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특집

[FF Magazine] View Point - 이제, 재미있어질 패션시대로의 카운트다운

  • 10.01.25 / 운영자
 


 
다사다난했던 2009년이 갔다. 이제 막 시작한 2010년의 감흥을 즐기지도 못할 만큼, 시간은 빨리 흐른다. 2009년과 2008년을 비교하면 많은 변화가 있었다. 먼저 직업이 바뀌었다. 2007년부터 1년 반 정도 다닌 청담동의 복합문화공간 ‘데일리 프로젝트(Daily Projects)’의 바이어에서 패션 저널리스트 겸 강사로 변신했다. 패션지를 비롯한 매체에 기고한 것은 데일리 프로젝트에 다니기 전부터 시작한 일이지만, 패션지 소속 에디터가 아닌
‘프리랜스 저널리스트’로 활동하는 것은 생각보다 더 어려운 일이었다. 데일리 프로젝트를 그만둘 때, 주위에선
‘왜 잘 나가는 바이어 일을 그만두느냐.’라고 한 사람들도 있었다. 그만둔 데는 두 가지 이유가 있었는데, 하나는 이제 안정적인 운영을 맡을 전문 바이어가 들어와야 한다는 생각이었다. 나머지 하나는, 회사에 소속되어 맡은 일을 하는 것보다 ‘내 작업’에 충실하고픈 이유였다. 그만두고 1년이 훌쩍 넘은 지금 생각하면, 반은 이뤘고 반은 이루지 못한 셈이지만 후회는 없다.
 
 
2009년 한 해 동안, 특강을 제외하면 총 네 차례 강의를 진행했다. 패션에 대한 강의라. 일을 그만둘 때 결코 생각해본 적 없던 직업이자 주제였다. 시작은 이렇다. 데일리 프로젝트 시절(생각하면, 데일리 프로젝트가 내게 준 것이 참 많다), 원래 ‘독립 출판물(independent publication)’에 관심이 많던 나는 <인디펜던트 나우(Independent Now)>라는 이름으로 국내/외 독립 출판물을 모아 전시를 기획한 적이 있다. 전시를 해보리라 마음먹은 것은, 데일리 프로젝트 2층 카페 ‘매거진 라운지’에, 국내에서 보기 어려운 서적들을 갖추며 생긴 욕심이었다. 전시 개장 당일 저녁까지 밤새며 준비했는데, 비슷한 주제의 전시가 드물었던 데다 독립 출판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은 고조되던 상황이라 나름대로 열기가 대단했다. 뒷일을 생각하기보다 일단 저지르고 보는 타입이라, 출판사들에 참여해주십사 단체 메일을 보내고는 ‘난 몰라, 이제 엎질러진 물이다!’ 하며 불타올라 준비했던 기억도 난다. 그러다 전시를 좋게 봐주신 홍대 쪽 동교동에 있는 복합문화공간 ‘문지문화원 사이’에서, 지난 2월 뜬금없이 메일이 온 거다. 새로운 강좌를 준비하는데 한 번 참여해보지 않겠느냐고, 패션을 주제로. 처음에는 거절할 생각이었다. 내 나이 스물일곱, 강의는 교수님급은 돼야지 하는 것 아닌가 싶었다. 한 번 만나자고 해서 만났다. 생각보다 열려 있는 공간이었고, 문지문화원에서 하는 다른 강의들이 마음에 들었다. ‘학문’을 가르치기보단 ‘경험’을 전달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커리큘럼을 100% 내게 맡겨준 것도 좋았다. 그래서 항상 불만이었던, 지금 ‘우리나라의 패션을 문화로 만드는 사람들’을 조명하자고 마음먹었다.
 
 
 
첫 강의 제목은 <한국 패션의 지금: 서브컬처에서 하이패션까지>였다. 2009년을 시작하는 이 따뜻한 봄날, 패션을 단지 계절의 유행이나 값싼 공산품이 아닌 ‘문화’로 만드는 ‘지역(여기선, 서울)’ 사람들의 생생한 이야길 담고 싶었다. 패션 디자이너(하상백, 한상혁, 서상영, 지일근, 박도건, 이우림, 곽호빈 등), 모델(장윤주), 패션 에디터(보그 코리아 패션뉴스 디렉터 신광호), 패션 잡지 발행인(MAPS 유도연), 편집매장 디렉터(애딕티드 공준호), 스트리트 패션 스냅 사진가(파티스냅북 you were sleeping 저자 및 사진가 강민구)... 정말 많은 분들이 강의에 참석하여 생생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섭외하러 다닐 때의, 불안한 마음 가득하면서도 흥분되는 기분은 사실 준비해본 사람이 아니면 모를 것이다. 강의를 준비하면서, 내가 이 강의로 하고 싶은 말이 정말 무엇이었는가에 대한 생각도 점점 명확해졌다. 그것은 이십 대의 내 작업들의 뿌리이기도 했다. 나는 유명인을 끌어다가 젊은이들에게 ‘우와, 멋지다.’ 소리나 듣게 할 마음은 전혀 없었다. 강의를 하면서 패션이 이 사회에서 차지하는 위치에 대한 생각을 많이 했다. 사실 요즘, 패션은 순항 중이다. 일간지와 방송에서 요즘처럼 패션을 다룬 적이 없었다. 또한 유니클로(UNIQLO)를 보라. 히트텍 같은 전 국민 내복을 불티나게 판다.
 
젊은 신진 디자이너들의 옷은 예전 같으면 팔 곳이 없어서 못 팔았는데, 요즘은 에이랜드(A Land)니 일모스트릿닷컴(www.ilmostreet.com)이니 유통경로도 다양해졌다. 잔잔하지만 소리 소문 없이 디자이너들이 나타나고, 서울 패션 위크도 제너레이션 넥스트(Generation Next)라는 이름으로 신진 디자이너 지원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하지만, 그런 와중에서도 패션은 무언가 2%, 아니 10%는 부족한 감이 들었다. 나는 그걸 로컬리티(locality), 즉 지역성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 부족이라 생각했다. 서양 문화권이 주도하는 패션에서, 눈이 번쩍 뜨일 만한 대단한 작업은 사실 파리나 뉴욕, 밀라노 같은 대도시 차지인 건 맞다. 그렇다고 온갖 시선이 그쪽에만 쏠려 있으면, 우리나라의 패션을 만들고, 지지하는 사람들은 누가 얘기하고 누가 받쳐주나. 이런 생각이 머리를 계속 맴돌았다. 그래서 첫 강의 이후 이어진 세 번의 강의 - <패션 매거진 연구>, <편집매장 연구>, <스트리트 패션 탐구> - 가 각각의 주제는 다를지언정, 강의를 묶는 큰 주제는 통일하자고 마음먹었다. 외국의 뛰어난 사례를 다루면서도, 우리나라의 반짝반짝 빛나는 모습을 함께 다루고 조명하자. 그리고 실제 업계에서 뛰는 사람들이 어떤 생각을 하며, 무슨 일을 하고, 다가올 미래에는 어떤 모습을 그리는지 함께 이야기하자고 말이다. 강의 중간에 종종 노키아의 유명한 슬로건을 떠올렸다. 커넥팅 피플(Connecting People). 수강생과 실무자 사이의 틈새를 채워보자는 생각. 네 번의 강의를 듣고 참여한 사람들이 어떤 평가를 해주었는진 각자의 몫이겠지만, 이런 생각을 하며 스스로 꽤 성장한 느낌이 들었다.
 
 
 

2010년, 이제 새로운 강의를 시작한다. 제목은 <한국 남성복 디자이너들>이다. 2000년, 뉴 밀레니엄이라며 떠들썩하던 때로부터 벌써 10년이 지났다. 지난 10년의 패션 안에서 한국 남성복만 봐도, 조금 과장하면 천지가 요동칠 만큼의 변화가 있었다. 그래서 새로운 강의는 ‘한국의 남성복 디자이너들’의 지난 10년과 새로 다가올 2010년에 대해 풀어낼 것이다. 해가 저물던 2009년의 마지막 밤, 엠비오(MIVO)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한상혁과 요즘 주목하는 남성복 브랜드 커스텀멜로우(customellow)의 디렉터 손형오와 술잔을 기울였다. 한상혁이 주도해 만든, 2000년대 중반 한국 남성복을 말할 때 빼놓을 수 없는 브랜드 ‘본(BON)’을 부활시킨 주역 멤버였던 그들이다. 그들에게 2010년을 시작하는 젊은 디자이너들에 대한 전망을 물었다. 한상혁은 ‘새로 시작하는 도전이 부럽고 보기 좋다.’라고 했다. 손형오는 ‘독립 디자이너들의 패기와 도전은 좋지만, 내셔널 브랜드가 가지는 완성도와 노련미도 주목해야 할 것’이라 했다. 그들은 이제 실장급 이상이 된 베테랑 디자이너들이다. 그러나 그들은 안주하지 않는다. 트렌드에 따른 옷 만들기에 급급하던 우리나라의 내셔널 브랜드 문화를 조금씩 바꾸고 있다. 조용한 혁명은, 정말 조용하게 이미 시작된 것이다.

 
 
새 강의를 준비하면서, 이제 막 자신의 브랜드를 시작하는 디자이너들, 작년 재작년 문을 연 디자이너들, 그리고 몇십 년의 경력을 가진 디자이너 선생님들을 만나볼 것이다. 그들은 어느 시절엔가 정체했고, 어느 시절에는 속된 말로 ‘날아다녔’다. 지금 한국 패션 디자이너들이 어떠한가를 내게 묻는다면, ‘르네상스의 카운트다운에 들어갔다.’라고 답하겠다. 선문답으로 들리는가? 하지만 나는, 아직 정말로 재미있는 시대는 시작하지 않았다고 믿는다. 그리고 그것을 이끌어 갈 사람들이 어쩌면 지금 이 글을 읽는 사람들인지도 모른다. 패션이 포화상태에 이르렀고, 패스트패션은 젊은 디자이너들의 숨통을 옥죌 것이고, 사람들은 이미테이션 제품을 스스럼없이 사고, 그런 것들에 지레 겁먹고 패션으로 발 디디는 것을 두려워할 필요는 없다. 패스트패션의 폭풍이 치면, 옷의 본질에 더 접근할 기회로 생각하면 된다. 더 좋은 소재로 만든 합리적인 가격의, 더욱 개개인의 취향에 접근할 수 있는 그런 옷 말이다. 이미테이션과 카피 제품의 메카라는 오명을 일정 부분 담당하는 동대문에는 이미 디자인테마파크처럼 젊은 디자이너들을 지원하는 시스템이 생기고 있다. 시설의 불합리성에 대한 말이 벌써 나오고 있지만, 없는 것보다는 훨씬 낫다. 웹의 확장성은 또 어떠한가. 블로그가 기존 올드 미디어가 하지 못한 일을 해나갈 수 있다는 것은, 우라나라의 IT·뷰티·맛집 블로거들이 이미 몸소 실천으로 보여주었다. 패션이라고 못할 게 무엇인가. 온라인
1인 매거진들이 몇 개만 생기면, 패션을 대하는 다양한 시각이 생긴다는 데서 탄탄한 인프라가 깔리는 셈이 된다.
 
 

사실 이번 달은 나에게 도전의 달이다. 아직 밝힐 수 없는, 지금까지 전혀 경험하지 않았던 몇 가지 패션 프로젝트가 나를 기다린다. 이것에 대해선 차후 글로 풀어낼 기회가 있을 것이다. 이번 글은 의도했던 방향과는 조금 다르게 써내려갔다. 릴레이식으로 지금 하는 패션 작업들을, 마치 남의 블로그 일기를 훔쳐보는 것처럼 써내려가는 것도 좋을 것이다.

젊은이들이여, 세상은 넓고 아이디어는 많다. 판박이 같은 인생 계획과 남들과 비슷한 ‘스펙’에 연연하기 전에, 자신이 즐겁고 재미있게 할 수 있는 일이 무언가 생각해보는 건 어떨까. 전시, 사진, 공연, 인터넷... 수많은 소스가 곳곳에 널렸다. 누군가 세상에는 모든 일이 일어나서, 이제 새로운 것은 없다지만 그건 반만 맞는 얘기다. ‘당신’이 아직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글·사진 / 홍석우(fashion journalist / photographer of yourboyhood.com)
 


[FF Magazine] View Point - 이제, 재미있어질 패션시대로의 카운트다운
 


 
다사다난했던 2009년이 갔다. 이제 막 시작한 2010년의 감흥을 즐기지도 못할 만큼, 시간은 빨리 흐른다. 2009년과 2008년을 비교하면 많은 변화가 있었다. 먼저 직업이 바뀌었다. 2007년부터 1년 반 정도 다닌 청담동의 복합문화공간 ‘데일리 프로젝트(Daily Projects)’의 바이어에서 패션 저널리스트 겸 강사로 변신했다. 패션지를 비롯한 매체에 기고한 것은 데일리 프로젝트에 다니기 전부터 시작한 일이지만, 패션지 소속 에디터가 아닌
‘프리랜스 저널리스트’로 활동하는 것은 생각보다 더 어려운 일이었다. 데일리 프로젝트를 그만둘 때, 주위에선
‘왜 잘 나가는 바이어 일을 그만두느냐.’라고 한 사람들도 있었다. 그만둔 데는 두 가지 이유가 있었는데, 하나는 이제 안정적인 운영을 맡을 전문 바이어가 들어와야 한다는 생각이었다. 나머지 하나는, 회사에 소속되어 맡은 일을 하는 것보다 ‘내 작업’에 충실하고픈 이유였다. 그만두고 1년이 훌쩍 넘은 지금 생각하면, 반은 이뤘고 반은 이루지 못한 셈이지만 후회는 없다.
 
 
2009년 한 해 동안, 특강을 제외하면 총 네 차례 강의를 진행했다. 패션에 대한 강의라. 일을 그만둘 때 결코 생각해본 적 없던 직업이자 주제였다. 시작은 이렇다. 데일리 프로젝트 시절(생각하면, 데일리 프로젝트가 내게 준 것이 참 많다), 원래 ‘독립 출판물(independent publication)’에 관심이 많던 나는 <인디펜던트 나우(Independent Now)>라는 이름으로 국내/외 독립 출판물을 모아 전시를 기획한 적이 있다. 전시를 해보리라 마음먹은 것은, 데일리 프로젝트 2층 카페 ‘매거진 라운지’에, 국내에서 보기 어려운 서적들을 갖추며 생긴 욕심이었다. 전시 개장 당일 저녁까지 밤새며 준비했는데, 비슷한 주제의 전시가 드물었던 데다 독립 출판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은 고조되던 상황이라 나름대로 열기가 대단했다. 뒷일을 생각하기보다 일단 저지르고 보는 타입이라, 출판사들에 참여해주십사 단체 메일을 보내고는 ‘난 몰라, 이제 엎질러진 물이다!’ 하며 불타올라 준비했던 기억도 난다. 그러다 전시를 좋게 봐주신 홍대 쪽 동교동에 있는 복합문화공간 ‘문지문화원 사이’에서, 지난 2월 뜬금없이 메일이 온 거다. 새로운 강좌를 준비하는데 한 번 참여해보지 않겠느냐고, 패션을 주제로. 처음에는 거절할 생각이었다. 내 나이 스물일곱, 강의는 교수님급은 돼야지 하는 것 아닌가 싶었다. 한 번 만나자고 해서 만났다. 생각보다 열려 있는 공간이었고, 문지문화원에서 하는 다른 강의들이 마음에 들었다. ‘학문’을 가르치기보단 ‘경험’을 전달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커리큘럼을 100% 내게 맡겨준 것도 좋았다. 그래서 항상 불만이었던, 지금 ‘우리나라의 패션을 문화로 만드는 사람들’을 조명하자고 마음먹었다.
 
 
 
첫 강의 제목은 <한국 패션의 지금: 서브컬처에서 하이패션까지>였다. 2009년을 시작하는 이 따뜻한 봄날, 패션을 단지 계절의 유행이나 값싼 공산품이 아닌 ‘문화’로 만드는 ‘지역(여기선, 서울)’ 사람들의 생생한 이야길 담고 싶었다. 패션 디자이너(하상백, 한상혁, 서상영, 지일근, 박도건, 이우림, 곽호빈 등), 모델(장윤주), 패션 에디터(보그 코리아 패션뉴스 디렉터 신광호), 패션 잡지 발행인(MAPS 유도연), 편집매장 디렉터(애딕티드 공준호), 스트리트 패션 스냅 사진가(파티스냅북 you were sleeping 저자 및 사진가 강민구)... 정말 많은 분들이 강의에 참석하여 생생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섭외하러 다닐 때의, 불안한 마음 가득하면서도 흥분되는 기분은 사실 준비해본 사람이 아니면 모를 것이다. 강의를 준비하면서, 내가 이 강의로 하고 싶은 말이 정말 무엇이었는가에 대한 생각도 점점 명확해졌다. 그것은 이십 대의 내 작업들의 뿌리이기도 했다. 나는 유명인을 끌어다가 젊은이들에게 ‘우와, 멋지다.’ 소리나 듣게 할 마음은 전혀 없었다. 강의를 하면서 패션이 이 사회에서 차지하는 위치에 대한 생각을 많이 했다. 사실 요즘, 패션은 순항 중이다. 일간지와 방송에서 요즘처럼 패션을 다룬 적이 없었다. 또한 유니클로(UNIQLO)를 보라. 히트텍 같은 전 국민 내복을 불티나게 판다.
 
젊은 신진 디자이너들의 옷은 예전 같으면 팔 곳이 없어서 못 팔았는데, 요즘은 에이랜드(A Land)니 일모스트릿닷컴(www.ilmostreet.com)이니 유통경로도 다양해졌다. 잔잔하지만 소리 소문 없이 디자이너들이 나타나고, 서울 패션 위크도 제너레이션 넥스트(Generation Next)라는 이름으로 신진 디자이너 지원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하지만, 그런 와중에서도 패션은 무언가 2%, 아니 10%는 부족한 감이 들었다. 나는 그걸 로컬리티(locality), 즉 지역성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 부족이라 생각했다. 서양 문화권이 주도하는 패션에서, 눈이 번쩍 뜨일 만한 대단한 작업은 사실 파리나 뉴욕, 밀라노 같은 대도시 차지인 건 맞다. 그렇다고 온갖 시선이 그쪽에만 쏠려 있으면, 우리나라의 패션을 만들고, 지지하는 사람들은 누가 얘기하고 누가 받쳐주나. 이런 생각이 머리를 계속 맴돌았다. 그래서 첫 강의 이후 이어진 세 번의 강의 - <패션 매거진 연구>, <편집매장 연구>, <스트리트 패션 탐구> - 가 각각의 주제는 다를지언정, 강의를 묶는 큰 주제는 통일하자고 마음먹었다. 외국의 뛰어난 사례를 다루면서도, 우리나라의 반짝반짝 빛나는 모습을 함께 다루고 조명하자. 그리고 실제 업계에서 뛰는 사람들이 어떤 생각을 하며, 무슨 일을 하고, 다가올 미래에는 어떤 모습을 그리는지 함께 이야기하자고 말이다. 강의 중간에 종종 노키아의 유명한 슬로건을 떠올렸다. 커넥팅 피플(Connecting People). 수강생과 실무자 사이의 틈새를 채워보자는 생각. 네 번의 강의를 듣고 참여한 사람들이 어떤 평가를 해주었는진 각자의 몫이겠지만, 이런 생각을 하며 스스로 꽤 성장한 느낌이 들었다.
 
 
 

2010년, 이제 새로운 강의를 시작한다. 제목은 <한국 남성복 디자이너들>이다. 2000년, 뉴 밀레니엄이라며 떠들썩하던 때로부터 벌써 10년이 지났다. 지난 10년의 패션 안에서 한국 남성복만 봐도, 조금 과장하면 천지가 요동칠 만큼의 변화가 있었다. 그래서 새로운 강의는 ‘한국의 남성복 디자이너들’의 지난 10년과 새로 다가올 2010년에 대해 풀어낼 것이다. 해가 저물던 2009년의 마지막 밤, 엠비오(MIVO)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한상혁과 요즘 주목하는 남성복 브랜드 커스텀멜로우(customellow)의 디렉터 손형오와 술잔을 기울였다. 한상혁이 주도해 만든, 2000년대 중반 한국 남성복을 말할 때 빼놓을 수 없는 브랜드 ‘본(BON)’을 부활시킨 주역 멤버였던 그들이다. 그들에게 2010년을 시작하는 젊은 디자이너들에 대한 전망을 물었다. 한상혁은 ‘새로 시작하는 도전이 부럽고 보기 좋다.’라고 했다. 손형오는 ‘독립 디자이너들의 패기와 도전은 좋지만, 내셔널 브랜드가 가지는 완성도와 노련미도 주목해야 할 것’이라 했다. 그들은 이제 실장급 이상이 된 베테랑 디자이너들이다. 그러나 그들은 안주하지 않는다. 트렌드에 따른 옷 만들기에 급급하던 우리나라의 내셔널 브랜드 문화를 조금씩 바꾸고 있다. 조용한 혁명은, 정말 조용하게 이미 시작된 것이다.

 
 
새 강의를 준비하면서, 이제 막 자신의 브랜드를 시작하는 디자이너들, 작년 재작년 문을 연 디자이너들, 그리고 몇십 년의 경력을 가진 디자이너 선생님들을 만나볼 것이다. 그들은 어느 시절엔가 정체했고, 어느 시절에는 속된 말로 ‘날아다녔’다. 지금 한국 패션 디자이너들이 어떠한가를 내게 묻는다면, ‘르네상스의 카운트다운에 들어갔다.’라고 답하겠다. 선문답으로 들리는가? 하지만 나는, 아직 정말로 재미있는 시대는 시작하지 않았다고 믿는다. 그리고 그것을 이끌어 갈 사람들이 어쩌면 지금 이 글을 읽는 사람들인지도 모른다. 패션이 포화상태에 이르렀고, 패스트패션은 젊은 디자이너들의 숨통을 옥죌 것이고, 사람들은 이미테이션 제품을 스스럼없이 사고, 그런 것들에 지레 겁먹고 패션으로 발 디디는 것을 두려워할 필요는 없다. 패스트패션의 폭풍이 치면, 옷의 본질에 더 접근할 기회로 생각하면 된다. 더 좋은 소재로 만든 합리적인 가격의, 더욱 개개인의 취향에 접근할 수 있는 그런 옷 말이다. 이미테이션과 카피 제품의 메카라는 오명을 일정 부분 담당하는 동대문에는 이미 디자인테마파크처럼 젊은 디자이너들을 지원하는 시스템이 생기고 있다. 시설의 불합리성에 대한 말이 벌써 나오고 있지만, 없는 것보다는 훨씬 낫다. 웹의 확장성은 또 어떠한가. 블로그가 기존 올드 미디어가 하지 못한 일을 해나갈 수 있다는 것은, 우라나라의 IT·뷰티·맛집 블로거들이 이미 몸소 실천으로 보여주었다. 패션이라고 못할 게 무엇인가. 온라인
1인 매거진들이 몇 개만 생기면, 패션을 대하는 다양한 시각이 생긴다는 데서 탄탄한 인프라가 깔리는 셈이 된다.
 
 

사실 이번 달은 나에게 도전의 달이다. 아직 밝힐 수 없는, 지금까지 전혀 경험하지 않았던 몇 가지 패션 프로젝트가 나를 기다린다. 이것에 대해선 차후 글로 풀어낼 기회가 있을 것이다. 이번 글은 의도했던 방향과는 조금 다르게 써내려갔다. 릴레이식으로 지금 하는 패션 작업들을, 마치 남의 블로그 일기를 훔쳐보는 것처럼 써내려가는 것도 좋을 것이다.

젊은이들이여, 세상은 넓고 아이디어는 많다. 판박이 같은 인생 계획과 남들과 비슷한 ‘스펙’에 연연하기 전에, 자신이 즐겁고 재미있게 할 수 있는 일이 무언가 생각해보는 건 어떨까. 전시, 사진, 공연, 인터넷... 수많은 소스가 곳곳에 널렸다. 누군가 세상에는 모든 일이 일어나서, 이제 새로운 것은 없다지만 그건 반만 맞는 얘기다. ‘당신’이 아직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글·사진 / 홍석우(fashion journalist / photographer of yourboyhood.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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