는 말에서 환기될 수 있는 값싼 책일 것이라는 짐작을 버려야 한다. 최남선의 육전소설은 디자인, 종이, 인쇄 상태 등에서 당시의 어떤 딱지본도 필적할 수 없는 경지를 보여준다. 최남선이 만든 육전소설들은 지금 서점에 내놓아도 전혀 손색이 없을 만큼 디자인이나 편집의 원칙 등이 철저하게 독자 중심으로 이루어져 있고, 바로 이런 요소 때문에 현대적이고 세련된 느낌을 준다.

 

 

 



 

 

육전소설의 표지부터 살펴보자. 육전소설의 디자인은 모두 통일적이다. 표지에서부터 본문에 이르기까지 통일된 느낌을 제공하는 것은 오늘날의 총서 기획에서도 결코 쉽지 않은 문제이다. 당시의 딱지본들과 비교해볼 때, 딱지본들이 요란하게 표지를 장식하고 있는 반면에 최남선이 만든 육전소설은 이제 막 시작한 근대출판의 성과물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고전적인 권위와 모던한 절제미가 견고하게 구현되어 있다. 그 견고함이 100년이 지난 지금까지 힘을 잃지 않고 있으니 기념비적인 책이라 할 만하다. 당시에는 거의 찾아볼 수 없는 고딕 계열의 서체를 제목에서 활용하고 있는 점이나, 아르누보 풍의 문양에 붉은색과 진청색을 보색 대비로 활용하고 있는 디자인은 아무리 보아도 질리지 않을 성 싶다 .
이뿐만이 아니다. 제작이라는 물질적인 프로세스에서도 육전소설은 단연 돋보인다. 100년이 지나도 그 상태 그대로 유지하는 책을 만들기는 지금 형편으로도 쉽지 않다. 최남선은 양질의 책을 만들기 위해 가장 좋은 잉크와 종이를 이용했다 한다. 그 덕택에 당시의 책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번짐 등의 현상이 육전소설에서는 전혀 찾아볼 수가 없다.

 

 

 

 

종이 문제 역시 지금 남아 있는 다른 딱지본들은 쉽게 바스러져 만지기가 두렵지만, 육전소설의 경우 100년이 지난 지금도 바스러짐이나 변색 등이 거의 없으니 그저 놀라울 뿐이다.
독자들이 편안한 글 읽기를 할 수 있기 위해선 적절한 줄 간격과 글씨 크기, 그리고 적절한 여백이 필수적이다. 육전소설에서 우리는 오늘날 책의 교과서라고 할 만한 안정된 틀을 볼 수 있다. 이러한 틀은 당시의 어떤 책에서도 볼 수 없는 것이다. 최남선이 책을 읽는 독자 입장에서 얼마나 고심했는지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그러한 고민들을 90년대 이후에야 우리 출판계는 본격적으로 하기 시작하니, 최남선의 진정한 기획자다운 면모가 얼마나 선구적이었는지를 되새겨보게 한다.

 
최남선이 만들어낸 책들은 범접하기 힘들 만큼 방대하다. 여기에서는 그가 초기에 만든 몇몇 책에 국한해 기획자로서, 그리고 디자이너로서의 최남선을 살펴보았을 뿐이다. 최남선이 100년 전에 이룩해 놓았던 성과들은 지금도 여전히 유효하다. 기획자로서, 그리고 디자이너로서 책에 대한 태도, 독자들에 대한 태도, 시대적 요구에 대한 인식 등 그의 전방위적 고민과 실천은 아직까지도 살아있는 귀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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