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특집

[국민대웹진unik-스페셜]발레리나 김주원

  • 11.05.20 / 박채형

uniK : 국립발레단이 9년만에 선보인 <지젤> 공연이 4층까지 전석 매진이라는 기록적인 성황으로 막을 내렸는데요. 이렇게 큰 공연이 끝났는데 쉬지를 않으시네요?
김주원 : 항상 다음 공연이 예정돼 있으니까요. 저희는 공연 직후 바로 다음 작품을 준비하는 게 더 익숙해요. 국립발레단 같은 경우는 1년에 120회 넘게 공연이 있어요. 그래서 무용수들이 대부분 3~4개 정도의 작품을 동시에 연습하고 있어요.
 
uniK : 김연아 선수 때문에 이 <지젤>이란 작품 자체가 화제가 되고 있기도 해요. 이 발레의 어떤 특성이 사람들을 매혹시키는 걸까요?
김주원 : 춤을 춘지는 20년이 넘었고 발레 한지는 14년이 넘어가는데, <지젤>은 하면 할수록 힘들고 매력 있는 작품 같아요. 진정한 프리마 발레리나로서 인정받을 수 있는 작품이 <지젤>이기도 하거든요. 발레리나한테는 하나의 숙제와 같은 어려운 작품이에요. 화려한 테크닉은 없는 듯 보이지만 1막부터 2막까지 발레리나가 숨을 놓을 수 있는 부분이 단 한 부분도 없어요. 춤의 양도 많고 내적인 감정을 표현해야 하는 요소들이 많아서, 나이가 점점 들어가는 발레리나에게는 더 많은 예술적인 표현을 할 수 있는 부분이 그야말로 무한대죠. 그래서 제가 너무너무 사랑하는 작품이기도 하구요.
 
uniK : 국민대 홍보팀 트위터에서 받은 질문입니다. 발레를 처음 시작하신 계기는 무엇이었나요?
김주원 : 여러 가지 예술 장르를 많이 접해봤어요. 피아노, 플룻, 바이올린, 태권도도 했구요. 육상 선수이기도 했고 그림도 그렸어요. 다른 것에는 싫증을 빨리 느꼈어요. 그런데 발레는 제가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시작해 남보다 늦은 편인데도, 하면 할수록 그냥 좋았어요. 몸으로 제 이야기를, 춤으로 표현한다는 것이 정말 좋았어요.
 



 
uniK : 중 2 때 러시아 볼쇼이 발레학교로 유학을 떠나기로 한 것은 어려운 결정이었을 것 같은데요?
김주원 : 삶을 살아가는 모든 과정에는 ‘선택’이 필요하잖아요? 저 같은 경우는 그런 일이 있을 때 그렇게 크게 고민하지 않았어요. 제가 원하는 것이 너무도 확고했고 세계 최고라 불리는 볼쇼이 발레학교에 저는 가야만 됐었어요. 별다른 고민 없이 부모님을 반년 동안 졸랐어요.
 
uniK : 당시 15세의 나이에 고생을 많이 하셨을 것 같아요.
김주원 : 한국인은 저를 포함해 3명 정도였어요. 일단 언어가 안 되니까 많이 외로웠죠. 그때만 해도 구 소련에서 러시아로 개방된 지 얼마 안 됐을 때였어요. 공산주의 체제였기 때문에 의식주조차 제대로 갖춰지지 않았고, 화장실에는 잠그는 문도 없었어요. 기숙사의 몇 백 명 학생들이 전화기 한 대로 생활했고, 편지를 보내면 한 달이 넘게 걸리거나 아예 안 가는 경우가 더 많았어요. 외부와는 연락이 두절돼 있는 상태였죠. 다행히도 어릴 때여서 쉽게 러시아 애들이랑 친해지고 빨리 러시아어도 익힐 수 있었던 것 같아요. 특히 볼쇼이 발레학교는 공부 수업 양이 굉장히 많아요. 수업을 제대로 이수하지 않으면 졸업을 할 수 없거든요.
 
uniK : 발레학교라 하면 보통 춤만 출 거라 생각했는데요.
김주원 : 프로 발레리나를 만드는 예술인 양성소라 생각하시면 돼요. 춤은 몸의 언어이지만 몸의 언어를 표현하기 위해서는 마음과 머리가 준비돼야 하는 거니까요. 극장의 역사, 러시아 문화, 음악의 역사, 피아노도 배워야 했고… 수학도 하고 불어, 영어도 하고.




 
 
uniK : 무용만 하기에도 벅찰 듯 한데 수학에 불어까지... 그걸 언제 다 하나요?(웃음)
김주원 : 정말 많은 공부를 했어요, 그것도 러시아어로. 지금 제가 어떤 캐릭터를 해석하거나 표현할 때 그때 배웠던 것들이 상당히 도움이 많이 돼요. 지금도 여러 장르를 공부하고, 또 다른 장르의 공연이나 음악회, 전시회를 열심히 다니려고 하고 있고요. 그런 과정들을 통해서 제가 발레를 더 사랑하게 된 거 같아요.
 
uniK : 발레리나로서의 컨디션 유지를 위해 2박3일 이상 여행을 해본 적이 없으시다고 들었어요. 식이요법을 통한 체중 조절도 필요할 테고, 발레를 하기 위해 어찌 보면 큰 희생을 감수하고 계시는데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 발레를 할 수 있는 이유, 발레가 가진 매력은 무엇인가요?
김주원 : <백조의 호수> 전 막을 뛴 발레리나가 축구 한 게임을 뛴 선수보다 에너지 소모가 많아요. 그래서 저희는 너무너무 잘 먹구요. (웃음) 아침에 일어나면, 솔직히 발을 땅에 딛기도 어려울 만큼 몸이 아플 때도 많아요. 특히 오늘 같은 날씨에는 모든 관절이 다 아플 정도예요. (웃음) 그럼에도 불구하고 춤을 추는 이유는, 김주원이라는 발레리나를 통해 캐릭터가 가진 어떤 감동을 전달할 수 있기 때문이에요. 그를 통해서 관객 분들이 오케스트라 피트(Orchestra pit, 무대 앞 밑에 오케스트라가 위치하는 지역)를 넘어서, 같이 울고 웃는 소통이 되거든요. 또 예술이라는 게, 바쁜 일상을 살고 스트레스를 받는 사람들에게 단순한 기분 전환의 의미도 있지만, 크게는 한 사람의 인생을 바꾸어 놓기도 하더라고요. 제 춤이 어떤 사람에게는 큰 의미가 된다는 거잖아요? 춤을 춘다는 건 말로는 표현하기 힘든 마력이 있는 거 같아요. (웃음) 그리고 저 자신을 가장 쉽게 표현할 수 있는 언어이기도 하구요. 그래서 춤을 추는 것 같아요.
 
uniK : 연습을 하루에 얼마나 하시나요? 듣기로는 한 달에 15켤레의 토슈즈를 갈아치우는 엄청난 ‘연습벌레’라고 하시던데요?
김주원 : 컨템포러리 모던 발레를 할 때는 부드러운 토슈즈를 신고 하는 동작들이 많지만 <백조의 호수> 같은 경우에는 하루에 2켤레를 신을 때도 있구요. 저는 가진 조건이 훌륭한 발레리나가 아니어서 남들 한번 할 때 2~3번 해야 돼서 인대가 늘어나거나 금이 가거나 그런 상황이 아니면 항상 연습실에 나와 있는 거 같아요.
 



 
uniK : 인대가 늘어나거나 하는 부상이 잦나요?
김주원 : 저 뿐만 아니라 무용수들은 부상 위험을 상당히 많이 안고 있어요. 인대가 살짝 늘어나는 부상, 디스크, 이런 건 고질병 같은 거구요. (웃음) 항상 척추를 곧추세우는 게 몸에 좋을 거 같지만, 저희는 척추에 S자의 곡선이 없어 충격 흡수가 안 되거든요. 다른 근력을 키우긴 하지만 사람이 가진 한계 그 이상을 만들어내야 되고 사용하다 보니까. 각자 가진 아픔들이 있지요.
 
uniK : <지젤> 이후 바로 투입되셨던, <이정윤과 에뚜왈>이라는 작품을 4년 만에 다시 연기하셨는데 어떠셨나요?
김주원 : 항상 했던 작품을 추는 경우가 많아요. 기존에 했던 작품을 무대에 올려도 매년 <호두까기 인형>이나 <백조의 호수> 등에서 제 춤을 보러 와주시는 분들이 항상 있는 거잖아요? 질리지 않고 계속 사랑해 주시게끔 제가 많은 노력들을 하게 돼요. 저도 4년이 흐르는 동안 많은 경험을 했고, 많은 춤을 췄잖아요? 그런 것들이 고스란히 담긴 작품이 될 거니까 똑같은 작품이라도 많이 달랐어요. 그래서 예술가들은 쉬지 않고 새로운 작업을 해야 하는 것 같아요. 클래식을 추는 사람들은 클래식에도 충실해야 하지만 그 외적인 시도들에도 상당히 많은 노력을 해야 하고요. 새로운 것에서 얻어지는 것들이 클래식에서도 더 많은 감성을 표현할 수 있게 도와주거든요.
 
uniK : 공연 외 뮤지컬 <컨택트> 출연으로 2010년 제4회 뮤지컬어워즈 신인여우상도 수상하셨어요. 직접 연기를 하는 뮤지컬 장르도 하셨다니 놀라웠어요.
김주원 : <컨택트>는 수잔 스트로만이라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안무가이자 연출가의 작품이에요. 제가 했던 ‘노란 드레스를 입은 여인’ 역할은 해외에서도 프리마 발레리나들이 했던 역할이에요. 발레라는 기본기를 갖춘 여자 무용수들이 했던 작품이었기에 도전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노래가 없는 대신 약간의 대사가 있어 연기를 해야 했어요. 디테일한 감정을 표현하는 것부터 무대에서 제가 또 다른 방식으로 표현하는 걸 배울 수 있어서 그것 이후에 제 춤이 연기적으로 더 성숙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기회가 되면 저는 또 해보고 싶어요. 지금은 발레단에서조차 여러 시도들을 하잖아요? 연극과 함께 발레를 공연한다거나 실제로 무대에서 소리를 지르면서 추는 춤들도 있고, 비보이랑 함께 추는 연극도 있고… 여러 장르들이 함께 어떤 새로운 걸 만들어내는 변화가 많은데 시대가 변해가면서 아티스트뿐 아니라 관객 분들도 그런 것을 원하시는 것 같아요. 향후로도 이런 좋은 공연, 발레리나 김주원을 필요로 하는 작품이 있다면, 관객들에게 주는 철학과 메시지가 있는 작품이라면 저는 또 하고 싶어요.
 
 



 
uniK : 공연에, 연습에, 새로운 시도에 정말 쉴 새가 없으시네요!
김주원 : 욕심이 많아서일 수도 있는데요. 아이러니하게도 발레리나라는 직업은 더 깊이 있는 표현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순간이 무대에서 내려가는 순간이 될 수 있는 거잖아요? 생명이 그리 길지 않아요. 클래식 발레리나로서 제가 무대에 서는 시간이 그리 길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저에게 주어진 순간 순간에 항상 최선을 다하면서 후회하지 않도록 춤추다 보니까, 이것저것 새로운 시도들에도 욕심을 내보는 거 같아요. 가장 많은 감동을 줄 수 있는 시기까지는 쉬지 않고 뛸 것 같아요.
 
uniK : 2006년에 받으신 브누아 드 라 당스 상을 받으신 얘길 빼놓을 수가 없어요.
김주원 : 실은 상을 받기 반 년 전쯤 저는 ‘춤을 관둬야 한다’는 사형 선고와 같은 진단을 받았어요. ‘족저근막염’이라는 질환인데, 축구, 태권도 선수들이 그것 때문에 선수 생활을 많이 마감해요. 백방으로 알아봤는데 수술을 해도 토슈즈를 신을 수 없다고 하더라고요. 그땐 너무 아파서 걷지도 못했어요. 왜 운동선수들 중에는 무릎이 끊어져서도 경기를 진행하는 경우가 있어요. 그래서 생각했어요. ‘그래, 내가 왜 이걸 못 이겨낼까? 다른 근육을 단련시키거나 병을 이겨낼 만한 다른 방법을 찾아내보자’고 수소문해서 반년 넘게 하루 12시간 이상을 운동을 했어요. 5~10kg짜리 아령을 들고, 복근 단련을 위해 윗몸 일으키기 천 개를 넘게 하고… 태릉선수촌의 운동선수들이 하는 거랑 똑같이 훈련을 받아서 그 병을 이겨냈어요. 그때 제 꿈은 토슈즈를 신는 것이었고, 토슈즈를 신어서 아프지 않는 것이었어요. 그 반년 동안에 예술의 전당 근처에는 오지도 않았어요. 너무 춤이 추고 싶을 것 같아서. 그러다가 다시 토슈즈를 신었는데, 안 아픈 거예요! 그래서 발레단에 다시 돌아왔어요. 잠정적으로 저는 사표를 쓸 생각을 하고 있었던 그때가 2005년 말, 하반기였어요. 토슈즈를 신고 춤을 추는데 통증이 없이 춤을 추는 거에 저는 너무나 큰 감동이어서, 그 브누아 드 라 당스 받은 것 자체도 너무 감사했지만 저는 춤을 출 수 있다는 게 더 좋았던 시기였어요.
 
uniK : 다시 춤을 출 수 있다는 사실이 상보다 더 기쁜 일이었군요!
김주원 : 음, 물론 그 상이, 세계에서 한 명, 발레리나한테 주는 거니까 저에게는 너무나 영광이었죠. 제가 전설이고 꿈이라 생각했던 발레리나들이 다 받았던 상이에요. 실제로 거기 심사위원으로 오셨던 분들이 어릴 때 비디오로 보면서 꿈을 키웠던 발레리나, 발레리노들이었어요. 그 상을 받은 것도 제게는 놀랍고 엄청난 일이었지만, 실은 춤을 출 수 있다는 것이 더 좋았던 것 같아요.(웃음)




 
uniK : 공연을 하시면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작품을 하나 꼽으신다면요?
김주원 : 제가 췄던 모든 작품이요. 왜냐하면 한 작품 한 작품 할 때마다 엄청난 노력과 에너지와 저 자신을 불어넣기 때문에 그 어떤 것 하나도 소중하지 않은 게 없는 거 같아요.
 
uniK : 발레에 친숙하지 않은 관객에게 꼭 추천하고픈 작품이 있다면 어떤 건가요?
김주원 : 국립발레단에서 올려지는 모든 작품들이요. 관객 분들께 어떻게 하면 다채로운 감동을 줄 지를 아주 고심해서 작품을 선정해 내거든요. 단지 처음 발레를 접하시는 분의 경우는 해설이 있는 발레라거나, 클래식 발레부터 시작하시는 게 좋을 거 같다는 생각은 들어요. 클래식 발레는 어렵지 않잖아요? 동화가 주제이고, 귀에 익숙한 음악이고, 종합예술이다 보니까 음악이나 미술을 좋아하시는 분들도 다 만족하면서 보실 수 있으니까요.(웃음)
 
uniK : 말씀하신 대로 직업으로서의 발레리나는 수명이 짧습니다. 향후 후배들을 양성하신다거나 한국 발레의 발전을 위해 계획하고 계신 일이 있으신가요?
김주원 : 굉장히 거창하게 들리네요?(웃음) 후배들에게 제가 가진 노하우를 가르쳐주는 건 당연한 거 같아요. 하지만 향후에 어떤 거창한 계획을 가지고 있진 않아요. 춤을 추는 동안은, 오로지 춤에 포커스가 맞춰져 있어서. 그리고 무대에 서는 사람이 그 외의 것을 생각하는 순간이 바로 무대에서 내려와야 할 순간인 것 같아요. 그래서 저는 그냥 관객 분들에게 다음 작품을 어떻게 보여 드리나… 이 정도? 죄송해요 제가 좀 미련해서… 다음 인생을 위한 어떤 큰 어떤 것을 갖고 있지 못해요.(웃음)
 

 
[발레리나 김주원]
 
성신여자대학교 융합문화예술대학 겸임교수
국립발레단 수석 무용수
 
2010 제4회 더뮤지컬어워즈 신인여우상 수상
2006 제14회 브누아 드 라 당스 최고 여성 무용수상 수상
2004 문화관광부 오늘의 젊은 예술가상 수상
2002 한국발레협회상 프리마 발레리나상 수상
2002 문화관광부 장관상 수상
2001 모스크바 국제발레콩쿠르 여자부문 동상 수상
2000 제5회 한국발레협회상 신인상 수상
1997 볼쇼이발레학교 졸업
 

 
 
국민웹진 uniK가 만나본 세계적인 발레리나 김주원!
인터뷰의 비하인드 스토리와 국민대학교 학생들에게 전하는 메시지가
5월 23일부터 웹진 블로그에서 라이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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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대웹진unik-스페셜]발레리나 김주원

uniK : 국립발레단이 9년만에 선보인 <지젤> 공연이 4층까지 전석 매진이라는 기록적인 성황으로 막을 내렸는데요. 이렇게 큰 공연이 끝났는데 쉬지를 않으시네요?
김주원 : 항상 다음 공연이 예정돼 있으니까요. 저희는 공연 직후 바로 다음 작품을 준비하는 게 더 익숙해요. 국립발레단 같은 경우는 1년에 120회 넘게 공연이 있어요. 그래서 무용수들이 대부분 3~4개 정도의 작품을 동시에 연습하고 있어요.
 
uniK : 김연아 선수 때문에 이 <지젤>이란 작품 자체가 화제가 되고 있기도 해요. 이 발레의 어떤 특성이 사람들을 매혹시키는 걸까요?
김주원 : 춤을 춘지는 20년이 넘었고 발레 한지는 14년이 넘어가는데, <지젤>은 하면 할수록 힘들고 매력 있는 작품 같아요. 진정한 프리마 발레리나로서 인정받을 수 있는 작품이 <지젤>이기도 하거든요. 발레리나한테는 하나의 숙제와 같은 어려운 작품이에요. 화려한 테크닉은 없는 듯 보이지만 1막부터 2막까지 발레리나가 숨을 놓을 수 있는 부분이 단 한 부분도 없어요. 춤의 양도 많고 내적인 감정을 표현해야 하는 요소들이 많아서, 나이가 점점 들어가는 발레리나에게는 더 많은 예술적인 표현을 할 수 있는 부분이 그야말로 무한대죠. 그래서 제가 너무너무 사랑하는 작품이기도 하구요.
 
uniK : 국민대 홍보팀 트위터에서 받은 질문입니다. 발레를 처음 시작하신 계기는 무엇이었나요?
김주원 : 여러 가지 예술 장르를 많이 접해봤어요. 피아노, 플룻, 바이올린, 태권도도 했구요. 육상 선수이기도 했고 그림도 그렸어요. 다른 것에는 싫증을 빨리 느꼈어요. 그런데 발레는 제가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시작해 남보다 늦은 편인데도, 하면 할수록 그냥 좋았어요. 몸으로 제 이야기를, 춤으로 표현한다는 것이 정말 좋았어요.
 



 
uniK : 중 2 때 러시아 볼쇼이 발레학교로 유학을 떠나기로 한 것은 어려운 결정이었을 것 같은데요?
김주원 : 삶을 살아가는 모든 과정에는 ‘선택’이 필요하잖아요? 저 같은 경우는 그런 일이 있을 때 그렇게 크게 고민하지 않았어요. 제가 원하는 것이 너무도 확고했고 세계 최고라 불리는 볼쇼이 발레학교에 저는 가야만 됐었어요. 별다른 고민 없이 부모님을 반년 동안 졸랐어요.
 
uniK : 당시 15세의 나이에 고생을 많이 하셨을 것 같아요.
김주원 : 한국인은 저를 포함해 3명 정도였어요. 일단 언어가 안 되니까 많이 외로웠죠. 그때만 해도 구 소련에서 러시아로 개방된 지 얼마 안 됐을 때였어요. 공산주의 체제였기 때문에 의식주조차 제대로 갖춰지지 않았고, 화장실에는 잠그는 문도 없었어요. 기숙사의 몇 백 명 학생들이 전화기 한 대로 생활했고, 편지를 보내면 한 달이 넘게 걸리거나 아예 안 가는 경우가 더 많았어요. 외부와는 연락이 두절돼 있는 상태였죠. 다행히도 어릴 때여서 쉽게 러시아 애들이랑 친해지고 빨리 러시아어도 익힐 수 있었던 것 같아요. 특히 볼쇼이 발레학교는 공부 수업 양이 굉장히 많아요. 수업을 제대로 이수하지 않으면 졸업을 할 수 없거든요.
 
uniK : 발레학교라 하면 보통 춤만 출 거라 생각했는데요.
김주원 : 프로 발레리나를 만드는 예술인 양성소라 생각하시면 돼요. 춤은 몸의 언어이지만 몸의 언어를 표현하기 위해서는 마음과 머리가 준비돼야 하는 거니까요. 극장의 역사, 러시아 문화, 음악의 역사, 피아노도 배워야 했고… 수학도 하고 불어, 영어도 하고.




 
 
uniK : 무용만 하기에도 벅찰 듯 한데 수학에 불어까지... 그걸 언제 다 하나요?(웃음)
김주원 : 정말 많은 공부를 했어요, 그것도 러시아어로. 지금 제가 어떤 캐릭터를 해석하거나 표현할 때 그때 배웠던 것들이 상당히 도움이 많이 돼요. 지금도 여러 장르를 공부하고, 또 다른 장르의 공연이나 음악회, 전시회를 열심히 다니려고 하고 있고요. 그런 과정들을 통해서 제가 발레를 더 사랑하게 된 거 같아요.
 
uniK : 발레리나로서의 컨디션 유지를 위해 2박3일 이상 여행을 해본 적이 없으시다고 들었어요. 식이요법을 통한 체중 조절도 필요할 테고, 발레를 하기 위해 어찌 보면 큰 희생을 감수하고 계시는데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 발레를 할 수 있는 이유, 발레가 가진 매력은 무엇인가요?
김주원 : <백조의 호수> 전 막을 뛴 발레리나가 축구 한 게임을 뛴 선수보다 에너지 소모가 많아요. 그래서 저희는 너무너무 잘 먹구요. (웃음) 아침에 일어나면, 솔직히 발을 땅에 딛기도 어려울 만큼 몸이 아플 때도 많아요. 특히 오늘 같은 날씨에는 모든 관절이 다 아플 정도예요. (웃음) 그럼에도 불구하고 춤을 추는 이유는, 김주원이라는 발레리나를 통해 캐릭터가 가진 어떤 감동을 전달할 수 있기 때문이에요. 그를 통해서 관객 분들이 오케스트라 피트(Orchestra pit, 무대 앞 밑에 오케스트라가 위치하는 지역)를 넘어서, 같이 울고 웃는 소통이 되거든요. 또 예술이라는 게, 바쁜 일상을 살고 스트레스를 받는 사람들에게 단순한 기분 전환의 의미도 있지만, 크게는 한 사람의 인생을 바꾸어 놓기도 하더라고요. 제 춤이 어떤 사람에게는 큰 의미가 된다는 거잖아요? 춤을 춘다는 건 말로는 표현하기 힘든 마력이 있는 거 같아요. (웃음) 그리고 저 자신을 가장 쉽게 표현할 수 있는 언어이기도 하구요. 그래서 춤을 추는 것 같아요.
 
uniK : 연습을 하루에 얼마나 하시나요? 듣기로는 한 달에 15켤레의 토슈즈를 갈아치우는 엄청난 ‘연습벌레’라고 하시던데요?
김주원 : 컨템포러리 모던 발레를 할 때는 부드러운 토슈즈를 신고 하는 동작들이 많지만 <백조의 호수> 같은 경우에는 하루에 2켤레를 신을 때도 있구요. 저는 가진 조건이 훌륭한 발레리나가 아니어서 남들 한번 할 때 2~3번 해야 돼서 인대가 늘어나거나 금이 가거나 그런 상황이 아니면 항상 연습실에 나와 있는 거 같아요.
 



 
uniK : 인대가 늘어나거나 하는 부상이 잦나요?
김주원 : 저 뿐만 아니라 무용수들은 부상 위험을 상당히 많이 안고 있어요. 인대가 살짝 늘어나는 부상, 디스크, 이런 건 고질병 같은 거구요. (웃음) 항상 척추를 곧추세우는 게 몸에 좋을 거 같지만, 저희는 척추에 S자의 곡선이 없어 충격 흡수가 안 되거든요. 다른 근력을 키우긴 하지만 사람이 가진 한계 그 이상을 만들어내야 되고 사용하다 보니까. 각자 가진 아픔들이 있지요.
 
uniK : <지젤> 이후 바로 투입되셨던, <이정윤과 에뚜왈>이라는 작품을 4년 만에 다시 연기하셨는데 어떠셨나요?
김주원 : 항상 했던 작품을 추는 경우가 많아요. 기존에 했던 작품을 무대에 올려도 매년 <호두까기 인형>이나 <백조의 호수> 등에서 제 춤을 보러 와주시는 분들이 항상 있는 거잖아요? 질리지 않고 계속 사랑해 주시게끔 제가 많은 노력들을 하게 돼요. 저도 4년이 흐르는 동안 많은 경험을 했고, 많은 춤을 췄잖아요? 그런 것들이 고스란히 담긴 작품이 될 거니까 똑같은 작품이라도 많이 달랐어요. 그래서 예술가들은 쉬지 않고 새로운 작업을 해야 하는 것 같아요. 클래식을 추는 사람들은 클래식에도 충실해야 하지만 그 외적인 시도들에도 상당히 많은 노력을 해야 하고요. 새로운 것에서 얻어지는 것들이 클래식에서도 더 많은 감성을 표현할 수 있게 도와주거든요.
 
uniK : 공연 외 뮤지컬 <컨택트> 출연으로 2010년 제4회 뮤지컬어워즈 신인여우상도 수상하셨어요. 직접 연기를 하는 뮤지컬 장르도 하셨다니 놀라웠어요.
김주원 : <컨택트>는 수잔 스트로만이라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안무가이자 연출가의 작품이에요. 제가 했던 ‘노란 드레스를 입은 여인’ 역할은 해외에서도 프리마 발레리나들이 했던 역할이에요. 발레라는 기본기를 갖춘 여자 무용수들이 했던 작품이었기에 도전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노래가 없는 대신 약간의 대사가 있어 연기를 해야 했어요. 디테일한 감정을 표현하는 것부터 무대에서 제가 또 다른 방식으로 표현하는 걸 배울 수 있어서 그것 이후에 제 춤이 연기적으로 더 성숙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기회가 되면 저는 또 해보고 싶어요. 지금은 발레단에서조차 여러 시도들을 하잖아요? 연극과 함께 발레를 공연한다거나 실제로 무대에서 소리를 지르면서 추는 춤들도 있고, 비보이랑 함께 추는 연극도 있고… 여러 장르들이 함께 어떤 새로운 걸 만들어내는 변화가 많은데 시대가 변해가면서 아티스트뿐 아니라 관객 분들도 그런 것을 원하시는 것 같아요. 향후로도 이런 좋은 공연, 발레리나 김주원을 필요로 하는 작품이 있다면, 관객들에게 주는 철학과 메시지가 있는 작품이라면 저는 또 하고 싶어요.
 
 



 
uniK : 공연에, 연습에, 새로운 시도에 정말 쉴 새가 없으시네요!
김주원 : 욕심이 많아서일 수도 있는데요. 아이러니하게도 발레리나라는 직업은 더 깊이 있는 표현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순간이 무대에서 내려가는 순간이 될 수 있는 거잖아요? 생명이 그리 길지 않아요. 클래식 발레리나로서 제가 무대에 서는 시간이 그리 길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저에게 주어진 순간 순간에 항상 최선을 다하면서 후회하지 않도록 춤추다 보니까, 이것저것 새로운 시도들에도 욕심을 내보는 거 같아요. 가장 많은 감동을 줄 수 있는 시기까지는 쉬지 않고 뛸 것 같아요.
 
uniK : 2006년에 받으신 브누아 드 라 당스 상을 받으신 얘길 빼놓을 수가 없어요.
김주원 : 실은 상을 받기 반 년 전쯤 저는 ‘춤을 관둬야 한다’는 사형 선고와 같은 진단을 받았어요. ‘족저근막염’이라는 질환인데, 축구, 태권도 선수들이 그것 때문에 선수 생활을 많이 마감해요. 백방으로 알아봤는데 수술을 해도 토슈즈를 신을 수 없다고 하더라고요. 그땐 너무 아파서 걷지도 못했어요. 왜 운동선수들 중에는 무릎이 끊어져서도 경기를 진행하는 경우가 있어요. 그래서 생각했어요. ‘그래, 내가 왜 이걸 못 이겨낼까? 다른 근육을 단련시키거나 병을 이겨낼 만한 다른 방법을 찾아내보자’고 수소문해서 반년 넘게 하루 12시간 이상을 운동을 했어요. 5~10kg짜리 아령을 들고, 복근 단련을 위해 윗몸 일으키기 천 개를 넘게 하고… 태릉선수촌의 운동선수들이 하는 거랑 똑같이 훈련을 받아서 그 병을 이겨냈어요. 그때 제 꿈은 토슈즈를 신는 것이었고, 토슈즈를 신어서 아프지 않는 것이었어요. 그 반년 동안에 예술의 전당 근처에는 오지도 않았어요. 너무 춤이 추고 싶을 것 같아서. 그러다가 다시 토슈즈를 신었는데, 안 아픈 거예요! 그래서 발레단에 다시 돌아왔어요. 잠정적으로 저는 사표를 쓸 생각을 하고 있었던 그때가 2005년 말, 하반기였어요. 토슈즈를 신고 춤을 추는데 통증이 없이 춤을 추는 거에 저는 너무나 큰 감동이어서, 그 브누아 드 라 당스 받은 것 자체도 너무 감사했지만 저는 춤을 출 수 있다는 게 더 좋았던 시기였어요.
 
uniK : 다시 춤을 출 수 있다는 사실이 상보다 더 기쁜 일이었군요!
김주원 : 음, 물론 그 상이, 세계에서 한 명, 발레리나한테 주는 거니까 저에게는 너무나 영광이었죠. 제가 전설이고 꿈이라 생각했던 발레리나들이 다 받았던 상이에요. 실제로 거기 심사위원으로 오셨던 분들이 어릴 때 비디오로 보면서 꿈을 키웠던 발레리나, 발레리노들이었어요. 그 상을 받은 것도 제게는 놀랍고 엄청난 일이었지만, 실은 춤을 출 수 있다는 것이 더 좋았던 것 같아요.(웃음)




 
uniK : 공연을 하시면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작품을 하나 꼽으신다면요?
김주원 : 제가 췄던 모든 작품이요. 왜냐하면 한 작품 한 작품 할 때마다 엄청난 노력과 에너지와 저 자신을 불어넣기 때문에 그 어떤 것 하나도 소중하지 않은 게 없는 거 같아요.
 
uniK : 발레에 친숙하지 않은 관객에게 꼭 추천하고픈 작품이 있다면 어떤 건가요?
김주원 : 국립발레단에서 올려지는 모든 작품들이요. 관객 분들께 어떻게 하면 다채로운 감동을 줄 지를 아주 고심해서 작품을 선정해 내거든요. 단지 처음 발레를 접하시는 분의 경우는 해설이 있는 발레라거나, 클래식 발레부터 시작하시는 게 좋을 거 같다는 생각은 들어요. 클래식 발레는 어렵지 않잖아요? 동화가 주제이고, 귀에 익숙한 음악이고, 종합예술이다 보니까 음악이나 미술을 좋아하시는 분들도 다 만족하면서 보실 수 있으니까요.(웃음)
 
uniK : 말씀하신 대로 직업으로서의 발레리나는 수명이 짧습니다. 향후 후배들을 양성하신다거나 한국 발레의 발전을 위해 계획하고 계신 일이 있으신가요?
김주원 : 굉장히 거창하게 들리네요?(웃음) 후배들에게 제가 가진 노하우를 가르쳐주는 건 당연한 거 같아요. 하지만 향후에 어떤 거창한 계획을 가지고 있진 않아요. 춤을 추는 동안은, 오로지 춤에 포커스가 맞춰져 있어서. 그리고 무대에 서는 사람이 그 외의 것을 생각하는 순간이 바로 무대에서 내려와야 할 순간인 것 같아요. 그래서 저는 그냥 관객 분들에게 다음 작품을 어떻게 보여 드리나… 이 정도? 죄송해요 제가 좀 미련해서… 다음 인생을 위한 어떤 큰 어떤 것을 갖고 있지 못해요.(웃음)
 

 
[발레리나 김주원]
 
성신여자대학교 융합문화예술대학 겸임교수
국립발레단 수석 무용수
 
2010 제4회 더뮤지컬어워즈 신인여우상 수상
2006 제14회 브누아 드 라 당스 최고 여성 무용수상 수상
2004 문화관광부 오늘의 젊은 예술가상 수상
2002 한국발레협회상 프리마 발레리나상 수상
2002 문화관광부 장관상 수상
2001 모스크바 국제발레콩쿠르 여자부문 동상 수상
2000 제5회 한국발레협회상 신인상 수상
1997 볼쇼이발레학교 졸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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