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속의 국민
배수관으로 홀커터 개발… 그래서 홀컵 크기도 관의 지름인 108㎜[최우열의 네버 업-네버 인] / 최우열(스포츠교육학과) 겸임교수
- 25.09.09 / 김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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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우열의 네버 업-네버 인
골프 역사의 세렌디피티
600년 역사 골프 기준·규칙
우연하게 만들어진 것 많아
18홀인 세인트앤드루스 GC
여기서 한 라운드 홀수 정해
정규 코스도 18홀로 굳어져
20 ~ 30개 씩 되던 클럽 개수
캐디 사정 고려 14개로 제한
‘세렌디피티(Serendipity)’는 의도하지 않거나 우연히 일어난 뜻밖의 일을 의미하는 영어단어다. 1754년 영국의 소설가 호러스 월폴(1717∼1797)이 친구들에게 쓴 편지에서 처음 만들어 사용하면서 이후 널리 퍼지게 되었다.
이 단어는 보물을 찾아 먼 여행을 떠난 인도의 세 왕자 이야기를 그린 페르시아의 ‘세렌디프의 세 왕자’라는 우화에서 가져왔다. 현대에 와서 세렌디피티는 주로 우연으로부터 이루어진 예상하지 못한 중대한 발견이나 발명이란 뜻으로 사용된다.
실수로 세균 배양 접시를 제대로 정리하지 않고 휴가를 떠났다가 발견된 인류 최초의 항생제 페니실린, 전쟁용 레이더를 연구하다 주머니 안 초콜릿이 녹는 바람에 세상에 나온 전자레인지, 강력한 접착제를 개발하다, 원료를 잘못 배합하는 실수로 탄생하게 된 포스트잇 등이 세렌디피티의 대표적인 예다.
600년이 넘는 골프의 역사에도 우연의 산물이 많다. 골프는 다른 종목과 달리 특별히 경기장의 규격이나 모양에 제한이 없다. 골프장마다 코스의 길이, 폭, 경사, 심지어 잔디 종류마저 제각각이다. 이렇게 다양한 골프장이지만 딱 하나 같은 게 있으니, 다름 아닌 홀의 크기다. 그런데 홀의 지름은 왜 하필 108㎜(4.25인치)로 정해졌을까.
퍼팅을 위해 공 앞에만 섰다 하면 백팔(108)번뇌(百八煩惱)에 빠지고 마는 골퍼의 심정을 대변한 것이라는 얼토당토않은 아재 개그도 있다. 하지만 홀의 지름이 108㎜가 된 데에는 사실 특별한 이유는 없다. 아주 우연한 계기로 정해졌다.
오랫동안 그린 관리자가 모종삽으로 대충 적당한 크기로 파서 만들던 홀은 1829년 스코틀랜드의 머셀버러 골프클럽에서 홀커터란 장비가 개발되면서 지금처럼 일정한 크기로 만들 수 있게 되었다. 당시 홀커터는 그린의 고인 물을 빼는 데 쓰던 배수관을 이용해 만들었는데, 그 크기가 공교롭게도 108㎜였다. 이것이 1891년 골프 규칙으로 수록되면서 오늘날까지 이르게 된 것이다.
현재 모든 정규 골프 코스는 18홀로 건설된다. 하지만 골프 코스가 처음부터 18홀이었던 것은 아니다.
골프의 발상지 스코틀랜드의 골프 코스들은 원래 해안선을 따라 자연스럽게 형성된 링크스로 불리던 사구(沙丘)의 지형을 있는 그대로 이용해 조성되었다. 그러다 보니 골프장마다 홀의 크기와 수가 일률적일 수 없었다.
브리티시오픈(디오픈) 챔피언십이 처음 시작된 프레스트윅은 12홀, 리스 링크스와 블랙히스는 5홀, 머셀버러는 7홀, 세인트앤드루스는 22홀, 몬트로스 링크스는 25홀이었다. 이처럼 제각각이던 골프장의 홀 수가 18개로 공식화된 것은 1842년 세인트앤드루스 골프클럽에서 규칙으로 골프 경기의 한 라운드를 18홀로 정하면서부터다.
그렇다면 15나 20처럼 딱 떨어지는 숫자가 아니라 왜 하필 어중간한 18로 정한 것일까. 이는 당시 세인트앤드루스 골프클럽의 코스가 18홀이었기 때문이다. 1897년 세인트앤드루스가 골프 규칙을 관장하는 공식 기구가 되자 새로 건설되는 골프장들이 앞다퉈 이를 따르면서 ‘사실상의 표준(de facto standard)’이 된 것이다.
14개로 제한된 골프백 속 골프클럽의 수도 우연의 결과다. 1924년 스틸 샤프트가 합법화되자 골퍼들은 보통 7개 정도였던 클럽의 숫자를 급격히 늘리기 시작했다. 기존 나무 샤프트보다 싸면서 정확한 거리 편차 설정이 가능했기 때문이다.
20개는 보통이었고 심지어 30개가 넘는 클럽을 가지고 다니는 골퍼까지 나타났고, 마침내 1938년 클럽의 수를 14개 이하로 제한하는 규칙이 만들어졌다.
이때 클럽 개수를 14개로 정한 것은 당시 보수가 낮아 먹고살 만큼의 일당을 벌기 위해 한 번에 두 개의 골프백을 메야만 했던 캐디들의 사정을 고려한 결과다. 골프백 2개를 동시에 멜 수 있도록 대충 기존의 절반 수준으로 클럽의 수를 줄인 게 14개였다.
스포츠심리학 박사, 국민대 스포츠산업대학원 교수
배수관으로 홀커터 개발… 그래서 홀컵 크기도 관의 지름인 108㎜[최우열의 네버 업-네버 인] / 최우열(스포츠교육학과) 겸임교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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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우열의 네버 업-네버 인 600년 역사 골프 기준·규칙 18홀인 세인트앤드루스 GC 20 ~ 30개 씩 되던 클럽 개수
이 단어는 보물을 찾아 먼 여행을 떠난 인도의 세 왕자 이야기를 그린 페르시아의 ‘세렌디프의 세 왕자’라는 우화에서 가져왔다. 현대에 와서 세렌디피티는 주로 우연으로부터 이루어진 예상하지 못한 중대한 발견이나 발명이란 뜻으로 사용된다.
실수로 세균 배양 접시를 제대로 정리하지 않고 휴가를 떠났다가 발견된 인류 최초의 항생제 페니실린, 전쟁용 레이더를 연구하다 주머니 안 초콜릿이 녹는 바람에 세상에 나온 전자레인지, 강력한 접착제를 개발하다, 원료를 잘못 배합하는 실수로 탄생하게 된 포스트잇 등이 세렌디피티의 대표적인 예다.
600년이 넘는 골프의 역사에도 우연의 산물이 많다. 골프는 다른 종목과 달리 특별히 경기장의 규격이나 모양에 제한이 없다. 골프장마다 코스의 길이, 폭, 경사, 심지어 잔디 종류마저 제각각이다. 이렇게 다양한 골프장이지만 딱 하나 같은 게 있으니, 다름 아닌 홀의 크기다. 그런데 홀의 지름은 왜 하필 108㎜(4.25인치)로 정해졌을까.
퍼팅을 위해 공 앞에만 섰다 하면 백팔(108)번뇌(百八煩惱)에 빠지고 마는 골퍼의 심정을 대변한 것이라는 얼토당토않은 아재 개그도 있다. 하지만 홀의 지름이 108㎜가 된 데에는 사실 특별한 이유는 없다. 아주 우연한 계기로 정해졌다.
오랫동안 그린 관리자가 모종삽으로 대충 적당한 크기로 파서 만들던 홀은 1829년 스코틀랜드의 머셀버러 골프클럽에서 홀커터란 장비가 개발되면서 지금처럼 일정한 크기로 만들 수 있게 되었다. 당시 홀커터는 그린의 고인 물을 빼는 데 쓰던 배수관을 이용해 만들었는데, 그 크기가 공교롭게도 108㎜였다. 이것이 1891년 골프 규칙으로 수록되면서 오늘날까지 이르게 된 것이다.
현재 모든 정규 골프 코스는 18홀로 건설된다. 하지만 골프 코스가 처음부터 18홀이었던 것은 아니다.
골프의 발상지 스코틀랜드의 골프 코스들은 원래 해안선을 따라 자연스럽게 형성된 링크스로 불리던 사구(沙丘)의 지형을 있는 그대로 이용해 조성되었다. 그러다 보니 골프장마다 홀의 크기와 수가 일률적일 수 없었다.
브리티시오픈(디오픈) 챔피언십이 처음 시작된 프레스트윅은 12홀, 리스 링크스와 블랙히스는 5홀, 머셀버러는 7홀, 세인트앤드루스는 22홀, 몬트로스 링크스는 25홀이었다. 이처럼 제각각이던 골프장의 홀 수가 18개로 공식화된 것은 1842년 세인트앤드루스 골프클럽에서 규칙으로 골프 경기의 한 라운드를 18홀로 정하면서부터다.
그렇다면 15나 20처럼 딱 떨어지는 숫자가 아니라 왜 하필 어중간한 18로 정한 것일까. 이는 당시 세인트앤드루스 골프클럽의 코스가 18홀이었기 때문이다. 1897년 세인트앤드루스가 골프 규칙을 관장하는 공식 기구가 되자 새로 건설되는 골프장들이 앞다퉈 이를 따르면서 ‘사실상의 표준(de facto standard)’이 된 것이다.
14개로 제한된 골프백 속 골프클럽의 수도 우연의 결과다. 1924년 스틸 샤프트가 합법화되자 골퍼들은 보통 7개 정도였던 클럽의 숫자를 급격히 늘리기 시작했다. 기존 나무 샤프트보다 싸면서 정확한 거리 편차 설정이 가능했기 때문이다.
20개는 보통이었고 심지어 30개가 넘는 클럽을 가지고 다니는 골퍼까지 나타났고, 마침내 1938년 클럽의 수를 14개 이하로 제한하는 규칙이 만들어졌다.
이때 클럽 개수를 14개로 정한 것은 당시 보수가 낮아 먹고살 만큼의 일당을 벌기 위해 한 번에 두 개의 골프백을 메야만 했던 캐디들의 사정을 고려한 결과다. 골프백 2개를 동시에 멜 수 있도록 대충 기존의 절반 수준으로 클럽의 수를 줄인 게 14개였다.
스포츠심리학 박사, 국민대 스포츠산업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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