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특집

[FF MAGAZINE] FIELD TRIP Books & NewYork City

  • 09.12.09 / 운영자

세상에는 수 많은 종류의 책들이 존재합니다. 많은 출판사와 작가, 예술가들이 존재하고 각자 다른 목적을 가지고 책을 찍어내고 있습니다. 아니, 사실 이들은 대부분 같은 목적을 가지고 있습니다. 책을 만들고 이것을 팔아서 또 책을 찍고 생계를 유지하려는 목적 말이죠. 그것 이외에 자신이 만들고 있는 책에 대한 자부심까지 가질 수 있다면 더 좋겠죠. 그러나 애석하게도 모든 책이 그러한 목적으로 만들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이 글을 쓰는 저는 정보를 전달하거나 대중들에게 팔릴만한 책을 만드는 것에 대해서는 별로 관심이 없습니다. 아니 이게 무슨 소리냐고요? 저는 이 글을 통해 200~300권 정도의 책만 찍어내는 그런 출판 문화에 대해 이야기해보려고 합니다.

 

 

 

이러한 책을 지칭하는 용어가 딱히 정의되어 있지는 않지만, 이렇게 소규모로 찍어내는 책을 ‘소규모 자주출판’(Small Self-publishing)이라고 부릅니다. 책을 만들고는 싶은데 아무도 찍어주는 사람이 없을때, 자기가 알아서 책을 기획하고 디자인하고 제작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러한 출판물은 서점에서 하나의 상품으로 유통된다기 보다는 하나의 운동(movement)처럼 시작됩니다. 아마추어 밴드 활동을 하는 직장인이 늘어나는 것처럼 자기가 스스로 출판 기술을 배워서 책을 만드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이렇게 책을 만드는 사람들은 책을 만들어서 돈을 벌려고 하는 것은 아닙니다. 지적 허영심 때문일 수도 있고 혹은 자기가 만든 책을 남에게 보여주고 싶어서 일 수도 있고요. 자기 방 책꽂이에 꽂아 두고 흐믓하게 바라보고 싶어 책을 만들 수도 있겠죠. 그러면 이런 생각이 들죠. “아니 아무도 사지 않는 책을 찍는 건 자원 낭비 아니야?” 뭐 맞습니다. 자원 낭비죠. 하지만 자기 돈으로 자기가 책을 찍는데 누가 말리겠습니까? 그걸 규제하는 법이 있는 것도 아니니까요. 하지만 신기하게도 이렇게 만들어지는 책이 점점 많아지고 있습니다. 그것도 전 세계적으로 말이죠.

 
그 이유로 들 수 있는 첫 번째는 출판 기술의 발전입니다. 예전에는 정말 프로페셔널한 전문가들이 책을 만들 수 있었지만 이제 컴퓨터 프로그램이 발달하고 인쇄 방법도 단순해지면서 비교적 싼 값에 책처럼 생긴 무언가를 만들 수 있게 되었습니다. 여러분들도 마음만 먹으면 한 달 정도 아르바이트를 뛰고 책을 하나 만들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도와주는 사회적인 시스템도 점점 발전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또 다른 이유로는 사회적으로 이렇게 쓸데없어 보이는 결과물을 바라보는 시선이 누그러진 덕도 있습니다. 과거에는 개인보다 집단이 중요했습니다. 개인의 생각이나 아이디어 같은 것은 집단에 의해 쉽게 무시되었죠. 그러나 이제는 집단만큼 개인의 생각도 쉽게 무시하기 힘듭니다. 그 결과 개인의 생각을 출판하는 행위도 그렇게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게 된 것이고요. 블로그를 생각해보면 쉽게 이해될 겁니다. 요즘에는 파워 블로거들이 늘어나고 그들이 책을 만드는 경우도 많아졌죠. 블로그 같은 개인 매체처럼 출판도 점점 더 개인적인 매체가 되어가고 있습니다.
 

솔직히 이렇게 만들어지는 책들이 전부 읽을만 한 것은 아닙니다. 정말 자원 낭비인 쓰레기들도 많습니다. 하지만 저는 개인적으로 이러한 문화가 더욱 활성화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왜냐고요? 이건 다양한 생각과 아이디어가 사회 안에서 발표되고 받아 들여진다는 증거이고, 이러한 플랫폼의 유지는 그만큼 그 사회가 건강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현상이기 때문입니다. 사실 이런 출판물이 지금 한국에서 유행하고 있다고 말하긴 힘듭니다. 그러나 유럽이나 미국, 일본 같은 비교적 앞서고 자율적인 문화를 가진 나라 안에서는 소규모 자주출판 문화가 더욱 활성화되어 있습니다. 물론 이들 나라 역시 자주출판가들의 경제적 사정은 어렵습니다.

 

 

 

이제 진짜 이 글의 정체를 밝혀보겠습니다. 저는 미디어버스(www.mediabus.org)라는 소규모 출판사를 운영하고 있으며 2009년 뉴욕아트북페어에 참가하고 왔습니다. 뉴욕은 독특하고 재미있는 출판 문화를 가진 도시입니다. 그러한 자양분 안에서 문화적 다양성과 저력이 나오는 것이고요. 우리가 뉴욕을 문화적인 강점을 가진 도시로 생각하는 이유가 뉴욕에 유명한 예술가들이 많이 살고 세계적인 박물관이나 갤러리가 많기 때문만은 아닙니다. 오히려 뉴요커들 한 명 한 명이 자신만의 문화적 취향을 가지고 예술을 읽어내는 능력이 뛰어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저는 그러한 능력의 바탕에는 책을 사랑하고 즐기는 뉴요커들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뉴욕 지하철 안의 풍경은 우리와 많이 다릅니다. 낡고 냄새나는 지하철 안에서 뉴요커들은 핸드폰 대신 책을 들고 있습니다. (지하철 안에 전화가 터지지 않는다는 소리를 나중에 들었죠) 저희는 지하철을 나와서 여기저기 걸어다녔고 개성있는 많은 서점들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사실 이 글에 나오는 대부분의 서점들은 이렇게 걸어다니면서 ‘우연히’ 만난 인연들입니다. 서울에서 그런 것을 기대하기 위해서는 최소한 2시간, 혹은 방향을 잘못 잡으면 몇 일은 걸어야 합니다. 생각해보세요. 여러분 들은 책을 살때 동네 서점에서 사시나요? 대부분 온라인 서점이나 대형서점으로 가시잖아요? 그러나 뉴욕에서는 20분 정도만 걸으면 개성있고 사랑스럽고 아름다운 서점들을 만날 수 있습니다. 자, 이제 시작해볼까요?
 


 


 

 

 

스트랜드 서점(Strand Bookstore), www.strandbooks.com
828 Broadway (at 12th St.), New York, NY

 
뉴욕에 갔다오신 분들이라면 이 엄청난 규모의 중고서점을 한번 쯤은 방문해 봤을 겁니다. 스트랜드에서 판매하는 책을 쭉 늘어놓으면 18마일, 그러니까 29킬로미터에 달한다고 합니다. 우와, 이거 대단한 겁니다. 뉴욕대학교 근처에 위치해 있는 이 서점은 중고 서적뿐만 아니라 새 책도 할인가에 판매하고 어떤 경우에는 저자 사인이 있는 책들도 판매하고 있습니다. 3층짜리 건물의 2층은 예술 도서를 취급하고 3층에서는 희귀한 고서 등을 전시 판매하고 있습니다. 스트랜드는 뉴욕이라는 도시의 자양분을 먹고 사는 서점입니다. 사실 뉴욕은 전세계에서 온 예술가와 작가, 평론가, 유학생들로 우글우글한 도시이고 그들이 집으로 가기 전에 자신이 가진 책들을 한 권씩만 팔아도 스트랜드 서점의 한 층을 꽉 채울 수 있습니다. 스트랜드의 저력은 여기에서 나오는 거죠.
 

사실 여기에는 세계 어디에서도 구하기 힘든 이상한 책들이 좀 있어요. 이를테면 1976년 한국의 신세계 백화점 갤러리에서 했던 전시 도록이라든지, 일본의 하드코어 망가라든지. 뭐 이런 것들이 수용 가능한 것은 뉴욕이 가지고 있는 지금의 문화적인 파워 때문이겠지만, 뒤집어 생각하면 작고 사소하고 무언가 없어 보이는 것마저도‘차이’로써 소중하게 생각하는 뉴요커들의 마음가짐 때문이 아닐까요?

 

 

 

 

스푼빌 앤 슈가타운 북스토어 (Spoonbill & Sugartown Bookseller), www.spoonbillbooks.com
218 Bedford Avenue, Brooklyn, NY

 
누군가 뉴욕에 가면 윌리엄스 버그라는 동네에 꼭 가보라는 조언을 한 적이 있습니다. 독특한 문화적 취향을 가진, 서울로 치면 홍대앞 이라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여기 윌리엄스버그는 그런 독특한 문화적 취향을 가진 것처럼 보이는 쿨하고 힙한 친구들이 많아요. 재미있고 아기자기한 것들을 파는 작은 가게들과 중고 옷집, 서점, 카페, 바 등이 많이 있죠. 그러나 이 동네가 재미있는 것은 멋진 레스토랑이나 술집이나 옷가게 때문이라기 보다는 이 서점 때문입니다.
 
여기 스푼빌 앤 슈가타운은 디자인을 중심으로 인문, 철학, 사진, 미술, 영화 등 여러 영역에서 소위 ‘엣지’있는 책들을 판매하는 서점입니다. 또한 책을 판매하는 역할 이외에 무언가 재기발랄한 프로젝트도 병행하는 문화 공간의 역할도 병행하고 있습니다.
윌리엄스버그라는 젊은이 들의 동네가 단순히 술집과 커피숍이 있는 공간으로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문화적 힘을 가지고 있는 이유가 단순히 이 서점 때문이라고 말하면 너무 억지겠지만, 저는 그렇게 주장하고 싶습니다. 어쨌든 스푼빌 앤 슈가타운은 무수한 뉴욕의 서점 가운데 가장 취향에 맞았던 곳 이었습니다.
 

 

 

멜빌 하우스 (Melville House), www.mhpbooks.com
145 Plymouth Street, Brooklyn, NY



<백경>이라는 고전을 쓴 작가 허먼 멜빌의 이름을 딴 멜빌 하우스는 출판사가 운영하는 서점입니다. 멜빌 출판사는 주로 고전을 새롭게 디자인 한 시리즈로 인기를 끌고 있습니다. 아실지 모르겠지만, 어떤 작가가 사망한 뒤 50년이 지나면 그 작가가 쓴 글의 저작권은 사라지게 됩니다. 그러면 사실 누구나 그 글을 출판할 수 있어요. 일종의 공공재산이 되는 건데요. 멜빌은 그런 글들을 잘 선택하고 이쁘게 디자인해서 재미를 보는 곳 입니다. 잘 디자인 된 문고판 출판사 정도로 소설과 시의 중간에 있는 별로 무겁지 않은 글들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또한 고전 이외에도 타오 린(Tao Linn) 같은 젊고 재기 발랄한 젊은 작가들의 책도 소개하고 있습니다. 타오 린은 뉴욕의 무라카미 하루키로 불리는 대만 출신의 20대 젊은 작가입니다. 뉴욕의 젊은이들에게 폭발적인 인기를 끌고 있죠.
이 서점이 위치한 브룩클린의 덤보 지구는 예술가들의 스튜디오와 재미있는 서점, 샵들이 모여있는 동네입니다. 윌리엄스버그와 비슷하지만 여기 덤보가 좀 더 조용하고 세련되었죠. 뉴욕의 사무실 렌탈 비용이 워낙 비싸다보니 가난한 예술가들이나 서점, 독립 출판사 등은 맨하튼 도심에서 점점 바깥으로 쫓겨나가는 추세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예술가들이 모이는 동네는 금방 유명해지고 집 값과 땅 값이 오릅니다. 그래서 부동산 업자들은 예술가들의 이동에 대해 매우 민감하게 반응하죠. 어쨌든 가난한 예술가들과 서점이 무슨 돈이 있겠습니까? 그러니 좁은 공간을 빌려서 최대한 공간을 나누고 효율적으로 쓰려고 머리를 굴리죠. 그러다 보니 이렇게 반은 사무실, 반은 서점으로 쓰는 멜빌 하우스 같은 곳이 등장하게 되었습니다.

 


 

 

 

포비든 플래넷 (Forbidden Planet), www.fpnyc.com
840 Broadway, New York, NY

 
스트랜드 서점 옆에는 정말 이상한 서점이 하나 있습니다. 서점이라기 보다는 무슨 피규어 샵 같기도 하고 변태적인 책과 인형을 파는 그런 곳 같기도 하지만요. 히어로 코믹스와 망가, 관련 피규어를 비롯해 성인 남성들이 좋아할만한 장난감을 가득파는 곳, 50년대 SF 컬트 영화의 제목을 따온 포비든 플래닛입니다. 꼭꼭 숨겨진 소우주를 보는 듯한 이곳은 들어가는 순간 ‘우와!’하고 탄성을 지르게 만드는 아이템들로 가득합니다. 또 재미있는 것은 인디 싱글즈(Indie Singles) 섹션인데 우리가 진(zine)이라고 부르는 드로잉, 코믹스 등을 파는 섹션입니다. 정말 그 종류와 수, 분류의 전문성에 놀랐습니다. 대부분 3달러에서 10달러 정도(3천원에서 만원 정도)의 싼 가격에 팔고 있었습니다. 쉽게 이야기하면 아마추어 만화 동호회 ‘팬진’ 같은 것이죠. 어쨌든 이런 소소한 것들도 자신만의 역사를 가지고 오랫동안 운영하면 이렇게 훌륭한 컬렉션이 될 수도 있습니다.
 

 

파워하우스 북스 (Powerhouse Books), www.powerhousebooks.com
37 Main Street, Brooklyn, NY 11201

 

독립서점이라는 말을 들어보셨어요? 뉴욕에는 이러한 독립서점들이 자신의 힘을 한데 모으기 위한 인디펜던트 북셀러(independent booksellers)라는 네트워크가 존재합니다. 우리가 방문한 모든 서점들이 이 네트워크에 소속되어 있는지 알 수는 없지만 최소한 이 파워하우스는 이 네트워크의 한 마디를 차지하는 곳입니다.
앞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덤보 지역은 젊고 가난한 예술가들이 많이 모여사는 곳입니다. 그렇기 때문인지 이곳의 서점들은 맨하튼의 고전적인 서점들과 다르게 모던하고 깔끔한 모양새를 가지고 있어요. 맨하튼은 정말 오래된 역사를 가진 동네이고 뉴요커들은 개발이라는 말을 매우 싫어하기 때문에 대부분의 건물은 낡고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습니다. 반면에 브룩클린이나 브롱스 같은 뉴욕 외곽 지역은 비교적 새로운 건물이 많은 편이죠.

 

 

 

여기 파워하우스의 책은 그렇게 뛰어나지 않지만 파워하우스 아레나라는 이름의 전시장 안에서 지역 작가와 전시를 지속적으로 소개하는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미국 역시 반즈앤노블 같은 대형 서점과 인터넷 서점으로 인해 지역 소규모 서점들의 사정은 힘듭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러한 동네 서점은 지역 문화를 보존하고 기록하는 역할을 하게 됩니다. 여러분의 동네에 30년 동안 서점을 운영하고 있는 분이 있다고 생각해 보세요. 그 서점 주인장은 그 동네의 변화된 모습이나 지역 주민의 변화를 잘 아는 것은 물론 그들의 취향에 맞는 책을 가져다 놓을 수 있을 것입니다. 어쩌면 지역 신문 같은 매체를 만들 수도 있어요. 물론 이런 지역 서점이 특별한 책을 파는 건 아니지만 확실히 더 정겨울 것입니다. 그리고 이것은 뉴요커들에게도 마찬가지인 것 같아요. 인디펜던트 북셀러는 동네 서점에서 책을 사라고 이야기합니다. 반즈앤노블이나 아마존 보다 동네에서 묵묵히 자리를 지키고 있는 동네 서점에서 책을 사라는 캠페인을 하고 있죠. 서점이 지역의 문화와 유기적인 관계를 형성하고 지역의 문화적 정체성의 일부를 담아내는 공간이 된다면 정말 좋을 겁니다. 동네 도서관이 이런 역할을 할 수 있겠지만 서점도 충분히 가능합니다. 실제로 외국의 많은 서점들이 지역의 문화센터처럼 활동하고 있고요. 서울은 어떠냐구요? 솔직히 잘 모르겠네요.

 

 

 

뉴욕 아트북페어 2009

 

이제 <뉴욕 아트북페어 2009>에 대해 이야기해보겠습니다. 이 행사를 설명하기 전에 매년 뉴욕아트북페어를 주최하는 프린티드 매터(Printed Matter)라는 서점에 대해 잠깐 이야기 해야할 것 같네요. 프린티드 매터라면 그러니까 출판된 것이라는 소리인데 그 이름처럼 이 서점(결코 작다고는 할 수 없는)은 종이로 된 것이라면 뭐든지 다 판매하는 곳이에요. 물론 예술가가 만든 책으로 특화되어 있고 전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아트북 서점이긴 하지만 정말 이상한 책들도 많이 팝니다. 포스터나 엽서들도 많구요. 물론 관광지에서 파는 그런 것이 아니라 좀 이상하고 기괴하고 변태적인 그런 엽서들이죠. 올해 뉴욕 아트북페어는 모마가 운영하는 대안공간인 ‘P.S.1’에서 열렸습니다. 모마는 아마 전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미술관 중에 하나일 겁니다. 어쨌든 모마에서 운영하는 대안공간이라 그런지 정말 큽니다. 그러나 미술관 때문에 새로 지은 건물이 아니고 예전에 공장을 개조해서 만든 곳입니다.

 

 

 

 

미국에는 책을 만드는 아마추어 동호회가 세계에서 가장 많은 나라입니다. 그걸 우리는 통상적으로 ‘진(zine)’이라고 부릅니다. 미국은 전세계에서 진 문화가 가장 발달된 나라 가운데 하나이고 그러므로 이에 관련된 전문가들이 꽤 있습니다. 어쨌든 이번 뉴욕아트북페어는 이렇게 아마추어들이 만드는 진을 특별히 조명하는 행사를 가졌습니다. 진에 관심 있는 전문가와 진스터(zinester, 진을 만드는 사람)들이 잔뜩 몰려와서 어떻게 하면 진을 발전시키고 진 도서관을 만들까 등의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뉴욕아트북페어는 개별 출판사나 소규모로 책을 만드는 작가, 퍼블리셔들에 대한 배려가 충분했다고 할 수는 없지만, 저희 미디어버스는 이번 행사에 참여함으로써 소규모 출판 문화, 커뮤니티 문화를 체험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는 4일의 행사 기간 대부분을 손님 접대와 책을 판매하는데 보내야했기 때문에 행사를 제대로 구경하거나, 기대했던 것처럼 친구들을 사귀지는 못했습니다.
 

 

 

예상하다시피 책을 만드는 사람들은 대부분 내성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사실 끼리끼리 노는게 대부분이었어요. 그 결과 이런 출판 문화는 개방적이라기 보다 자기 커뮤니티 안에서 착실하게 발전하게 되죠. 사실 같은 고민을 하는 사람들을 보면 그것 자체가 격려가 되는 경우가 많아요. 그리고 이들이 만드는 책들 역시 마찬가지죠. 이런 책을 보고 있으면 기분이 좋아지고 ‘우리도 더 열심히 책을 만들어야지’ 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리고 많은 영감도 받고요. 마지막 날 우리는 내년을 기약하며 4일의 짧은 일정을 정리해야했습니다.

 
서점과 북페어를 가지고 출판 문화 운운하는 것이 너무 우습게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 어쨌든 이건 매우 작은 시장이고 적은 독자와 책이니까 정말 밀리언 셀러 출판사가 보면 웃고 넘기겠죠. 하지만 이렇게 작고 사소해 보이는 그런 것들이 사회 안에서 받아들여진다면 우리같 은 사람들은 매우 행복할 겁니다. 그리고 기분 좋게 독자들을 만나고, 독자들도 서로 만나고… 그러면서 무언가 재미있는 일도 일어나는 그런 유쾌한 서점을 상상해봅니다. 아직 서울에 그런 곳이 있다는 생각이 들지 않지만 조만간에 생길 수 있을 것 같아요. 여러분들도 이 글을 읽고 다양한 문화를 체험할 수 있는 통로로 이런 소규모 자주출판물을 만나시길 희망해봅니다. 정말 진심으로 말이죠.
 
취재 및 글_임경용 (미디어버스 편집자)
 


[FF MAGAZINE] FIELD TRIP Books & NewYork City

세상에는 수 많은 종류의 책들이 존재합니다. 많은 출판사와 작가, 예술가들이 존재하고 각자 다른 목적을 가지고 책을 찍어내고 있습니다. 아니, 사실 이들은 대부분 같은 목적을 가지고 있습니다. 책을 만들고 이것을 팔아서 또 책을 찍고 생계를 유지하려는 목적 말이죠. 그것 이외에 자신이 만들고 있는 책에 대한 자부심까지 가질 수 있다면 더 좋겠죠. 그러나 애석하게도 모든 책이 그러한 목적으로 만들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이 글을 쓰는 저는 정보를 전달하거나 대중들에게 팔릴만한 책을 만드는 것에 대해서는 별로 관심이 없습니다. 아니 이게 무슨 소리냐고요? 저는 이 글을 통해 200~300권 정도의 책만 찍어내는 그런 출판 문화에 대해 이야기해보려고 합니다.

 

 

 

이러한 책을 지칭하는 용어가 딱히 정의되어 있지는 않지만, 이렇게 소규모로 찍어내는 책을 ‘소규모 자주출판’(Small Self-publishing)이라고 부릅니다. 책을 만들고는 싶은데 아무도 찍어주는 사람이 없을때, 자기가 알아서 책을 기획하고 디자인하고 제작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러한 출판물은 서점에서 하나의 상품으로 유통된다기 보다는 하나의 운동(movement)처럼 시작됩니다. 아마추어 밴드 활동을 하는 직장인이 늘어나는 것처럼 자기가 스스로 출판 기술을 배워서 책을 만드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이렇게 책을 만드는 사람들은 책을 만들어서 돈을 벌려고 하는 것은 아닙니다. 지적 허영심 때문일 수도 있고 혹은 자기가 만든 책을 남에게 보여주고 싶어서 일 수도 있고요. 자기 방 책꽂이에 꽂아 두고 흐믓하게 바라보고 싶어 책을 만들 수도 있겠죠. 그러면 이런 생각이 들죠. “아니 아무도 사지 않는 책을 찍는 건 자원 낭비 아니야?” 뭐 맞습니다. 자원 낭비죠. 하지만 자기 돈으로 자기가 책을 찍는데 누가 말리겠습니까? 그걸 규제하는 법이 있는 것도 아니니까요. 하지만 신기하게도 이렇게 만들어지는 책이 점점 많아지고 있습니다. 그것도 전 세계적으로 말이죠.

 
그 이유로 들 수 있는 첫 번째는 출판 기술의 발전입니다. 예전에는 정말 프로페셔널한 전문가들이 책을 만들 수 있었지만 이제 컴퓨터 프로그램이 발달하고 인쇄 방법도 단순해지면서 비교적 싼 값에 책처럼 생긴 무언가를 만들 수 있게 되었습니다. 여러분들도 마음만 먹으면 한 달 정도 아르바이트를 뛰고 책을 하나 만들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도와주는 사회적인 시스템도 점점 발전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또 다른 이유로는 사회적으로 이렇게 쓸데없어 보이는 결과물을 바라보는 시선이 누그러진 덕도 있습니다. 과거에는 개인보다 집단이 중요했습니다. 개인의 생각이나 아이디어 같은 것은 집단에 의해 쉽게 무시되었죠. 그러나 이제는 집단만큼 개인의 생각도 쉽게 무시하기 힘듭니다. 그 결과 개인의 생각을 출판하는 행위도 그렇게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게 된 것이고요. 블로그를 생각해보면 쉽게 이해될 겁니다. 요즘에는 파워 블로거들이 늘어나고 그들이 책을 만드는 경우도 많아졌죠. 블로그 같은 개인 매체처럼 출판도 점점 더 개인적인 매체가 되어가고 있습니다.
 

솔직히 이렇게 만들어지는 책들이 전부 읽을만 한 것은 아닙니다. 정말 자원 낭비인 쓰레기들도 많습니다. 하지만 저는 개인적으로 이러한 문화가 더욱 활성화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왜냐고요? 이건 다양한 생각과 아이디어가 사회 안에서 발표되고 받아 들여진다는 증거이고, 이러한 플랫폼의 유지는 그만큼 그 사회가 건강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현상이기 때문입니다. 사실 이런 출판물이 지금 한국에서 유행하고 있다고 말하긴 힘듭니다. 그러나 유럽이나 미국, 일본 같은 비교적 앞서고 자율적인 문화를 가진 나라 안에서는 소규모 자주출판 문화가 더욱 활성화되어 있습니다. 물론 이들 나라 역시 자주출판가들의 경제적 사정은 어렵습니다.

 

 

 

이제 진짜 이 글의 정체를 밝혀보겠습니다. 저는 미디어버스(www.mediabus.org)라는 소규모 출판사를 운영하고 있으며 2009년 뉴욕아트북페어에 참가하고 왔습니다. 뉴욕은 독특하고 재미있는 출판 문화를 가진 도시입니다. 그러한 자양분 안에서 문화적 다양성과 저력이 나오는 것이고요. 우리가 뉴욕을 문화적인 강점을 가진 도시로 생각하는 이유가 뉴욕에 유명한 예술가들이 많이 살고 세계적인 박물관이나 갤러리가 많기 때문만은 아닙니다. 오히려 뉴요커들 한 명 한 명이 자신만의 문화적 취향을 가지고 예술을 읽어내는 능력이 뛰어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저는 그러한 능력의 바탕에는 책을 사랑하고 즐기는 뉴요커들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뉴욕 지하철 안의 풍경은 우리와 많이 다릅니다. 낡고 냄새나는 지하철 안에서 뉴요커들은 핸드폰 대신 책을 들고 있습니다. (지하철 안에 전화가 터지지 않는다는 소리를 나중에 들었죠) 저희는 지하철을 나와서 여기저기 걸어다녔고 개성있는 많은 서점들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사실 이 글에 나오는 대부분의 서점들은 이렇게 걸어다니면서 ‘우연히’ 만난 인연들입니다. 서울에서 그런 것을 기대하기 위해서는 최소한 2시간, 혹은 방향을 잘못 잡으면 몇 일은 걸어야 합니다. 생각해보세요. 여러분 들은 책을 살때 동네 서점에서 사시나요? 대부분 온라인 서점이나 대형서점으로 가시잖아요? 그러나 뉴욕에서는 20분 정도만 걸으면 개성있고 사랑스럽고 아름다운 서점들을 만날 수 있습니다. 자, 이제 시작해볼까요?
 


 


 

 

 

스트랜드 서점(Strand Bookstore), www.strandbooks.com
828 Broadway (at 12th St.), New York, NY

 
뉴욕에 갔다오신 분들이라면 이 엄청난 규모의 중고서점을 한번 쯤은 방문해 봤을 겁니다. 스트랜드에서 판매하는 책을 쭉 늘어놓으면 18마일, 그러니까 29킬로미터에 달한다고 합니다. 우와, 이거 대단한 겁니다. 뉴욕대학교 근처에 위치해 있는 이 서점은 중고 서적뿐만 아니라 새 책도 할인가에 판매하고 어떤 경우에는 저자 사인이 있는 책들도 판매하고 있습니다. 3층짜리 건물의 2층은 예술 도서를 취급하고 3층에서는 희귀한 고서 등을 전시 판매하고 있습니다. 스트랜드는 뉴욕이라는 도시의 자양분을 먹고 사는 서점입니다. 사실 뉴욕은 전세계에서 온 예술가와 작가, 평론가, 유학생들로 우글우글한 도시이고 그들이 집으로 가기 전에 자신이 가진 책들을 한 권씩만 팔아도 스트랜드 서점의 한 층을 꽉 채울 수 있습니다. 스트랜드의 저력은 여기에서 나오는 거죠.
 

사실 여기에는 세계 어디에서도 구하기 힘든 이상한 책들이 좀 있어요. 이를테면 1976년 한국의 신세계 백화점 갤러리에서 했던 전시 도록이라든지, 일본의 하드코어 망가라든지. 뭐 이런 것들이 수용 가능한 것은 뉴욕이 가지고 있는 지금의 문화적인 파워 때문이겠지만, 뒤집어 생각하면 작고 사소하고 무언가 없어 보이는 것마저도‘차이’로써 소중하게 생각하는 뉴요커들의 마음가짐 때문이 아닐까요?

 

 

 

 

스푼빌 앤 슈가타운 북스토어 (Spoonbill & Sugartown Bookseller), www.spoonbillbooks.com
218 Bedford Avenue, Brooklyn, NY

 
누군가 뉴욕에 가면 윌리엄스 버그라는 동네에 꼭 가보라는 조언을 한 적이 있습니다. 독특한 문화적 취향을 가진, 서울로 치면 홍대앞 이라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여기 윌리엄스버그는 그런 독특한 문화적 취향을 가진 것처럼 보이는 쿨하고 힙한 친구들이 많아요. 재미있고 아기자기한 것들을 파는 작은 가게들과 중고 옷집, 서점, 카페, 바 등이 많이 있죠. 그러나 이 동네가 재미있는 것은 멋진 레스토랑이나 술집이나 옷가게 때문이라기 보다는 이 서점 때문입니다.
 
여기 스푼빌 앤 슈가타운은 디자인을 중심으로 인문, 철학, 사진, 미술, 영화 등 여러 영역에서 소위 ‘엣지’있는 책들을 판매하는 서점입니다. 또한 책을 판매하는 역할 이외에 무언가 재기발랄한 프로젝트도 병행하는 문화 공간의 역할도 병행하고 있습니다.
윌리엄스버그라는 젊은이 들의 동네가 단순히 술집과 커피숍이 있는 공간으로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문화적 힘을 가지고 있는 이유가 단순히 이 서점 때문이라고 말하면 너무 억지겠지만, 저는 그렇게 주장하고 싶습니다. 어쨌든 스푼빌 앤 슈가타운은 무수한 뉴욕의 서점 가운데 가장 취향에 맞았던 곳 이었습니다.
 

 

 

멜빌 하우스 (Melville House), www.mhpbooks.com
145 Plymouth Street, Brooklyn, NY



<백경>이라는 고전을 쓴 작가 허먼 멜빌의 이름을 딴 멜빌 하우스는 출판사가 운영하는 서점입니다. 멜빌 출판사는 주로 고전을 새롭게 디자인 한 시리즈로 인기를 끌고 있습니다. 아실지 모르겠지만, 어떤 작가가 사망한 뒤 50년이 지나면 그 작가가 쓴 글의 저작권은 사라지게 됩니다. 그러면 사실 누구나 그 글을 출판할 수 있어요. 일종의 공공재산이 되는 건데요. 멜빌은 그런 글들을 잘 선택하고 이쁘게 디자인해서 재미를 보는 곳 입니다. 잘 디자인 된 문고판 출판사 정도로 소설과 시의 중간에 있는 별로 무겁지 않은 글들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또한 고전 이외에도 타오 린(Tao Linn) 같은 젊고 재기 발랄한 젊은 작가들의 책도 소개하고 있습니다. 타오 린은 뉴욕의 무라카미 하루키로 불리는 대만 출신의 20대 젊은 작가입니다. 뉴욕의 젊은이들에게 폭발적인 인기를 끌고 있죠.
이 서점이 위치한 브룩클린의 덤보 지구는 예술가들의 스튜디오와 재미있는 서점, 샵들이 모여있는 동네입니다. 윌리엄스버그와 비슷하지만 여기 덤보가 좀 더 조용하고 세련되었죠. 뉴욕의 사무실 렌탈 비용이 워낙 비싸다보니 가난한 예술가들이나 서점, 독립 출판사 등은 맨하튼 도심에서 점점 바깥으로 쫓겨나가는 추세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예술가들이 모이는 동네는 금방 유명해지고 집 값과 땅 값이 오릅니다. 그래서 부동산 업자들은 예술가들의 이동에 대해 매우 민감하게 반응하죠. 어쨌든 가난한 예술가들과 서점이 무슨 돈이 있겠습니까? 그러니 좁은 공간을 빌려서 최대한 공간을 나누고 효율적으로 쓰려고 머리를 굴리죠. 그러다 보니 이렇게 반은 사무실, 반은 서점으로 쓰는 멜빌 하우스 같은 곳이 등장하게 되었습니다.

 


 

 

 

포비든 플래넷 (Forbidden Planet), www.fpnyc.com
840 Broadway, New York, NY

 
스트랜드 서점 옆에는 정말 이상한 서점이 하나 있습니다. 서점이라기 보다는 무슨 피규어 샵 같기도 하고 변태적인 책과 인형을 파는 그런 곳 같기도 하지만요. 히어로 코믹스와 망가, 관련 피규어를 비롯해 성인 남성들이 좋아할만한 장난감을 가득파는 곳, 50년대 SF 컬트 영화의 제목을 따온 포비든 플래닛입니다. 꼭꼭 숨겨진 소우주를 보는 듯한 이곳은 들어가는 순간 ‘우와!’하고 탄성을 지르게 만드는 아이템들로 가득합니다. 또 재미있는 것은 인디 싱글즈(Indie Singles) 섹션인데 우리가 진(zine)이라고 부르는 드로잉, 코믹스 등을 파는 섹션입니다. 정말 그 종류와 수, 분류의 전문성에 놀랐습니다. 대부분 3달러에서 10달러 정도(3천원에서 만원 정도)의 싼 가격에 팔고 있었습니다. 쉽게 이야기하면 아마추어 만화 동호회 ‘팬진’ 같은 것이죠. 어쨌든 이런 소소한 것들도 자신만의 역사를 가지고 오랫동안 운영하면 이렇게 훌륭한 컬렉션이 될 수도 있습니다.
 

 

파워하우스 북스 (Powerhouse Books), www.powerhousebooks.com
37 Main Street, Brooklyn, NY 11201

 

독립서점이라는 말을 들어보셨어요? 뉴욕에는 이러한 독립서점들이 자신의 힘을 한데 모으기 위한 인디펜던트 북셀러(independent booksellers)라는 네트워크가 존재합니다. 우리가 방문한 모든 서점들이 이 네트워크에 소속되어 있는지 알 수는 없지만 최소한 이 파워하우스는 이 네트워크의 한 마디를 차지하는 곳입니다.
앞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덤보 지역은 젊고 가난한 예술가들이 많이 모여사는 곳입니다. 그렇기 때문인지 이곳의 서점들은 맨하튼의 고전적인 서점들과 다르게 모던하고 깔끔한 모양새를 가지고 있어요. 맨하튼은 정말 오래된 역사를 가진 동네이고 뉴요커들은 개발이라는 말을 매우 싫어하기 때문에 대부분의 건물은 낡고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습니다. 반면에 브룩클린이나 브롱스 같은 뉴욕 외곽 지역은 비교적 새로운 건물이 많은 편이죠.

 

 

 

여기 파워하우스의 책은 그렇게 뛰어나지 않지만 파워하우스 아레나라는 이름의 전시장 안에서 지역 작가와 전시를 지속적으로 소개하는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미국 역시 반즈앤노블 같은 대형 서점과 인터넷 서점으로 인해 지역 소규모 서점들의 사정은 힘듭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러한 동네 서점은 지역 문화를 보존하고 기록하는 역할을 하게 됩니다. 여러분의 동네에 30년 동안 서점을 운영하고 있는 분이 있다고 생각해 보세요. 그 서점 주인장은 그 동네의 변화된 모습이나 지역 주민의 변화를 잘 아는 것은 물론 그들의 취향에 맞는 책을 가져다 놓을 수 있을 것입니다. 어쩌면 지역 신문 같은 매체를 만들 수도 있어요. 물론 이런 지역 서점이 특별한 책을 파는 건 아니지만 확실히 더 정겨울 것입니다. 그리고 이것은 뉴요커들에게도 마찬가지인 것 같아요. 인디펜던트 북셀러는 동네 서점에서 책을 사라고 이야기합니다. 반즈앤노블이나 아마존 보다 동네에서 묵묵히 자리를 지키고 있는 동네 서점에서 책을 사라는 캠페인을 하고 있죠. 서점이 지역의 문화와 유기적인 관계를 형성하고 지역의 문화적 정체성의 일부를 담아내는 공간이 된다면 정말 좋을 겁니다. 동네 도서관이 이런 역할을 할 수 있겠지만 서점도 충분히 가능합니다. 실제로 외국의 많은 서점들이 지역의 문화센터처럼 활동하고 있고요. 서울은 어떠냐구요? 솔직히 잘 모르겠네요.

 

 

 

뉴욕 아트북페어 2009

 

이제 <뉴욕 아트북페어 2009>에 대해 이야기해보겠습니다. 이 행사를 설명하기 전에 매년 뉴욕아트북페어를 주최하는 프린티드 매터(Printed Matter)라는 서점에 대해 잠깐 이야기 해야할 것 같네요. 프린티드 매터라면 그러니까 출판된 것이라는 소리인데 그 이름처럼 이 서점(결코 작다고는 할 수 없는)은 종이로 된 것이라면 뭐든지 다 판매하는 곳이에요. 물론 예술가가 만든 책으로 특화되어 있고 전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아트북 서점이긴 하지만 정말 이상한 책들도 많이 팝니다. 포스터나 엽서들도 많구요. 물론 관광지에서 파는 그런 것이 아니라 좀 이상하고 기괴하고 변태적인 그런 엽서들이죠. 올해 뉴욕 아트북페어는 모마가 운영하는 대안공간인 ‘P.S.1’에서 열렸습니다. 모마는 아마 전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미술관 중에 하나일 겁니다. 어쨌든 모마에서 운영하는 대안공간이라 그런지 정말 큽니다. 그러나 미술관 때문에 새로 지은 건물이 아니고 예전에 공장을 개조해서 만든 곳입니다.

 

 

 

 

미국에는 책을 만드는 아마추어 동호회가 세계에서 가장 많은 나라입니다. 그걸 우리는 통상적으로 ‘진(zine)’이라고 부릅니다. 미국은 전세계에서 진 문화가 가장 발달된 나라 가운데 하나이고 그러므로 이에 관련된 전문가들이 꽤 있습니다. 어쨌든 이번 뉴욕아트북페어는 이렇게 아마추어들이 만드는 진을 특별히 조명하는 행사를 가졌습니다. 진에 관심 있는 전문가와 진스터(zinester, 진을 만드는 사람)들이 잔뜩 몰려와서 어떻게 하면 진을 발전시키고 진 도서관을 만들까 등의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뉴욕아트북페어는 개별 출판사나 소규모로 책을 만드는 작가, 퍼블리셔들에 대한 배려가 충분했다고 할 수는 없지만, 저희 미디어버스는 이번 행사에 참여함으로써 소규모 출판 문화, 커뮤니티 문화를 체험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는 4일의 행사 기간 대부분을 손님 접대와 책을 판매하는데 보내야했기 때문에 행사를 제대로 구경하거나, 기대했던 것처럼 친구들을 사귀지는 못했습니다.
 

 

 

예상하다시피 책을 만드는 사람들은 대부분 내성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사실 끼리끼리 노는게 대부분이었어요. 그 결과 이런 출판 문화는 개방적이라기 보다 자기 커뮤니티 안에서 착실하게 발전하게 되죠. 사실 같은 고민을 하는 사람들을 보면 그것 자체가 격려가 되는 경우가 많아요. 그리고 이들이 만드는 책들 역시 마찬가지죠. 이런 책을 보고 있으면 기분이 좋아지고 ‘우리도 더 열심히 책을 만들어야지’ 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리고 많은 영감도 받고요. 마지막 날 우리는 내년을 기약하며 4일의 짧은 일정을 정리해야했습니다.

 
서점과 북페어를 가지고 출판 문화 운운하는 것이 너무 우습게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 어쨌든 이건 매우 작은 시장이고 적은 독자와 책이니까 정말 밀리언 셀러 출판사가 보면 웃고 넘기겠죠. 하지만 이렇게 작고 사소해 보이는 그런 것들이 사회 안에서 받아들여진다면 우리같 은 사람들은 매우 행복할 겁니다. 그리고 기분 좋게 독자들을 만나고, 독자들도 서로 만나고… 그러면서 무언가 재미있는 일도 일어나는 그런 유쾌한 서점을 상상해봅니다. 아직 서울에 그런 곳이 있다는 생각이 들지 않지만 조만간에 생길 수 있을 것 같아요. 여러분들도 이 글을 읽고 다양한 문화를 체험할 수 있는 통로로 이런 소규모 자주출판물을 만나시길 희망해봅니다. 정말 진심으로 말이죠.
 
취재 및 글_임경용 (미디어버스 편집자)
 


이전글 [FF MAGAZINE] FOREVER 최남선
다음글 [FF MAGAZINE] GATES 김산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