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인! 국민인!!

[Culture Interview]김희선 전주세계소리축제 집행위원장 “동시대 문화로 인정받는 ‘우리’ 국악을 위하여” / 김희선(교양대학) 교수

가야금 전공 후 미국 유학行…음악인류학 공부로 국악 바라보는 시각 넓혀
국악의 타자화, 식민주의에서 비롯된 문화적 열패감의 결과
“일상에서 국악 듣는 감수성 갖게 되는 것이 '전통의 동시대'”
전주세계소리축제 9.15~24, 한국소리문화의전당ㆍ한옥마을 등지서 진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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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문화투데이 이은영 발행인ㆍ진보연 기자]내달 8월 8일부터 17일까지 영국 에든버러 페스티벌에서 한국 공연을 집중 소개하는 ‘포커스 온 코리아(Focus on Korea)’가 열린다. 올해 프린지 페스티벌에는 67개국 3,345개의 공연, 인터내셔널 페스티벌에는 48개국 295개의 공연이 펼쳐진다. 


 


▲국립창극단 ‘트로이의 여인들’

 

 

이중 국립창극단의 <트로이의 여인들>은 73대 1의 경쟁률을 뚫고 영국 가디언지 ‘꼭 봐야 할 50가지 공연’에 선정됐다. 2016년 국립극장과 싱가포르예술축제가 공동 제작한 <트로이의 여인들>은 에우리피데스의 동명 희곡을 바탕으로 작가 배삼식이 극본을 썼으며, 싱가포르 출신 세계적 연출가 옹켕센이 연출을 맡았다. 판소리 명창 안숙선이 소리를 엮고, 미국 아카데미영화상 4관왕에 빛나는 영화 <기생충>의 음악감독 정재일은 음악을 빚어냈다. 이처럼 판소리 다섯 바탕에서 출발한 창극은 소재 확장으로, 시대와 국경을 아우르며 동시대 관객들과 소통하고 있다. 

 

이는 ‘전주세계소리축제’의 지향점과도 궤를 같이한다. 판소리와 전통음악, 월드뮤직을 중심으로 다양한 장르의 음악을 아우르는 공연예술축제인 전주세계소리축제는 장르와 국적의 경계 없이 다양한 소리로 하나가 되는 축제의 장을 마련한다. 22회를 맞는 올해 축제는 오는 9월 15일부터 24일까지 한국소리문화의전당과 전주한옥마을 일대, 전북 14개 시·군에서 펼쳐진다. 호주·캐나다 등 해외 13개국이 참여, 89개 프로그램, 105회 공연에 나선다. 평균 연령 82세를 자랑하는 명창 5인(신영희ㆍ조상현ㆍ김일구ㆍ김수연ㆍ정순임)의 판소리 5바탕 완창부터 이희문, 이자람, 천하제일탈공작소 그리고 피아니스트 김대진과 박재홍의 피아노 듀오 공연까지 선보일 예정이다. 

 

‘상생과 회복(Coexistence and Resilience)’을 주제로 하는 올해 축제는 집행위원회를 예술분과위원회 시스템으로 구축해 축제 프로그램의 예술적 수준 강화에 나섰다. 김희선 집행위원장은 “집행부의 변화는 소리 축제 본연의 미션인 ‘정통성’과 ‘예술성’의 내재적 회복을 위함”이라고 설명했다. 


 


▲김희선 전주세계소리축제 집행위원장

 

 

김희선 집행위원장은 국악과 세계음악에 대한 학술적 전문성, 공연 현장에 대한 이해, 문화예술행정가로 능력을 인정받았을 뿐만 아니라 국악과 월드뮤직 전문가로도 인정받고 있다. 서울대 국악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교에서 석사를 마쳤으며 피츠버그 대학교 음악인류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또 국립 싱가포르대 아시아 연구소 연구원, 서울대 동양음악연구소 연구원, 월드뮤직센터 상임이사, 세계음악문화연구소 소장 등을 역임했으며 한국인 최초로 유네스코 산하 국제전통음악학회(ICTM) 동아시아음악연구회(MEA) 회장으로 선출됐다. 한국 전통음악의 세계화에 앞장서고 국제적 위상을 높인 공로로 지난 2021년 국무총리 표창을 수상했다. 현재 국민대 교수이며 문화재청 무형문화재위원회 전문위원, Tea Garden Festival 명인시리즈 예술감독으로 10년째 활동하고 있다.

 

김희선 집행위원장은 우리가 일상에서 판소리를 자연스럽게 듣는 감수성을 갖는 것을 궁극적 목표로 삼는다. 그는 “판소리가 과거의 음악이 아닌, 당대의 음악으로써 관객과 만나 공감대를 형성하길 바란다”고 말한다. 국악을 타자화하지 않고 ‘우리’ 문화로 인정해야 비로소 우리의 예술 세계가 제대로 확장될 수 있다고 말하는 김희선 집행위원장을 만나, ‘세계’ 속 우리 ‘소리’ 이야기를 들어봤다. 


올해 전주세계소리축제는 확실히 예년과는 다른 분위기다. 서울에서 기자간담회를 개최하는 등 포부가 남다를 것 같은데, 축제에 대한 소개를 부탁한다.


‘회복’이라는 단어를 쓰기 조심스러웠지만, 그럼에도 이번 축제의 중요한 키워드 중 하나이다. 코로나 이후 축제가 재개되며 저희 입장에서는 모객, 관객들 입장에서는 축제를 찾아가면서 다시 축제성을 찾아가는 차원이기도 하지만, 집행부가 바뀌면서 소리 축제 본연의 미션을 회복하는 것을 더 큰 목표로 두고 있다. 정통성과 예술성의 본질을 향한 내재적 회복의 의미를 담는다. 

 

이전 집행부의 역량과 노하우를 바탕으로 미래적 발전을 이끌고자 한다. 앞서 이뤄왔던 것들은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 매우 중요한 디딤돌이다. 예술가들이 축제를 플랫폼 삼아, 세계 여러 페스티벌 및 해외 아티스트들과 서로 연계하고 소통할 수 있는 창구 역할을 하고 싶다. 그게 저희가 생각하는 세계화 그리고 ‘전주세계소리축제’가 갖는 ‘세계’의 의미이다. 

 

이를 위해 축제는 ‘우리 소리’를 좀 더 확장적으로 보고 있다. 혹자는 대중음악은 왜 들어왔냐, 클래식은 왜 들어왔냐라고 하지만, 전통적인 것을 그대로 가져가되 그 옆에 가지치기 한 다른 요소를 하나 더 만드는 것으로 봐주시길 바란다. 국악이 고립되는 상황에서 벗어나 다양한 방식으로 관객들과 만나려 한다. 축제에서 뻗어 나온 가지를 타고 들어온 관객들이 전통음악의 본질에 가까워질 수 있는 통로인 셈이다. 

 

국악의 대중화라 해서, 장터처럼 이것저것 두서없이 모으는 것들은 지양하려 한다. 축제가 성공하기 위해선 진심을 가지는 관객들이 있어야 한다. 때문에 아무 상관없는 공연을 가져오는 것은 싫다. 정통 국악 축제가 거의 없는 상황에서, 아름답고 품격 있는 전통음악의 장을 만들며, 전통문화 자체에 관심을 갖는 관객들이 모이도록 한다면 축제의 외연도 함께 성장하리라 믿는다.

 

 


▲이왕준 전주세계소리축제조직위원장과 김관영 전북도지사(가운데), 김희선 집행위원장이 ‘2023 전주세계소리축제’를 응원하는 자리에서 기념 사진을 촬영했다. 


 

이번에 집행위원장으로 선임된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국립국악원 연구실장을 했던 행정적 이력과 국악과 월드 뮤직을 아우르며 오랜 기간 연구해온 학술적인 부분 그리고 여러 공연들을 기획하고 예술감독을 맡았던 이력을 두루 봐주신 게 아닐까 싶다. 국악과 월드뮤직에 두루 관심을 가지며 꾸준히 현장 중심의 연구를 해왔고, 굉장히 다양한 공연 현장에 있었기 때문에 그런 경험들이 도움이 됐던 것 같다. 집행위원장은 예술감독의 역할과 더불어 행정적인 부분도 살펴야 하고, 축제의 미션을 설정하며 조직을 이끄는 리더십도 있어야 한다. 여러 이력을 봤을 때, 안정적으로 축제를 운영할 수 있다고 판단하셨던 것 같다. 

 

국악을 중심에 두는 축제의 타이틀이 ‘세계소리축제’인 점은 흥미로우면서도 궁금증을 자아낸다.

 

전주세계소리축제’에서 ‘소리’는 판소리에서 시작한 우리 소리를 뜻한다. ‘세계 소리’니까 월드 뮤직을 다루는 축제인 것이 아니라 거꾸로 ‘우리 소리’를 ‘세계’화하려는 것이 사실 이 축제의 가장 중요한 미션이었고, 이것은 지금도 여전히 유효하다. 

전통성을 그대로 유지한 음악부터 전통을 동시대 음악 형식으로 재해석한 음악까지 ‘전통음악’이라는 이름으로 포괄할 수 있다. 하지만 꽤 오랜 시간, 우리나라에서조차 국악은 소외됐고 주변화됐다. 여기엔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그중 하나로 국악을 감상할 수 있는 감수성을 잃었다는 것을 꼽고 싶다. 이를 다시 회복하는 방법은 많겠지만, 쉽게 접근할 수 있고 참여할 수 있는 ‘축제’야말로 좋은 창구라고 생각한다. 우리 사회에서부터 전통음악이 좀 더 친근하게 당대 음악으로 자리 잡는다면, 글로벌 무대에서도 얼마든지 관객들을 사로잡을 수 있을 것이다. 

 

지난 2016년부터 2020년까지 국립국악원 국악연구실장으로 일하며, 국악박물관을 라키비움으로 전환하고, 북한음악자료실을 개실 하는 등의 사업들을 진행했다. 국악과 국민의 거리를 좁히기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은 무엇이라 생각하는가?

 

대중에게 다가가기 위해 사실 국악계에서는 계속해서 엄청난 노력을 하고 있다. 퓨전 국악도 그중 하나일 것이고, 국악의 현대화나 대중화와 같은 담론들도 궁극적으로는 어떻게 하면 문턱을 낮출 수 있을까 하는 고민에서 나오는 노력의 과정이다. 하지만 국민들이 생각하는 국악은 여전히 교과서에 있거나 문화재 제도 안에 있는 것, 혹은 전공하는 사람들만의 것이다. 이 갭을 줄이기 위해 국악계가 많은 노력을 쏟고 있지만 일방적 노력으로 바뀔 수 있는 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더 확실한 변화를 위해 언론이라든지 교육이라든지 이런 주변의 여건들이 조금 더 국악에 친화적인 방향으로 변화될 필요가 있다. 문화에 대한 우리 사회의 관심도가 점점 높아지고 있다. 이 관심이 국악으로도 이어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우리 사회에서 국악을 ‘우리 문화’로 인정해주고 받아들여 준다면 지금보다는 상황이 개선될 것이라 확신한다. 국악과 양악을 동등하게 놓고 서로 싸운다고 보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우리 것을 타자화시켜 버리는 결과다. 민족주의나 국가주의, 국수주의가 아닌 매우 객관적 차원에서도 우리 문화를 타자화하는 것이 옳지 않다는 것에 대한 성찰이 선행되었으면 한다. 국악계 내부에서 갈등이 생기는 이유는 사회 전반에서 지속적으로 소외되고 주변화됐던 역사가 있기 때문이다. 이 부분에 대한 성찰이 우리 사회에서 적극적으로 이뤄졌으면 좋겠다. 

아울러, 국악계에서는 앞으로도 국민을 향해 계속해서 뭔가를 내놓고 소통의 방식을 다양하게 만들어 나갈 필요가 있다. 내부를 위한 언어들만 개발할 게 아니라 소통을 위한 다양한 루트가 필요하다. 국악계는 열린 마음으로 다름을 맞이할 준비를 해야 하고, 우리 사회는 그 초대에 응해줘야 한다.

 

 


▲제22회 전주세계소리축제 프로그램을 소개하는 김희선 집행위원장

 

 

가야금 전공으로 서울대 음대에서 학ㆍ석사 과정을 마친 후, 음악인류학으로 전공을 바꿔 미국 유학을 떠났다. 이후 국악을 대중 그리고 세계에 알리는 일에 매진해왔는데 이와 같은 결심을 내리게 된 계기가 궁금하다.

 

학창 시절 꿈은 기자나 아나운서였다. 중고등학생 내내 교내 편집부에서 있었고, 대학생때도 학보사에서 취재도 하고 르포기사도 썼다. 가야금은 어머니의 권유로 중학교 1학년 때 배우기 시작했는데, 처음엔 단순히 취미 생활이었다. 그러던 중 집안끼리 잘 아는 지인으로부터, 꾸준히 배웠던 가야금을 놓지 않으면서 공부를 병행해 서울대 진학을 목표로 삼아보라는 조언을 들었다. 이전까지 가야금을 취미 이상으로 생각해본 적이 없던 터라, 고민이 컸던 게 사실이다. 당시 황병기 선생님의 음반을 즐겨 듣던 나는 편지를 써서 조언을 구하기도 했다.(웃음) 물론 답장은 받을 수 없었지만, 미국 하와이대학 부설 동서문화연구소에서 나온 황병기 선생님의 가야금 데뷔앨범이 나에게 답장과도 같은 확신을 줬다. 우리 음악, 가야금을 하면 국제적으로 활동할 수 있다는 답을 준 것이다. 황병기 선생님처럼 되고 싶었다. 

국악과에 들어가서 다른 친구들이 관현악단에 들어갈 준비를 하는 등 연주자로서의 길을 준비할 때, 나는 유학을 준비했다. 이후 한만영 선생님, 이성천 선생님 등의 조언에 따라 음악인류학 공부를 결심하게 됐다. 확신을 갖고 유학길에 올랐지만, 어설프게 보이고 싶지 않았다. 그냥 낯선 나라에서 온 민속음악 전공자 중 하나로 여겨지는 게 싫어 그들의 학문을 공부했다. 나와 내가 하는 음악이 무시당하지 않도록. 이러한 노력이 더해져, 해외에서 공부하고 활동하는 내내 예우받았다. 외국에서는 국악을 전공했기 때문에 더 대접받았고 그것이 나의 자부심이 됐는데, 한국에서의 국악의 위치는 여전히 변방이다. 

 

자국의 문화를 오히려 낮게 평가하는 근본적인 이유는 무엇일까?
 

한국과 유사한 식민지 경험을 가졌던 다른 국가의 음악들을 함께 배우고 역사, 인류학, 음악학을 함께 배우면서 한국음악을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됐다. 나에게는 자부심의 음악이지만, 한국인들 전반은 국악을 양악보다 못하다고 생각한다. 문화적인 열패감이 있는 것이다. 제국주의와 식민주의가 궁극적으로 지금의 한국음악의 지위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사회 전반에서 한국음악, 국악을 소외시키고 주변화시켰다.

이는 한국에서만 벌어지는 현상이 아니다. 같은 제국주의와 식민주의를 경험한 나라들은 다 같은 모습을 보이고 있다. 문화적 열패감이 국악에 씌워진 하나의 프레임처럼 일종의 스티그마, 낙인 효과라고 생각한다. 그 대상으로부터 멀어지고 타자화시키고 동떨어진 것으로 만들수록 나는 문명인이 되는 것 같기 때문이다. 양악을 더 가깝게 느껴야 문화적 열패감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믿는 것이다. 그게 국악에 씌워진 프레임이고 이를 벗어나지 못하면 영원히 제국주의 시각에 갇히게 된다. 문화적 열패감이 옳지 않다는 것, 극복해야 하는 대상이라는 것을 깨달아야 여기서 자유로워질 수 있다. 

 

 


▲2022 전주세계소리축제, 젊은판소리 다섯바탕

 

 

나아가, 월드뮤직도 굉장히 타자화되어 있다. 같은 맥락이다. 우리 사회에서 양악을 보편화하며 국악을 타자화시키듯, 다른 음악들은 제3세계 음악으로 놓고 더 낯설게 만드는 것이다. 월드뮤직 아티스트들과 소통하는 것은 결국 우리 음악을 바라보는데도 매우 큰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한다. 우리 사회가 가지고 있는 이분법적 생각들이 있다. 흑 아니면 백, 음악에선 양악 아니면 국악. 하지만 세상에는 인류의 다양한 음악 유산들이 있다. 그리고 그 음악 유산들은 각기 자신들의 이야기를 갖고 있다. 우리는 다양한 문화가 가져다줄 풍부함을 누리지 못하고 있다. 

그동안 학자로서 공부해 오고 성찰하며 논문으로 기록했던 것들을 실제로 현장에서 실천할 수 있는 방편이 ‘전주세계소리축제’라고 생각한다. 전주세계소리축제로 하여금 많은 관객들이 세계 각국의 문화들이 품고 있는 다양한 가치를 누릴 수 있었으면 좋겠다. 

 

국내 전통음악뿐만 아니라 해외의 음악들도 함께 소개하는 축제이다. 이들 무대의 선정 기준은 무엇인가?
 

주제에 걸맞은 예술가들을 우선적으로 선정한다. 또한, 전주세계소리축제와 교류하는 해외 페스티벌들이 있다. 해당 페스티벌이나 해외 마켓에 소개되는 예술가들을 살피며 교류의 대상을 찾고 있다. 해외에서도 월드뮤직 시장이 점점 성장하고 있어, 아티스트를 선정할 수 있는 폭도 넓어지고 있다.

축제 초기에는 다른 글로벌 축제를 표방하다 보니, 일단 외국 아티스트들을 오게 하는 것이 우선이었다. 점차 ‘교류’에 부합하는 네트워킹이 이뤄지고 있다. 우리가 이번 축제에 아티스트들을 초대하면 이후 진행되는 해외 페스티벌에 국내 팀이 초청되는 식이다. 

 

과거에 비해 요즘은 국악의 연주 범위도 넓어지고, 그만큼 즐기는 세대도 다양해졌다. 전통 모습 그대로를 유지하는 국악부터 오늘날의 감수성과 취향에 맞는 새로운 국악까지 아우르는 축제를 만들기 위해 특히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부분은 무엇인지?

 

국악의 동시대성을 얘기할 때 아직까지는 국악과 동시대가 다른 개념으로 나뉘는데, 나의 궁극적인 목표는 전통이 동시대가 되는 것이다. 우리가 판소리를 들을 수 있는 감수성을 갖게 되는 것. 그래서 판소리가 과거의 시간 속에 있는 음악이 아니라 당대의 음악으로써 관객과 만날 수 있길 바란다. 18세기 오페라가 새로움을 더해 관객들과 만나는 것처럼, 국악에서 그 역할을 국립창극단이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창극단이 만드는 작품은 국내는 물론 해외에서도 큰 관심과 사랑을 받으며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다. 이것이 궁극적으로 가야 하는 길이라고 본다. 

영화 <소리꾼>에 나온 이봉근이 TV에 출연해 다른 장르의 음악을 부르기도 하지만, 소리 축제에 와서는 전통 판소리를 완창한다. 그런 자리를 만드는 것이 우리의 일이고, 국악을 잘 모르는 팬들에게 국악의 매력을 알리는 것이 그 친구들이 해야 하는 역할이지 않을까 싶다. 전통을 동시대 음악으로 만드는 이봉근이나 김율희, 고영열 같은 친구들은 굉장히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이자람이 해온 일이 그런 일들 아닌가. 이자람은 ‘노인과 바다’도 하지만 여전히 전통 판소리 무대도 한다. 그가 판소리 공연을 하면 2천석 공연장이 가득 찬다. 전통 판소리도 이자람이 하면 당대 음악이 된다. 적벽가를 하고, 심청가를 부르는데 관객들이 그걸 보고 눈물을 흘린다. 그게 내가 생각하는 동시대다. 

 

 


▲소리꾼 김율희가 지난 5일 서울 삼청각에서 열린 전주세계소리축제 프로그램 발표회에서 판소리 무대를 선보이고 있다.
 

 

국내에는 다양한 음악 축제들이 있는데, 그중 전주세계소리축제만이 가지는 경쟁력은?

 

오랫동안 축제가 쌓아온 역량들. 그래서 앞서 말한 정통성과 예술성이 더욱 필요하다. 그동안 쌓아온 것들을 계속 살려가지 않으면 일회적인 이벤트로 끝날 수 있다. 축제가 계속 유지될 수 있도록, 정통성과 예술성이라는 중요 가치가 더욱 빛날 수 있도록 담는 그릇을 계속 바꿔보는 것이다. 그릇은 바꾸되, 그 안에 담기는 본질이 훼손되어선 안 된다. 당장에 눈앞의 모객을 위해 성격을 바꾸며 하지 않던 것들을 시도하기 보다, 그릇의 형태를 바꿔가며 다른 형태를 기대하는 관객들이 오게 만드는 것. 그래서 내년에 또 오고 싶게 만드는 것이 중요하고 이를 위해 계속 고민하고 있다. 

 

국악을 세계와 잇는 매개자 역할을 하며 다양한 활동을 이어오고 있다. 앞으로 새롭게 도전해보고 싶은, 혹은 구상하고 있는 일이 있다면?

 

영어로 한국음악을 소개하는 책들을 시리즈로 내고 싶다. 연구자로서 가장 마지막에 해야 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좋은 출판사를 만나 한국음악과 관련된 책들을 내는 것이 최종 꿈이다. 다른 것들은 지금처럼 계속하다 보면 할 수 있는 일들이 더 많아지지 않을까 생각한다. 

 

끝으로, 전주세계소리축제 관객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

 

국악이 낯설어 다가가지 못했다면 전주세계소리축제가 좋은 시작이 될 수 있을 거라 자부한다. 이번 축제에서는 국악을 비롯해 다양한 장르의 음악을 여러 가지 그릇에 담아 선보일 예정이니, 본인의 관심사를 따라 감상해 보시면 좋을 것 같다. 축제가 열리는 9월의 전주는 곳곳에 아름다움이 묻어있다. 아울러, 공연을 위한 계획을 따로 세우지 않더라도 언제든 음악을 즐길 수 있도록 코스별 동선을 짜놨으니 그저 와서 즐겨주시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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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ulture Interview]김희선 전주세계소리축제 집행위원장 “동시대 문화로 인정받는 ‘우리’ 국악을 위하여” / 김희선(교양대학) 교수

가야금 전공 후 미국 유학行…음악인류학 공부로 국악 바라보는 시각 넓혀
국악의 타자화, 식민주의에서 비롯된 문화적 열패감의 결과
“일상에서 국악 듣는 감수성 갖게 되는 것이 '전통의 동시대'”
전주세계소리축제 9.15~24, 한국소리문화의전당ㆍ한옥마을 등지서 진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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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문화투데이 이은영 발행인ㆍ진보연 기자]내달 8월 8일부터 17일까지 영국 에든버러 페스티벌에서 한국 공연을 집중 소개하는 ‘포커스 온 코리아(Focus on Korea)’가 열린다. 올해 프린지 페스티벌에는 67개국 3,345개의 공연, 인터내셔널 페스티벌에는 48개국 295개의 공연이 펼쳐진다. 


 


▲국립창극단 ‘트로이의 여인들’

 

 

이중 국립창극단의 <트로이의 여인들>은 73대 1의 경쟁률을 뚫고 영국 가디언지 ‘꼭 봐야 할 50가지 공연’에 선정됐다. 2016년 국립극장과 싱가포르예술축제가 공동 제작한 <트로이의 여인들>은 에우리피데스의 동명 희곡을 바탕으로 작가 배삼식이 극본을 썼으며, 싱가포르 출신 세계적 연출가 옹켕센이 연출을 맡았다. 판소리 명창 안숙선이 소리를 엮고, 미국 아카데미영화상 4관왕에 빛나는 영화 <기생충>의 음악감독 정재일은 음악을 빚어냈다. 이처럼 판소리 다섯 바탕에서 출발한 창극은 소재 확장으로, 시대와 국경을 아우르며 동시대 관객들과 소통하고 있다. 

 

이는 ‘전주세계소리축제’의 지향점과도 궤를 같이한다. 판소리와 전통음악, 월드뮤직을 중심으로 다양한 장르의 음악을 아우르는 공연예술축제인 전주세계소리축제는 장르와 국적의 경계 없이 다양한 소리로 하나가 되는 축제의 장을 마련한다. 22회를 맞는 올해 축제는 오는 9월 15일부터 24일까지 한국소리문화의전당과 전주한옥마을 일대, 전북 14개 시·군에서 펼쳐진다. 호주·캐나다 등 해외 13개국이 참여, 89개 프로그램, 105회 공연에 나선다. 평균 연령 82세를 자랑하는 명창 5인(신영희ㆍ조상현ㆍ김일구ㆍ김수연ㆍ정순임)의 판소리 5바탕 완창부터 이희문, 이자람, 천하제일탈공작소 그리고 피아니스트 김대진과 박재홍의 피아노 듀오 공연까지 선보일 예정이다. 

 

‘상생과 회복(Coexistence and Resilience)’을 주제로 하는 올해 축제는 집행위원회를 예술분과위원회 시스템으로 구축해 축제 프로그램의 예술적 수준 강화에 나섰다. 김희선 집행위원장은 “집행부의 변화는 소리 축제 본연의 미션인 ‘정통성’과 ‘예술성’의 내재적 회복을 위함”이라고 설명했다. 


 


▲김희선 전주세계소리축제 집행위원장

 

 

김희선 집행위원장은 국악과 세계음악에 대한 학술적 전문성, 공연 현장에 대한 이해, 문화예술행정가로 능력을 인정받았을 뿐만 아니라 국악과 월드뮤직 전문가로도 인정받고 있다. 서울대 국악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교에서 석사를 마쳤으며 피츠버그 대학교 음악인류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또 국립 싱가포르대 아시아 연구소 연구원, 서울대 동양음악연구소 연구원, 월드뮤직센터 상임이사, 세계음악문화연구소 소장 등을 역임했으며 한국인 최초로 유네스코 산하 국제전통음악학회(ICTM) 동아시아음악연구회(MEA) 회장으로 선출됐다. 한국 전통음악의 세계화에 앞장서고 국제적 위상을 높인 공로로 지난 2021년 국무총리 표창을 수상했다. 현재 국민대 교수이며 문화재청 무형문화재위원회 전문위원, Tea Garden Festival 명인시리즈 예술감독으로 10년째 활동하고 있다.

 

김희선 집행위원장은 우리가 일상에서 판소리를 자연스럽게 듣는 감수성을 갖는 것을 궁극적 목표로 삼는다. 그는 “판소리가 과거의 음악이 아닌, 당대의 음악으로써 관객과 만나 공감대를 형성하길 바란다”고 말한다. 국악을 타자화하지 않고 ‘우리’ 문화로 인정해야 비로소 우리의 예술 세계가 제대로 확장될 수 있다고 말하는 김희선 집행위원장을 만나, ‘세계’ 속 우리 ‘소리’ 이야기를 들어봤다. 


올해 전주세계소리축제는 확실히 예년과는 다른 분위기다. 서울에서 기자간담회를 개최하는 등 포부가 남다를 것 같은데, 축제에 대한 소개를 부탁한다.


‘회복’이라는 단어를 쓰기 조심스러웠지만, 그럼에도 이번 축제의 중요한 키워드 중 하나이다. 코로나 이후 축제가 재개되며 저희 입장에서는 모객, 관객들 입장에서는 축제를 찾아가면서 다시 축제성을 찾아가는 차원이기도 하지만, 집행부가 바뀌면서 소리 축제 본연의 미션을 회복하는 것을 더 큰 목표로 두고 있다. 정통성과 예술성의 본질을 향한 내재적 회복의 의미를 담는다. 

 

이전 집행부의 역량과 노하우를 바탕으로 미래적 발전을 이끌고자 한다. 앞서 이뤄왔던 것들은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 매우 중요한 디딤돌이다. 예술가들이 축제를 플랫폼 삼아, 세계 여러 페스티벌 및 해외 아티스트들과 서로 연계하고 소통할 수 있는 창구 역할을 하고 싶다. 그게 저희가 생각하는 세계화 그리고 ‘전주세계소리축제’가 갖는 ‘세계’의 의미이다. 

 

이를 위해 축제는 ‘우리 소리’를 좀 더 확장적으로 보고 있다. 혹자는 대중음악은 왜 들어왔냐, 클래식은 왜 들어왔냐라고 하지만, 전통적인 것을 그대로 가져가되 그 옆에 가지치기 한 다른 요소를 하나 더 만드는 것으로 봐주시길 바란다. 국악이 고립되는 상황에서 벗어나 다양한 방식으로 관객들과 만나려 한다. 축제에서 뻗어 나온 가지를 타고 들어온 관객들이 전통음악의 본질에 가까워질 수 있는 통로인 셈이다. 

 

국악의 대중화라 해서, 장터처럼 이것저것 두서없이 모으는 것들은 지양하려 한다. 축제가 성공하기 위해선 진심을 가지는 관객들이 있어야 한다. 때문에 아무 상관없는 공연을 가져오는 것은 싫다. 정통 국악 축제가 거의 없는 상황에서, 아름답고 품격 있는 전통음악의 장을 만들며, 전통문화 자체에 관심을 갖는 관객들이 모이도록 한다면 축제의 외연도 함께 성장하리라 믿는다.

 

 


▲이왕준 전주세계소리축제조직위원장과 김관영 전북도지사(가운데), 김희선 집행위원장이 ‘2023 전주세계소리축제’를 응원하는 자리에서 기념 사진을 촬영했다. 


 

이번에 집행위원장으로 선임된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국립국악원 연구실장을 했던 행정적 이력과 국악과 월드 뮤직을 아우르며 오랜 기간 연구해온 학술적인 부분 그리고 여러 공연들을 기획하고 예술감독을 맡았던 이력을 두루 봐주신 게 아닐까 싶다. 국악과 월드뮤직에 두루 관심을 가지며 꾸준히 현장 중심의 연구를 해왔고, 굉장히 다양한 공연 현장에 있었기 때문에 그런 경험들이 도움이 됐던 것 같다. 집행위원장은 예술감독의 역할과 더불어 행정적인 부분도 살펴야 하고, 축제의 미션을 설정하며 조직을 이끄는 리더십도 있어야 한다. 여러 이력을 봤을 때, 안정적으로 축제를 운영할 수 있다고 판단하셨던 것 같다. 

 

국악을 중심에 두는 축제의 타이틀이 ‘세계소리축제’인 점은 흥미로우면서도 궁금증을 자아낸다.

 

전주세계소리축제’에서 ‘소리’는 판소리에서 시작한 우리 소리를 뜻한다. ‘세계 소리’니까 월드 뮤직을 다루는 축제인 것이 아니라 거꾸로 ‘우리 소리’를 ‘세계’화하려는 것이 사실 이 축제의 가장 중요한 미션이었고, 이것은 지금도 여전히 유효하다. 

전통성을 그대로 유지한 음악부터 전통을 동시대 음악 형식으로 재해석한 음악까지 ‘전통음악’이라는 이름으로 포괄할 수 있다. 하지만 꽤 오랜 시간, 우리나라에서조차 국악은 소외됐고 주변화됐다. 여기엔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그중 하나로 국악을 감상할 수 있는 감수성을 잃었다는 것을 꼽고 싶다. 이를 다시 회복하는 방법은 많겠지만, 쉽게 접근할 수 있고 참여할 수 있는 ‘축제’야말로 좋은 창구라고 생각한다. 우리 사회에서부터 전통음악이 좀 더 친근하게 당대 음악으로 자리 잡는다면, 글로벌 무대에서도 얼마든지 관객들을 사로잡을 수 있을 것이다. 

 

지난 2016년부터 2020년까지 국립국악원 국악연구실장으로 일하며, 국악박물관을 라키비움으로 전환하고, 북한음악자료실을 개실 하는 등의 사업들을 진행했다. 국악과 국민의 거리를 좁히기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은 무엇이라 생각하는가?

 

대중에게 다가가기 위해 사실 국악계에서는 계속해서 엄청난 노력을 하고 있다. 퓨전 국악도 그중 하나일 것이고, 국악의 현대화나 대중화와 같은 담론들도 궁극적으로는 어떻게 하면 문턱을 낮출 수 있을까 하는 고민에서 나오는 노력의 과정이다. 하지만 국민들이 생각하는 국악은 여전히 교과서에 있거나 문화재 제도 안에 있는 것, 혹은 전공하는 사람들만의 것이다. 이 갭을 줄이기 위해 국악계가 많은 노력을 쏟고 있지만 일방적 노력으로 바뀔 수 있는 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더 확실한 변화를 위해 언론이라든지 교육이라든지 이런 주변의 여건들이 조금 더 국악에 친화적인 방향으로 변화될 필요가 있다. 문화에 대한 우리 사회의 관심도가 점점 높아지고 있다. 이 관심이 국악으로도 이어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우리 사회에서 국악을 ‘우리 문화’로 인정해주고 받아들여 준다면 지금보다는 상황이 개선될 것이라 확신한다. 국악과 양악을 동등하게 놓고 서로 싸운다고 보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우리 것을 타자화시켜 버리는 결과다. 민족주의나 국가주의, 국수주의가 아닌 매우 객관적 차원에서도 우리 문화를 타자화하는 것이 옳지 않다는 것에 대한 성찰이 선행되었으면 한다. 국악계 내부에서 갈등이 생기는 이유는 사회 전반에서 지속적으로 소외되고 주변화됐던 역사가 있기 때문이다. 이 부분에 대한 성찰이 우리 사회에서 적극적으로 이뤄졌으면 좋겠다. 

아울러, 국악계에서는 앞으로도 국민을 향해 계속해서 뭔가를 내놓고 소통의 방식을 다양하게 만들어 나갈 필요가 있다. 내부를 위한 언어들만 개발할 게 아니라 소통을 위한 다양한 루트가 필요하다. 국악계는 열린 마음으로 다름을 맞이할 준비를 해야 하고, 우리 사회는 그 초대에 응해줘야 한다.

 

 


▲제22회 전주세계소리축제 프로그램을 소개하는 김희선 집행위원장

 

 

가야금 전공으로 서울대 음대에서 학ㆍ석사 과정을 마친 후, 음악인류학으로 전공을 바꿔 미국 유학을 떠났다. 이후 국악을 대중 그리고 세계에 알리는 일에 매진해왔는데 이와 같은 결심을 내리게 된 계기가 궁금하다.

 

학창 시절 꿈은 기자나 아나운서였다. 중고등학생 내내 교내 편집부에서 있었고, 대학생때도 학보사에서 취재도 하고 르포기사도 썼다. 가야금은 어머니의 권유로 중학교 1학년 때 배우기 시작했는데, 처음엔 단순히 취미 생활이었다. 그러던 중 집안끼리 잘 아는 지인으로부터, 꾸준히 배웠던 가야금을 놓지 않으면서 공부를 병행해 서울대 진학을 목표로 삼아보라는 조언을 들었다. 이전까지 가야금을 취미 이상으로 생각해본 적이 없던 터라, 고민이 컸던 게 사실이다. 당시 황병기 선생님의 음반을 즐겨 듣던 나는 편지를 써서 조언을 구하기도 했다.(웃음) 물론 답장은 받을 수 없었지만, 미국 하와이대학 부설 동서문화연구소에서 나온 황병기 선생님의 가야금 데뷔앨범이 나에게 답장과도 같은 확신을 줬다. 우리 음악, 가야금을 하면 국제적으로 활동할 수 있다는 답을 준 것이다. 황병기 선생님처럼 되고 싶었다. 

국악과에 들어가서 다른 친구들이 관현악단에 들어갈 준비를 하는 등 연주자로서의 길을 준비할 때, 나는 유학을 준비했다. 이후 한만영 선생님, 이성천 선생님 등의 조언에 따라 음악인류학 공부를 결심하게 됐다. 확신을 갖고 유학길에 올랐지만, 어설프게 보이고 싶지 않았다. 그냥 낯선 나라에서 온 민속음악 전공자 중 하나로 여겨지는 게 싫어 그들의 학문을 공부했다. 나와 내가 하는 음악이 무시당하지 않도록. 이러한 노력이 더해져, 해외에서 공부하고 활동하는 내내 예우받았다. 외국에서는 국악을 전공했기 때문에 더 대접받았고 그것이 나의 자부심이 됐는데, 한국에서의 국악의 위치는 여전히 변방이다. 

 

자국의 문화를 오히려 낮게 평가하는 근본적인 이유는 무엇일까?
 

한국과 유사한 식민지 경험을 가졌던 다른 국가의 음악들을 함께 배우고 역사, 인류학, 음악학을 함께 배우면서 한국음악을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됐다. 나에게는 자부심의 음악이지만, 한국인들 전반은 국악을 양악보다 못하다고 생각한다. 문화적인 열패감이 있는 것이다. 제국주의와 식민주의가 궁극적으로 지금의 한국음악의 지위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사회 전반에서 한국음악, 국악을 소외시키고 주변화시켰다.

이는 한국에서만 벌어지는 현상이 아니다. 같은 제국주의와 식민주의를 경험한 나라들은 다 같은 모습을 보이고 있다. 문화적 열패감이 국악에 씌워진 하나의 프레임처럼 일종의 스티그마, 낙인 효과라고 생각한다. 그 대상으로부터 멀어지고 타자화시키고 동떨어진 것으로 만들수록 나는 문명인이 되는 것 같기 때문이다. 양악을 더 가깝게 느껴야 문화적 열패감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믿는 것이다. 그게 국악에 씌워진 프레임이고 이를 벗어나지 못하면 영원히 제국주의 시각에 갇히게 된다. 문화적 열패감이 옳지 않다는 것, 극복해야 하는 대상이라는 것을 깨달아야 여기서 자유로워질 수 있다. 

 

 


▲2022 전주세계소리축제, 젊은판소리 다섯바탕

 

 

나아가, 월드뮤직도 굉장히 타자화되어 있다. 같은 맥락이다. 우리 사회에서 양악을 보편화하며 국악을 타자화시키듯, 다른 음악들은 제3세계 음악으로 놓고 더 낯설게 만드는 것이다. 월드뮤직 아티스트들과 소통하는 것은 결국 우리 음악을 바라보는데도 매우 큰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한다. 우리 사회가 가지고 있는 이분법적 생각들이 있다. 흑 아니면 백, 음악에선 양악 아니면 국악. 하지만 세상에는 인류의 다양한 음악 유산들이 있다. 그리고 그 음악 유산들은 각기 자신들의 이야기를 갖고 있다. 우리는 다양한 문화가 가져다줄 풍부함을 누리지 못하고 있다. 

그동안 학자로서 공부해 오고 성찰하며 논문으로 기록했던 것들을 실제로 현장에서 실천할 수 있는 방편이 ‘전주세계소리축제’라고 생각한다. 전주세계소리축제로 하여금 많은 관객들이 세계 각국의 문화들이 품고 있는 다양한 가치를 누릴 수 있었으면 좋겠다. 

 

국내 전통음악뿐만 아니라 해외의 음악들도 함께 소개하는 축제이다. 이들 무대의 선정 기준은 무엇인가?
 

주제에 걸맞은 예술가들을 우선적으로 선정한다. 또한, 전주세계소리축제와 교류하는 해외 페스티벌들이 있다. 해당 페스티벌이나 해외 마켓에 소개되는 예술가들을 살피며 교류의 대상을 찾고 있다. 해외에서도 월드뮤직 시장이 점점 성장하고 있어, 아티스트를 선정할 수 있는 폭도 넓어지고 있다.

축제 초기에는 다른 글로벌 축제를 표방하다 보니, 일단 외국 아티스트들을 오게 하는 것이 우선이었다. 점차 ‘교류’에 부합하는 네트워킹이 이뤄지고 있다. 우리가 이번 축제에 아티스트들을 초대하면 이후 진행되는 해외 페스티벌에 국내 팀이 초청되는 식이다. 

 

과거에 비해 요즘은 국악의 연주 범위도 넓어지고, 그만큼 즐기는 세대도 다양해졌다. 전통 모습 그대로를 유지하는 국악부터 오늘날의 감수성과 취향에 맞는 새로운 국악까지 아우르는 축제를 만들기 위해 특히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부분은 무엇인지?

 

국악의 동시대성을 얘기할 때 아직까지는 국악과 동시대가 다른 개념으로 나뉘는데, 나의 궁극적인 목표는 전통이 동시대가 되는 것이다. 우리가 판소리를 들을 수 있는 감수성을 갖게 되는 것. 그래서 판소리가 과거의 시간 속에 있는 음악이 아니라 당대의 음악으로써 관객과 만날 수 있길 바란다. 18세기 오페라가 새로움을 더해 관객들과 만나는 것처럼, 국악에서 그 역할을 국립창극단이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창극단이 만드는 작품은 국내는 물론 해외에서도 큰 관심과 사랑을 받으며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다. 이것이 궁극적으로 가야 하는 길이라고 본다. 

영화 <소리꾼>에 나온 이봉근이 TV에 출연해 다른 장르의 음악을 부르기도 하지만, 소리 축제에 와서는 전통 판소리를 완창한다. 그런 자리를 만드는 것이 우리의 일이고, 국악을 잘 모르는 팬들에게 국악의 매력을 알리는 것이 그 친구들이 해야 하는 역할이지 않을까 싶다. 전통을 동시대 음악으로 만드는 이봉근이나 김율희, 고영열 같은 친구들은 굉장히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이자람이 해온 일이 그런 일들 아닌가. 이자람은 ‘노인과 바다’도 하지만 여전히 전통 판소리 무대도 한다. 그가 판소리 공연을 하면 2천석 공연장이 가득 찬다. 전통 판소리도 이자람이 하면 당대 음악이 된다. 적벽가를 하고, 심청가를 부르는데 관객들이 그걸 보고 눈물을 흘린다. 그게 내가 생각하는 동시대다. 

 

 


▲소리꾼 김율희가 지난 5일 서울 삼청각에서 열린 전주세계소리축제 프로그램 발표회에서 판소리 무대를 선보이고 있다.
 

 

국내에는 다양한 음악 축제들이 있는데, 그중 전주세계소리축제만이 가지는 경쟁력은?

 

오랫동안 축제가 쌓아온 역량들. 그래서 앞서 말한 정통성과 예술성이 더욱 필요하다. 그동안 쌓아온 것들을 계속 살려가지 않으면 일회적인 이벤트로 끝날 수 있다. 축제가 계속 유지될 수 있도록, 정통성과 예술성이라는 중요 가치가 더욱 빛날 수 있도록 담는 그릇을 계속 바꿔보는 것이다. 그릇은 바꾸되, 그 안에 담기는 본질이 훼손되어선 안 된다. 당장에 눈앞의 모객을 위해 성격을 바꾸며 하지 않던 것들을 시도하기 보다, 그릇의 형태를 바꿔가며 다른 형태를 기대하는 관객들이 오게 만드는 것. 그래서 내년에 또 오고 싶게 만드는 것이 중요하고 이를 위해 계속 고민하고 있다. 

 

국악을 세계와 잇는 매개자 역할을 하며 다양한 활동을 이어오고 있다. 앞으로 새롭게 도전해보고 싶은, 혹은 구상하고 있는 일이 있다면?

 

영어로 한국음악을 소개하는 책들을 시리즈로 내고 싶다. 연구자로서 가장 마지막에 해야 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좋은 출판사를 만나 한국음악과 관련된 책들을 내는 것이 최종 꿈이다. 다른 것들은 지금처럼 계속하다 보면 할 수 있는 일들이 더 많아지지 않을까 생각한다. 

 

끝으로, 전주세계소리축제 관객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

 

국악이 낯설어 다가가지 못했다면 전주세계소리축제가 좋은 시작이 될 수 있을 거라 자부한다. 이번 축제에서는 국악을 비롯해 다양한 장르의 음악을 여러 가지 그릇에 담아 선보일 예정이니, 본인의 관심사를 따라 감상해 보시면 좋을 것 같다. 축제가 열리는 9월의 전주는 곳곳에 아름다움이 묻어있다. 아울러, 공연을 위한 계획을 따로 세우지 않더라도 언제든 음악을 즐길 수 있도록 코스별 동선을 짜놨으니 그저 와서 즐겨주시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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