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특집

[국민토크人] "기법보다도 중요한건 인내와 끈기다." 금속 공예 작가, 이상구님을 만나다.

  • 10.11.11 / 현정원

 

 

길을 걷다 보면 귀걸이, 팔찌 등 몸을 치장하는 액세서리부터
그릇, 수저 등 우리 집에서 쓰는 필수품들의 가지각색 다양한 디자인들을 많이 볼 수 있다.
하지만 예쁜 수공예품들의 모습 속엔 또 다른 탄생 과정이 숨겨져 있지 않을까.
수공예품의 모든 것을 보기 위해 30여년간 금속을 다뤄오신 이상구 동문을 만나보았다.
지금부터 테이블, 의자, 문, 조명, 컵, 그릇 모든 것을 두 손으로 직접 만들어 쓰는
신의 손, 이상구씨(조형학부 금속공예전공 77)동문을 만나보자. 

 

이상구 동문은 77년 국민대학교 조형학부에 입학하셨다. '금속'에 큰 매력을 느끼게 된 그는 금속 공예품을 만드는 일을 꾸준히 해오셨다. 본격적으로는 79년, 금속 공예 작가로서의 일을 시작 하셨다. 그 후 지금까지 무려 30년이 넘도록 수천여개의 공예품을 만드셨다. 금속과 30여간을 함께 해온 이상구 동문. 현재에는 지축동에 있는 작업실에서 금속으로 수공예품을 만드신다. 또한 수공예품을 직접 운영하시는 작업실 옆 카페에 전시와 판매를 하고 계신다. 전시 뿐 아니라 까페의 의자, 테이블, 심지어 문과 조명까지 모두 그의 손길이 닿지 않은 것이란 없었다.

금속 공예 작가를 시작하게 된 계기가 있으시다면요?

미술품이 시중에 판매가 잘 되지 않았었어요. 주로 화랑에서 판매가 되고 일반 대중들도 화랑을 가서 비싼 값에 구입을 해야만 했죠. 그래서 저는 미술품을 좀 더 대중화 시킬 방법이 없을까 고민하던 중 일반대중들도 손쉽게 미술품을 살 수 있게 제가 직접 작가 일을 하면서 공예품을 제작하고 이 곳 카페에서 팔게 된 거예요. 처음에는 대중적인 공예품을 만들겠다는 생각에 작고 예쁜 공예품들을 만들다가 이젠 문이며 테이블이며 각종 공예품을 만들고 있어요.

언제부터 이 일을 시작하셨나요?

저는 졸업 전부터 이 일을 시작했어요. 4학년 때부터였죠. 대학을 다니면서 금속이란 것을 알게 되고 그로인해 제 인생의 모든 것이 결정 지어진 거죠. 금속이란 것에 큰 매력을 느끼게 된 저는 금속을 손에서 놓을 수가 없었고 결국 이렇게 아직도 작가 일을 하고 있답니다. 처음 이 일을 시작한 목적은 아까도 말했듯이 일반 대중들도 손쉽게 미술품을 구입할 수 있도록 제 공예품을 이곳에서 전시하면서 판매를 하는 것이였구요.  79년 12월 금속공예작업을 시작해서 86년 2월에 이곳에서 작업도 하고 카페도 하고 있어요.


총 만드신 공예품들은 몇 가지 정도가 되나요?

1300가지 정도가 될 것 같네요. 정확하다고 볼 수 있는 수치로는 이 정도 되겠지만 하나하나 세어 볼 수가 없을 정도로 많이 만들어서 정확한 개수는 모르겠어요. 아마 더 많을 거 같네요. 유통하는 도매상도 있었고 직접 팔기도 했으니까요. 파는 공예품들 이 외에도 제 나름 이것저것 만들어 본 공예품들도 많이 있어서 글쎄 저도 몇 개정도가 될 지 궁금하네요.(웃음)

금속공예만의 매력이 있다면요?

금속공예는 굉장히 어렵고 힘들어요. 하나를 만들더라도 그것을 끝마무리 하는 데까진 많은 시간이 걸리죠. 그래서 전 금속은 끝이 없다고 생각해요. 새로운 금속과 새로운 기법이 엄청 많고 계속 나오고 있어요, 또한 금속공예 관련 분야가 넓은 편이라 싫증을 느낄 새가 없죠. 그래서 대학 시절부터 30년 넘게 이 일을 해왔지만 아직 전 한 것보다 해볼만한 기법과 재료들이 무궁무진하게 많아요. 싫증 느낄 새 없이 푹 빠질 수밖에 없는, 그런 것이 큰 매력이라고 생각해요.

이 곳 카페에 대한 간단한 소개를 해주신다면요?

저에게는 특별한 곳이라고 볼 수 있죠. 여기 의자, 꽃병, 테이블 장식 조명까지 전부 하나하나 모두 제가 만든 공예품들이라 일종의 작은 전시장이라고 할까요.(웃음) 또 여기서 공연도 가끔씩 하고 있어요. 김광석씨 공연도 했었고 많은 기타리스트 분들을 모셔서 공연을 하죠. 봄 4월에 작은 축제도 열었었어요. 공예품도 할인해서 판매하였고 음악을 즐길 수 있는 작은 공연도 열었었죠. 많은 사람들이 이곳에서 함께 음악을 즐기며 이야기를 나누고 제가 만든 공예품에 대해 다같이 생각도 해 볼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앞으로 축제를 좀 늘려볼까 생각 중이예요. 

작업실이 이 동네에 위치하게 된 이유가 있나요?

이곳에 많은 작가 분들이 살고 계세요. 저처럼 작업실 겸 집이라고 볼 수 있죠. 분야도 다양하고 연령대도 다양해요. 의상 관련 쪽 분도 계시고 조각 관련 쪽 분도 계세요. 그래서 서로 간 교류도 많이 되고 있어요. 또한 다른 작가분들의 작품을 수시로 구경하고 느껴볼 수 있다는 점이 좋은 것 같아요. 작가분들이 많이 살고 계신 동네라 그런지 집집마다 전시와 음악회를 많이 하는 편인 것 같아요.

당시의 학교에 대해 조금만 말씀해주세요.

그때는 금속공예과가 생긴 지 얼마 안됐었어요. 초창기였죠. 하지만 학교의 지원이 너무나도 좋았고 교수님들께서도 젊고 의욕이 넘치시는 분들이 많으셨어요. 학교에서나 교수님들이나 모두 학교 발전을 위해 의욕적으로 노력을 많이 했죠. 전국 순회 전시도 많이 다녔어요. 우리 과를 널리 알리자는 한마음으로 모두 힘을 합쳤죠. 아주 열심히들 했어요. 집에도 가지 않고 매일매일 작업을 했을 정도로요. 그 결과 조형전에서 이름도 많이 알릴 수 있었고 다들 취직 또한 잘됐어요. 하지만 금속공예라는 반순수미술적인 매력에 취직의 욕심이 없던 친구들도 많았어요. 저 또한 그랬고요.

국민대학교 후배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요?

작은 공예품 하나를 만들더라도 며칠씩 쉬지 않고 작업을 해야 해요. 그렇게 끈기 있게 만들었기 때문에 작업을 해야 자신 있게 값을 불러서 작품을 팔 수 있는 것이죠. 기법보다도 중요한건 인내와 끈기이기 때문이에요. 하지만 그것이 결코 쉬운 일은 아니기 때문에 그런 사람이 없어질까 많이 걱정이 되요. 저는 한 작품을 위해 며칠씩 고생하면서 산 정상까지 등산하는 기분이 들거든요. 그렇게 쉬지 않고 해야 되는 끈기가 젊은 친구들에게도 있길 바랄 뿐 이예요.   

 

 

단지 예쁘다고만 생각해 왔던 수공예품들. 그 뒤엔 많은 노력이 담겨져 있는 걸 알 수 있었다.
공예품들로 가득한 그의 작업실은 단지 작업을 하는 곳만은 아니었다.
그가 좋아하는 일을 마음껏 할 수 있고 즐길 수 있는, 그런 그의 심적인 안식처이기도 하였다.
손으로 금속에게 생명을 불어 넣어 주는 그런 작가,
이상구 동문과의 만남에선 공예품 외에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다.
No Sweat, No sweet.  땀과 노력이 없이는 결코 아무 것도 이룰 수 없다.
 


 

 

[국민토크人] "기법보다도 중요한건 인내와 끈기다." 금속 공예 작가, 이상구님을 만나다.

 

 

길을 걷다 보면 귀걸이, 팔찌 등 몸을 치장하는 액세서리부터
그릇, 수저 등 우리 집에서 쓰는 필수품들의 가지각색 다양한 디자인들을 많이 볼 수 있다.
하지만 예쁜 수공예품들의 모습 속엔 또 다른 탄생 과정이 숨겨져 있지 않을까.
수공예품의 모든 것을 보기 위해 30여년간 금속을 다뤄오신 이상구 동문을 만나보았다.
지금부터 테이블, 의자, 문, 조명, 컵, 그릇 모든 것을 두 손으로 직접 만들어 쓰는
신의 손, 이상구씨(조형학부 금속공예전공 77)동문을 만나보자. 

 

이상구 동문은 77년 국민대학교 조형학부에 입학하셨다. '금속'에 큰 매력을 느끼게 된 그는 금속 공예품을 만드는 일을 꾸준히 해오셨다. 본격적으로는 79년, 금속 공예 작가로서의 일을 시작 하셨다. 그 후 지금까지 무려 30년이 넘도록 수천여개의 공예품을 만드셨다. 금속과 30여간을 함께 해온 이상구 동문. 현재에는 지축동에 있는 작업실에서 금속으로 수공예품을 만드신다. 또한 수공예품을 직접 운영하시는 작업실 옆 카페에 전시와 판매를 하고 계신다. 전시 뿐 아니라 까페의 의자, 테이블, 심지어 문과 조명까지 모두 그의 손길이 닿지 않은 것이란 없었다.

금속 공예 작가를 시작하게 된 계기가 있으시다면요?

미술품이 시중에 판매가 잘 되지 않았었어요. 주로 화랑에서 판매가 되고 일반 대중들도 화랑을 가서 비싼 값에 구입을 해야만 했죠. 그래서 저는 미술품을 좀 더 대중화 시킬 방법이 없을까 고민하던 중 일반대중들도 손쉽게 미술품을 살 수 있게 제가 직접 작가 일을 하면서 공예품을 제작하고 이 곳 카페에서 팔게 된 거예요. 처음에는 대중적인 공예품을 만들겠다는 생각에 작고 예쁜 공예품들을 만들다가 이젠 문이며 테이블이며 각종 공예품을 만들고 있어요.

언제부터 이 일을 시작하셨나요?

저는 졸업 전부터 이 일을 시작했어요. 4학년 때부터였죠. 대학을 다니면서 금속이란 것을 알게 되고 그로인해 제 인생의 모든 것이 결정 지어진 거죠. 금속이란 것에 큰 매력을 느끼게 된 저는 금속을 손에서 놓을 수가 없었고 결국 이렇게 아직도 작가 일을 하고 있답니다. 처음 이 일을 시작한 목적은 아까도 말했듯이 일반 대중들도 손쉽게 미술품을 구입할 수 있도록 제 공예품을 이곳에서 전시하면서 판매를 하는 것이였구요.  79년 12월 금속공예작업을 시작해서 86년 2월에 이곳에서 작업도 하고 카페도 하고 있어요.


총 만드신 공예품들은 몇 가지 정도가 되나요?

1300가지 정도가 될 것 같네요. 정확하다고 볼 수 있는 수치로는 이 정도 되겠지만 하나하나 세어 볼 수가 없을 정도로 많이 만들어서 정확한 개수는 모르겠어요. 아마 더 많을 거 같네요. 유통하는 도매상도 있었고 직접 팔기도 했으니까요. 파는 공예품들 이 외에도 제 나름 이것저것 만들어 본 공예품들도 많이 있어서 글쎄 저도 몇 개정도가 될 지 궁금하네요.(웃음)

금속공예만의 매력이 있다면요?

금속공예는 굉장히 어렵고 힘들어요. 하나를 만들더라도 그것을 끝마무리 하는 데까진 많은 시간이 걸리죠. 그래서 전 금속은 끝이 없다고 생각해요. 새로운 금속과 새로운 기법이 엄청 많고 계속 나오고 있어요, 또한 금속공예 관련 분야가 넓은 편이라 싫증을 느낄 새가 없죠. 그래서 대학 시절부터 30년 넘게 이 일을 해왔지만 아직 전 한 것보다 해볼만한 기법과 재료들이 무궁무진하게 많아요. 싫증 느낄 새 없이 푹 빠질 수밖에 없는, 그런 것이 큰 매력이라고 생각해요.

이 곳 카페에 대한 간단한 소개를 해주신다면요?

저에게는 특별한 곳이라고 볼 수 있죠. 여기 의자, 꽃병, 테이블 장식 조명까지 전부 하나하나 모두 제가 만든 공예품들이라 일종의 작은 전시장이라고 할까요.(웃음) 또 여기서 공연도 가끔씩 하고 있어요. 김광석씨 공연도 했었고 많은 기타리스트 분들을 모셔서 공연을 하죠. 봄 4월에 작은 축제도 열었었어요. 공예품도 할인해서 판매하였고 음악을 즐길 수 있는 작은 공연도 열었었죠. 많은 사람들이 이곳에서 함께 음악을 즐기며 이야기를 나누고 제가 만든 공예품에 대해 다같이 생각도 해 볼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앞으로 축제를 좀 늘려볼까 생각 중이예요. 

작업실이 이 동네에 위치하게 된 이유가 있나요?

이곳에 많은 작가 분들이 살고 계세요. 저처럼 작업실 겸 집이라고 볼 수 있죠. 분야도 다양하고 연령대도 다양해요. 의상 관련 쪽 분도 계시고 조각 관련 쪽 분도 계세요. 그래서 서로 간 교류도 많이 되고 있어요. 또한 다른 작가분들의 작품을 수시로 구경하고 느껴볼 수 있다는 점이 좋은 것 같아요. 작가분들이 많이 살고 계신 동네라 그런지 집집마다 전시와 음악회를 많이 하는 편인 것 같아요.

당시의 학교에 대해 조금만 말씀해주세요.

그때는 금속공예과가 생긴 지 얼마 안됐었어요. 초창기였죠. 하지만 학교의 지원이 너무나도 좋았고 교수님들께서도 젊고 의욕이 넘치시는 분들이 많으셨어요. 학교에서나 교수님들이나 모두 학교 발전을 위해 의욕적으로 노력을 많이 했죠. 전국 순회 전시도 많이 다녔어요. 우리 과를 널리 알리자는 한마음으로 모두 힘을 합쳤죠. 아주 열심히들 했어요. 집에도 가지 않고 매일매일 작업을 했을 정도로요. 그 결과 조형전에서 이름도 많이 알릴 수 있었고 다들 취직 또한 잘됐어요. 하지만 금속공예라는 반순수미술적인 매력에 취직의 욕심이 없던 친구들도 많았어요. 저 또한 그랬고요.

국민대학교 후배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요?

작은 공예품 하나를 만들더라도 며칠씩 쉬지 않고 작업을 해야 해요. 그렇게 끈기 있게 만들었기 때문에 작업을 해야 자신 있게 값을 불러서 작품을 팔 수 있는 것이죠. 기법보다도 중요한건 인내와 끈기이기 때문이에요. 하지만 그것이 결코 쉬운 일은 아니기 때문에 그런 사람이 없어질까 많이 걱정이 되요. 저는 한 작품을 위해 며칠씩 고생하면서 산 정상까지 등산하는 기분이 들거든요. 그렇게 쉬지 않고 해야 되는 끈기가 젊은 친구들에게도 있길 바랄 뿐 이예요.   

 

 

단지 예쁘다고만 생각해 왔던 수공예품들. 그 뒤엔 많은 노력이 담겨져 있는 걸 알 수 있었다.
공예품들로 가득한 그의 작업실은 단지 작업을 하는 곳만은 아니었다.
그가 좋아하는 일을 마음껏 할 수 있고 즐길 수 있는, 그런 그의 심적인 안식처이기도 하였다.
손으로 금속에게 생명을 불어 넣어 주는 그런 작가,
이상구 동문과의 만남에선 공예품 외에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다.
No Sweat, No sweet.  땀과 노력이 없이는 결코 아무 것도 이룰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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