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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생금연… 걷기가 최고 - ㈜ 삼화인쇄 유기정 회장 (85세) / (경제 49) 동문

  • 07.03.05 / 조영문


서울 구로동의 ㈜삼화인쇄 작업장에는 오전, 오후 2차례 마치 중국의 등소평을 연상시킬 정도로 체구가 자그마한 노인(155㎝)이 작업복차림으로 모습을 드러낸다. 그리고 직원들을 찾아다니며 일일이 “수고하십니다”라는 인사를 한다. 주인공은 바로 이 회사의 창업자인 유기정(85) 회장.

“건강관리에 걷기 운동만큼 좋은 것이 없는 것 같아요. 그렇게 공장을 돌아보는데 1시간 정도 걸리는데 그또한 적지 않은 운동량이죠.”

유기정 회장은 ‘중소기업의 모범답안’을 우리 경제계에 확실히 제시한 인물이다. 그는 1954년 5명의 직원과 함께 삼화인쇄㈜와 ㈜삼화출판사를 창립, 종업원 500여명에 연매출규모 500억원에 이르는 건실한 중소기업으로 키웠다. 특히 이 회사는 1998년 미국 타임라이프사에 타이타닉호관련 화보책자 60만부를 인쇄, 수출하는 등 내수 일색이었던 인쇄분야에서 수출의 길을 열어놓은 기업으로 꼽힌다. 이같은 실적에 따라 1998년엔 ‘1000만불 수출의 탑’을 수상하기도 했다. 또 중소기업협동조합중앙회 회장(1980~88년)으로 국내 중소기업의 발전을 직접 선도하기도 했다.

“사실 별도로 몸 관리를 해온 적이 없어요. 집안 형편이 어려워 잘 먹고 크지도 못했고, 젊어서는 또 술도 많이 마셨죠. 국회에 등원해 한창 정치판을 누빌 때는 양주 1병이 기본이었어요. 그래도 굳이 꼽자면 1962년경 주변 선배의 권유로 시작한 골프 정도죠.”

유 회장은 고향인 전주에서 힘겨운 어린 시절을 보냈다. 연초사업으로 큰돈을 만졌던 부친이 일본의 ‘전매령’공포로 사업을 접으며 가세가 기울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학업도 공업학교를 마친후 전매청 직공으로 곧바로 취직해 집안을 도와야 했다.

“아마 평생 담배를 입에 안 문 것도 건강에 도움이 됐을지 모르죠. 1942년경 독립운동을 하겠다는 결심아래 혈서를 쓰고, 무작정 상경했어요. 그때 성공할 때까지는 담배를 피우지 않겠노라고 스스로 약속했죠. 그런데 독립운동에 직접 참여를 못했어요. 그 이후로 아직 담배를 피우지 않습니다.”

그러나 금연외에 유 회장은 실제로 별도의 건강관리를 하지 않는다. 주량은 예전보다 줄였지만 ‘일의 양’은 마찬가지다. 유회장은 아침 7시면 기상해 매일 구로동의 회장실에 출근하고, 오전, 오후 공장을 돌아보고, 사업관계 인사들을 만나고 다닌다. 그리고 80중반의 고령임에도 딱히 아픈 곳이 없을 정도로 건강하다. 무릎은 지금도 뛰어다닐 정도고, 당뇨기가 조금 있지만 그리 심각하지는 않다고 한다. “매년 한차례 집사람(이현수 여사)과 해외여행을 떠나요. 이것도 다 건강하기 때문에 가능한 일 같습니다.”

유 회장에게 올해 계획을 묻자 곧바로 ‘중소기업의 활성화’라는 대답이 돌아온다. “중소기업이 발전해야 나라가 부강해집니다. 중소기업의 활성화를 위해 여생을 바칠 계획입니다.” 그 말을 하는 노신사의 눈이 ‘젊은 사업가’ 못잖게 형형한 광채를 발했다.

이경택기자 ktlee@munhwa.com

출처 : 문화일보 2007-03-02

원문보기 : http://www.munhwa.com/news/view.html?no=20070302010328330110022

평생금연… 걷기가 최고 - ㈜ 삼화인쇄 유기정 회장 (85세) / (경제 49) 동문


서울 구로동의 ㈜삼화인쇄 작업장에는 오전, 오후 2차례 마치 중국의 등소평을 연상시킬 정도로 체구가 자그마한 노인(155㎝)이 작업복차림으로 모습을 드러낸다. 그리고 직원들을 찾아다니며 일일이 “수고하십니다”라는 인사를 한다. 주인공은 바로 이 회사의 창업자인 유기정(85) 회장.

“건강관리에 걷기 운동만큼 좋은 것이 없는 것 같아요. 그렇게 공장을 돌아보는데 1시간 정도 걸리는데 그또한 적지 않은 운동량이죠.”

유기정 회장은 ‘중소기업의 모범답안’을 우리 경제계에 확실히 제시한 인물이다. 그는 1954년 5명의 직원과 함께 삼화인쇄㈜와 ㈜삼화출판사를 창립, 종업원 500여명에 연매출규모 500억원에 이르는 건실한 중소기업으로 키웠다. 특히 이 회사는 1998년 미국 타임라이프사에 타이타닉호관련 화보책자 60만부를 인쇄, 수출하는 등 내수 일색이었던 인쇄분야에서 수출의 길을 열어놓은 기업으로 꼽힌다. 이같은 실적에 따라 1998년엔 ‘1000만불 수출의 탑’을 수상하기도 했다. 또 중소기업협동조합중앙회 회장(1980~88년)으로 국내 중소기업의 발전을 직접 선도하기도 했다.

“사실 별도로 몸 관리를 해온 적이 없어요. 집안 형편이 어려워 잘 먹고 크지도 못했고, 젊어서는 또 술도 많이 마셨죠. 국회에 등원해 한창 정치판을 누빌 때는 양주 1병이 기본이었어요. 그래도 굳이 꼽자면 1962년경 주변 선배의 권유로 시작한 골프 정도죠.”

유 회장은 고향인 전주에서 힘겨운 어린 시절을 보냈다. 연초사업으로 큰돈을 만졌던 부친이 일본의 ‘전매령’공포로 사업을 접으며 가세가 기울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학업도 공업학교를 마친후 전매청 직공으로 곧바로 취직해 집안을 도와야 했다.

“아마 평생 담배를 입에 안 문 것도 건강에 도움이 됐을지 모르죠. 1942년경 독립운동을 하겠다는 결심아래 혈서를 쓰고, 무작정 상경했어요. 그때 성공할 때까지는 담배를 피우지 않겠노라고 스스로 약속했죠. 그런데 독립운동에 직접 참여를 못했어요. 그 이후로 아직 담배를 피우지 않습니다.”

그러나 금연외에 유 회장은 실제로 별도의 건강관리를 하지 않는다. 주량은 예전보다 줄였지만 ‘일의 양’은 마찬가지다. 유회장은 아침 7시면 기상해 매일 구로동의 회장실에 출근하고, 오전, 오후 공장을 돌아보고, 사업관계 인사들을 만나고 다닌다. 그리고 80중반의 고령임에도 딱히 아픈 곳이 없을 정도로 건강하다. 무릎은 지금도 뛰어다닐 정도고, 당뇨기가 조금 있지만 그리 심각하지는 않다고 한다. “매년 한차례 집사람(이현수 여사)과 해외여행을 떠나요. 이것도 다 건강하기 때문에 가능한 일 같습니다.”

유 회장에게 올해 계획을 묻자 곧바로 ‘중소기업의 활성화’라는 대답이 돌아온다. “중소기업이 발전해야 나라가 부강해집니다. 중소기업의 활성화를 위해 여생을 바칠 계획입니다.” 그 말을 하는 노신사의 눈이 ‘젊은 사업가’ 못잖게 형형한 광채를 발했다.

이경택기자 ktlee@munhwa.com

출처 : 문화일보 2007-03-02

원문보기 : http://www.munhwa.com/news/view.html?no=20070302010328330110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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