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특집

[직업의 세계] 디자이너 겸 건축가 곽 데오도르(생활미술 79) 동문

  • 10.04.10 / 이상협

 

 건축과 디자인을 위해 평생을 쉼 없이 달려온 이 남자, 곽 데오도르(생활미술 79). 국민대 조형대 생활미술학과 졸업. 그리고 이어진 파리 유학. 젊은 시절 캐나다 토탈 미술관, TMCA 현대미술관, CFMT-TV 디렉터를 역임하고 수많은 대학에서 실내디자인과 건축, 문화를 가르쳤다. 현재 그는 (주)르몽드레죠 건축·디자인 사무소의 대표이자 뉴칼레도니아의 한국문화원장으로 활약 중이다. 이제 50대를 맞아 친환경디자인을 위해 노력한다는 그에게, 디자이너와 건축가의 세계 그리고 모교 국민대학교에 대해 들어봤다.

현재 (주)르몽드레죠 대표로서 다양한 분야에서 활약하고 계십니다. 어떤 작업들을 하고 계시는지 설명 해주시겠습니까?
건축과 디자인에 관한 일을 합니다. (매번 다른 작업들을 하기 때문에)정확한 것은 없습니다. 예상할 수 있는 일은 있지만 매번 다른 디자인에 설렙니다.

한 회사의 대표이자 디자이너, 건축가로서 일을 할 때 어떤 철학을 갖고 하시는지 궁금합니다.
디자인의 방향이 맞는 일을 하려고 노력합니다. 할 수 있는 일을 찾거나 클라이언트(주문자)를 선택하는 일은 매우 중요한 것 같습니다. 주문자가 디자이너를 선택하듯 저 역시 주문자를 선택하기도 합니다.  그래야 디자인을 잘 할 수 있기 때문이고 상호 수평적인 관계가 형성된다고 봅니다. 경제논리에 의해 선택되는 디자인은 사양하고 앞으로도 그럴 것 입니다.

이 분야에서 성공하기 위한 최고의 덕목은 뭐라고 생각하십니까?
성공의 의미는 매우 다양 합니다. 그러나 결국은 다양성을 이해하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새로운 문화를 이해하고 나와 다른 것을 존중할 수 있을 때 이미 성공했다고 생각합니다.

국민대 조형대학에 입학할 당시(1979년)가 궁금합니다. 입학하게된 계기를 좀 말씀해주시기 바랍니다.
바우하우스 같은 곳으로 생각하려 했습니다. (사실은)입학을 못할 뻔 했었습니다. 나중해 입학해서 보니 조형대 생활미술학과 전 학년 남학생이 10명이 안되었어요. 저희 과 입학 동기는 남학생 4명이었습니다. 군사훈련을 할 수 없을 정도의 인원이었죠.

(편집자 주: 바우하우스는1919년부터 1933년까지 독일 에서 설립·운영된 학교로, 미술과 공예, 사진, 건축 등과 관련된 종합적인 내용을 교육하였다. 바우하우스의 양식은 현대식 건축과 디자인에 큰 영향을 주게 되었다. 또한, 이어지는 예술, 건축, 그래픽 디자인, 내부 디자인, 공업 디자인, 활판의 발전에 깊은 영향을 주었다.)

재학시절 북악문화대상, 공로상등의 수상경력이 눈에 띕니다. 학교생활은 어땠습니까?
순탄치만은 못했습니다. 창작이 획일적이면 안 되는데... 그땐 그랬습니다. 아마도 튀는 학생은 아니지만... 저는 주류는 아닌 것 같은 학교생활을 한 것 같습니다.

선배님께서 처음 조형예술을 배우셨던 곳이 국민대학교라고 볼 수 있는데요. 당시에 배웠던 내용들이 훗날 디자이너 겸 건축가로 활동하는데 어떤 도움이 되었는지 궁금합니다.
조형대학을 졸업하고 동대학원에서 1학기동안 공부하고 그해 9월에 유학을 갔습니다. 유럽에선 한국의 교육 바탕이 중요한 자산이 되었고 한국에 돌아 와선 유럽과 캐나다의 자산이 중요 했습니다. 무엇을 버릴 것 없는 것 같습니다. 그땐 가르쳐주는 분들이 있었고 지금은 혼자 배우고 그럽니다.

디자이너이자 건축가로서 국민대 캠퍼스는 어떻게 평가하십니까? 
재건축을 잘 한 것 같습니다. 학교부지는 제가 공부할 때와 크게 다르지 않은데... 규모는 입체적으로 크게 변했습니다. 제가 공부 할 때는 전원적인 학교 같다고 했는데... 현재는 도시의 평범한 학교 같습니다. 그런데 조형대학, 예술대학, 건축대학이 서로 소통이 잘되는지 궁금합니다. 언어학적 모순을 스스로는 어떻게 극복하는지 궁금합니다.

혹시 디자인을 공부하게 된 특별한 계기가 있었습니까?
모든 선택이 그러하듯 내가 필요한 곳에 있고 싶었기 때문에 선택하게 되었습니다.

뉴칼레도니아 한국문화원장으로 일하시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그곳과 인연을 맺게 된 계기가 궁금하네요. 
저는 프랑스 파리에서 대학과 대학원에서 조형예술학으로 학위를 받았습니다. 그때 등록금이 유럽인과 제가 동일했습니다. 그래서 그때 한 약속이 있습니다. 제가 40대가 돼서 조금이라도 여유가 있다면 프랑스에 도움 되는 일을 해 제가 공부할 때 누린 혜택을 돌려 줄 거라 약속 했습니다. 그래서 지금은 프랑스 해외영토인 뉴칼레도니아에서 한국문화를 프랑스인에게 알리고 있습니다. 5년 정도 생각 했는데 올해가 5년째 되는 해입니다. 그래서 이곳에 살고 다국적 디자인을 합니다.

건축 사회학으로 박사과정을 마치셨고 저서를 봐도 문화 혹은 사회와 디자인과의 관계에 대해 관심이 많으신 것 같습니다. 그 부분에 대한 생각을 듣고 싶습니다.
사회학적 관계를 생각하지 않고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시대라고 생각합니다. 개인도 중요하고 집단도 중요 합니다. 양자 간의 관계 뿐 아니라  다자간의 관계 속에서 존재하고 있다고 봅니다. 디자인도 존재해야하고 건축도 인간과 유기적인 소통이 없다면 낙오될 수 밖 에는 없습니다. 문화란 사회의 한 부분이고 행위의 기본이라 생각합니다. 종과 횡의 입체적 바란스(Balance)는 자연 같은 것이고 인간은 사회란 공간 속에서 자연과 같은 조화로움을 추구하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래서 디자이너는 넓은 사회의 관계를 이어주는 역할이므로 이런 인성을 가진 디자이너가 되려면 필요한 부분이라 생각해 사회학과 문화의 중요성을 말하고 싶습니다.

최근 몇 년 동안은 와인과 차, 커피 브랜드 관련 일들을 진행하신다고 들었습니다. 정확히 어떤 것들입니까?
40대의 10년은 필요한 곳에서 강의와 디자인을 정신없이 했습니다. 한 대학의  '디자인과 문화' 강의는 수백 명의 학생이 수강을 했어요. 인터넷 강의도, 전국의 12개 대학과 대학원을 공통된 이슈로 중간고사를 월간지에 보기도 했었지요.  이젠 50대가 되었는데... 친환경적 디자인을 하려고 노력합니다. 충북 영동에 한국 와이너리가 있습니다. 외국 와인에 외면당하는 한국와인을 위해 디자인을 해주고 싶었습니다. 2004년 한 마켓에서 한국 와인을 보고 모두 스튜디오로 사왔습니다. 그리고 맛을 연구한 것이 아니라 디자인을 연구 했지요... 제가 좋아서 했지요. 지금 그 와이너리의 디자인을 4년째 해오고 있습니다. 차와 커피도 같은 맥락에서 3년째 디자인을 합니다.

일을 직접 하는 것과 가르치는 것은 어떤 차이가 있던가요?
배우고 가르치고 일하는 것은 큰 차이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유독 한국의 대학문화는 간극의 차이가 큰 것 같다고 느낀 적이 있습니다. 그런 거리를 줄이고 싶었습니다. 배우고 가르치고 일하는 것은 마치 뫼비우스의 띠처럼 동일한 가치를 찾아가는 과정일 뿐인데... 역할의 분담도 중요하지만 화합도 매우 중요합니다. 경쟁도 중요하지만 존중도 이루어져야 하고요. 그래서 한국에서 강의하는 동안 다양한 대학과 대학교에서 학부에서 박사과정까지 다양하게 강의를 했습니다. 그래야 한국적 다양성이 무엇인지, 무엇이 필요한지 알 것 같았기 때문이었지요.

존경하는 디자이너 혹은 건축가에 대한 이야기가 듣고싶습니다.
너무 많습니다. 만나본 분도 있고 책을 통해서 만나본 분들이 대다수인데... 제가 만난 분 중에 2분을 말하려 합니다. 김수근과 백남준입니다. 제가 국민대학교를 다닐 때 김수근 학장님이셨지요. 제가 과슈(gouache: 수용성의 아라비아고무를 섞은 불투명한 수채물감 또는 이 물감을 사용하여 그린 그림)로 그린 그림을 좋아해 주셨지요. 파리의 대학에 특강에서 백남준 선생님을 봤습니다. 늦은 시간에 강의를 했는데... 그 이유가 오래 기억되려고 그랬다고 했어요. 그리고 제게 한국인이냐고 물었지요. 본인의 카탈로그에 싸인을 해 주었어요... 그 외에 존경하는 분들은 10컨테이너쯤 되는데 모두 제 서재에 책으로 있습니다. 가능한 많은 분을 존경하고 앞으로도 그럴 것 입니다.

앞으로의 계획과 꿈이 무엇인지 알고 싶네요.
딸이 캐나다에서 환경디자인과 건축을 공부합니다. 앞으론 후배들과 자식이 열심히 일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 것 입니다.  젊은 2세들이 일할 수 있는 곳을 만들고 그곳에서 늙어선 관리인 하는 게 꿈 입니다. 꿈은 이루어진다고 하지요? 저도 그러고 싶습니다.

미래 실내디자이너 혹은 건축가를 꿈꾸는 국민대 학생들에게 조언 한마디 부탁드립니다.
자신의 일에 관해 더 넓게 존중하고 좀 더 사랑하라고 말씀 드립니다. 그리고 더 많이 소통하고 넓은 세계를 위해 존재하는 건축가, 디자이너가 되길 바랍니다. 그러려면 길게 사랑하는 법을 알아야 합니다.

곽 데오도르 동문 관련 웹페이지

(주)르몽드레죠 http://www.lemondereseau.com/

뉴 칼레도니아 한국문화원 http://www.centreculturelcoreen.org/

[직업의 세계] 디자이너 겸 건축가 곽 데오도르(생활미술 79) 동문

 

 건축과 디자인을 위해 평생을 쉼 없이 달려온 이 남자, 곽 데오도르(생활미술 79). 국민대 조형대 생활미술학과 졸업. 그리고 이어진 파리 유학. 젊은 시절 캐나다 토탈 미술관, TMCA 현대미술관, CFMT-TV 디렉터를 역임하고 수많은 대학에서 실내디자인과 건축, 문화를 가르쳤다. 현재 그는 (주)르몽드레죠 건축·디자인 사무소의 대표이자 뉴칼레도니아의 한국문화원장으로 활약 중이다. 이제 50대를 맞아 친환경디자인을 위해 노력한다는 그에게, 디자이너와 건축가의 세계 그리고 모교 국민대학교에 대해 들어봤다.

현재 (주)르몽드레죠 대표로서 다양한 분야에서 활약하고 계십니다. 어떤 작업들을 하고 계시는지 설명 해주시겠습니까?
건축과 디자인에 관한 일을 합니다. (매번 다른 작업들을 하기 때문에)정확한 것은 없습니다. 예상할 수 있는 일은 있지만 매번 다른 디자인에 설렙니다.

한 회사의 대표이자 디자이너, 건축가로서 일을 할 때 어떤 철학을 갖고 하시는지 궁금합니다.
디자인의 방향이 맞는 일을 하려고 노력합니다. 할 수 있는 일을 찾거나 클라이언트(주문자)를 선택하는 일은 매우 중요한 것 같습니다. 주문자가 디자이너를 선택하듯 저 역시 주문자를 선택하기도 합니다.  그래야 디자인을 잘 할 수 있기 때문이고 상호 수평적인 관계가 형성된다고 봅니다. 경제논리에 의해 선택되는 디자인은 사양하고 앞으로도 그럴 것 입니다.

이 분야에서 성공하기 위한 최고의 덕목은 뭐라고 생각하십니까?
성공의 의미는 매우 다양 합니다. 그러나 결국은 다양성을 이해하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새로운 문화를 이해하고 나와 다른 것을 존중할 수 있을 때 이미 성공했다고 생각합니다.

국민대 조형대학에 입학할 당시(1979년)가 궁금합니다. 입학하게된 계기를 좀 말씀해주시기 바랍니다.
바우하우스 같은 곳으로 생각하려 했습니다. (사실은)입학을 못할 뻔 했었습니다. 나중해 입학해서 보니 조형대 생활미술학과 전 학년 남학생이 10명이 안되었어요. 저희 과 입학 동기는 남학생 4명이었습니다. 군사훈련을 할 수 없을 정도의 인원이었죠.

(편집자 주: 바우하우스는1919년부터 1933년까지 독일 에서 설립·운영된 학교로, 미술과 공예, 사진, 건축 등과 관련된 종합적인 내용을 교육하였다. 바우하우스의 양식은 현대식 건축과 디자인에 큰 영향을 주게 되었다. 또한, 이어지는 예술, 건축, 그래픽 디자인, 내부 디자인, 공업 디자인, 활판의 발전에 깊은 영향을 주었다.)

재학시절 북악문화대상, 공로상등의 수상경력이 눈에 띕니다. 학교생활은 어땠습니까?
순탄치만은 못했습니다. 창작이 획일적이면 안 되는데... 그땐 그랬습니다. 아마도 튀는 학생은 아니지만... 저는 주류는 아닌 것 같은 학교생활을 한 것 같습니다.

선배님께서 처음 조형예술을 배우셨던 곳이 국민대학교라고 볼 수 있는데요. 당시에 배웠던 내용들이 훗날 디자이너 겸 건축가로 활동하는데 어떤 도움이 되었는지 궁금합니다.
조형대학을 졸업하고 동대학원에서 1학기동안 공부하고 그해 9월에 유학을 갔습니다. 유럽에선 한국의 교육 바탕이 중요한 자산이 되었고 한국에 돌아 와선 유럽과 캐나다의 자산이 중요 했습니다. 무엇을 버릴 것 없는 것 같습니다. 그땐 가르쳐주는 분들이 있었고 지금은 혼자 배우고 그럽니다.

디자이너이자 건축가로서 국민대 캠퍼스는 어떻게 평가하십니까? 
재건축을 잘 한 것 같습니다. 학교부지는 제가 공부할 때와 크게 다르지 않은데... 규모는 입체적으로 크게 변했습니다. 제가 공부 할 때는 전원적인 학교 같다고 했는데... 현재는 도시의 평범한 학교 같습니다. 그런데 조형대학, 예술대학, 건축대학이 서로 소통이 잘되는지 궁금합니다. 언어학적 모순을 스스로는 어떻게 극복하는지 궁금합니다.

혹시 디자인을 공부하게 된 특별한 계기가 있었습니까?
모든 선택이 그러하듯 내가 필요한 곳에 있고 싶었기 때문에 선택하게 되었습니다.

뉴칼레도니아 한국문화원장으로 일하시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그곳과 인연을 맺게 된 계기가 궁금하네요. 
저는 프랑스 파리에서 대학과 대학원에서 조형예술학으로 학위를 받았습니다. 그때 등록금이 유럽인과 제가 동일했습니다. 그래서 그때 한 약속이 있습니다. 제가 40대가 돼서 조금이라도 여유가 있다면 프랑스에 도움 되는 일을 해 제가 공부할 때 누린 혜택을 돌려 줄 거라 약속 했습니다. 그래서 지금은 프랑스 해외영토인 뉴칼레도니아에서 한국문화를 프랑스인에게 알리고 있습니다. 5년 정도 생각 했는데 올해가 5년째 되는 해입니다. 그래서 이곳에 살고 다국적 디자인을 합니다.

건축 사회학으로 박사과정을 마치셨고 저서를 봐도 문화 혹은 사회와 디자인과의 관계에 대해 관심이 많으신 것 같습니다. 그 부분에 대한 생각을 듣고 싶습니다.
사회학적 관계를 생각하지 않고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시대라고 생각합니다. 개인도 중요하고 집단도 중요 합니다. 양자 간의 관계 뿐 아니라  다자간의 관계 속에서 존재하고 있다고 봅니다. 디자인도 존재해야하고 건축도 인간과 유기적인 소통이 없다면 낙오될 수 밖 에는 없습니다. 문화란 사회의 한 부분이고 행위의 기본이라 생각합니다. 종과 횡의 입체적 바란스(Balance)는 자연 같은 것이고 인간은 사회란 공간 속에서 자연과 같은 조화로움을 추구하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래서 디자이너는 넓은 사회의 관계를 이어주는 역할이므로 이런 인성을 가진 디자이너가 되려면 필요한 부분이라 생각해 사회학과 문화의 중요성을 말하고 싶습니다.

최근 몇 년 동안은 와인과 차, 커피 브랜드 관련 일들을 진행하신다고 들었습니다. 정확히 어떤 것들입니까?
40대의 10년은 필요한 곳에서 강의와 디자인을 정신없이 했습니다. 한 대학의  '디자인과 문화' 강의는 수백 명의 학생이 수강을 했어요. 인터넷 강의도, 전국의 12개 대학과 대학원을 공통된 이슈로 중간고사를 월간지에 보기도 했었지요.  이젠 50대가 되었는데... 친환경적 디자인을 하려고 노력합니다. 충북 영동에 한국 와이너리가 있습니다. 외국 와인에 외면당하는 한국와인을 위해 디자인을 해주고 싶었습니다. 2004년 한 마켓에서 한국 와인을 보고 모두 스튜디오로 사왔습니다. 그리고 맛을 연구한 것이 아니라 디자인을 연구 했지요... 제가 좋아서 했지요. 지금 그 와이너리의 디자인을 4년째 해오고 있습니다. 차와 커피도 같은 맥락에서 3년째 디자인을 합니다.

일을 직접 하는 것과 가르치는 것은 어떤 차이가 있던가요?
배우고 가르치고 일하는 것은 큰 차이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유독 한국의 대학문화는 간극의 차이가 큰 것 같다고 느낀 적이 있습니다. 그런 거리를 줄이고 싶었습니다. 배우고 가르치고 일하는 것은 마치 뫼비우스의 띠처럼 동일한 가치를 찾아가는 과정일 뿐인데... 역할의 분담도 중요하지만 화합도 매우 중요합니다. 경쟁도 중요하지만 존중도 이루어져야 하고요. 그래서 한국에서 강의하는 동안 다양한 대학과 대학교에서 학부에서 박사과정까지 다양하게 강의를 했습니다. 그래야 한국적 다양성이 무엇인지, 무엇이 필요한지 알 것 같았기 때문이었지요.

존경하는 디자이너 혹은 건축가에 대한 이야기가 듣고싶습니다.
너무 많습니다. 만나본 분도 있고 책을 통해서 만나본 분들이 대다수인데... 제가 만난 분 중에 2분을 말하려 합니다. 김수근과 백남준입니다. 제가 국민대학교를 다닐 때 김수근 학장님이셨지요. 제가 과슈(gouache: 수용성의 아라비아고무를 섞은 불투명한 수채물감 또는 이 물감을 사용하여 그린 그림)로 그린 그림을 좋아해 주셨지요. 파리의 대학에 특강에서 백남준 선생님을 봤습니다. 늦은 시간에 강의를 했는데... 그 이유가 오래 기억되려고 그랬다고 했어요. 그리고 제게 한국인이냐고 물었지요. 본인의 카탈로그에 싸인을 해 주었어요... 그 외에 존경하는 분들은 10컨테이너쯤 되는데 모두 제 서재에 책으로 있습니다. 가능한 많은 분을 존경하고 앞으로도 그럴 것 입니다.

앞으로의 계획과 꿈이 무엇인지 알고 싶네요.
딸이 캐나다에서 환경디자인과 건축을 공부합니다. 앞으론 후배들과 자식이 열심히 일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 것 입니다.  젊은 2세들이 일할 수 있는 곳을 만들고 그곳에서 늙어선 관리인 하는 게 꿈 입니다. 꿈은 이루어진다고 하지요? 저도 그러고 싶습니다.

미래 실내디자이너 혹은 건축가를 꿈꾸는 국민대 학생들에게 조언 한마디 부탁드립니다.
자신의 일에 관해 더 넓게 존중하고 좀 더 사랑하라고 말씀 드립니다. 그리고 더 많이 소통하고 넓은 세계를 위해 존재하는 건축가, 디자이너가 되길 바랍니다. 그러려면 길게 사랑하는 법을 알아야 합니다.

곽 데오도르 동문 관련 웹페이지

(주)르몽드레죠 http://www.lemondereseau.com/

뉴 칼레도니아 한국문화원 http://www.centreculturelcoreen.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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