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인! 국민인!!
“공직자는 公私 구분하고 솔선수범 해야”
- 06.05.03 / 박정석
▲ 정성진 청렴위 위원장은 공직자의 청렴을 주관하는 위치에서 일하는
까닭 에 사무실에 백련강(百鍊鋼)이라는 글귀까지 써놓고 철저한 자기 수련을 하고있다. 사진촬영을 위해 포즈를 잡아달라고 하자 몹시 쑥스러워 했다. - 김선규기자 |
존경받는 원로가 없는 시대라고 한다. 극한 적 이념대립과 정치적 반목의 와중에 존경받을 만한 원로가 남아 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사표가 될만한 원로가 사라짐으로써 갈등 과 대립의 완충지대가 없어져 우리 사회의 파열음은 커져만 가 고 있다. ‘원로 부재의 시대’ . 문화일보는 아직도 존경받고 있는 각계의 원로들을 찾아 격주로 화요일마다 2일 신설된 ‘나 의 일, 나의 길’ 면을 통해 소개하기로 했다.
대검 중수부장과 국민대 총장을 역임한 정성진(66) 국가청렴위원 회 위원장은 후배 검사들로부터 여전히 존경받는 몇 안되는 검찰 원로중 한명이다. 부정부패 척결이 국가적으로 큰 과제인 가운 데 3·1절 골프파동, 이명박 서울시장 황제테니스 논란 등 공직 자의 처신과 관련한 현안이 잇따라 불거지고 있다. 정성진 청렴 위위원장을 지난달 28일 서울 계동 사무실에서 만나 공직자의 바람 직한 처신 등에 대한 생각을 들어보았다.
―위원장님이 참여정부의 공직을 맡은 것이 뜻밖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습니다.
“안 갈수 있지 않았느냐고 말하는 사람이 더러 있습디다. 이 정부에 비판적인 사람들이 그러는데… . 제 생각은 다릅니다. 벼 슬 욕심이 남아서 이 자리를 맡은 것이 아니거든요. 검사생활 25 년에 검사장까지 지냈고 국민대 총장을 역임한 것으로 (벼슬은)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소명이라고 얘기하면 거창하고… . 운 명으로 받아들였습니다.” ―지금 청렴위에서는 이해찬 전국무총리의 3·1절 골프파동, 이 명박 서울시장의 이른바 ‘황제 테니스’ 논란, 이강철 청와대 정무특보의 청와대앞 횟집 개업 등 여러 현안을 조사중입니다.
하지만 여권 인사들과 야당쪽에 대한 형평성 시비도 있었는데요.
“걱정하지 마십시요. 법과 원칙을 따르되 그런식으로 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대통령도 청렴위의 독립성과 공정성을 존중하고 있습니다.” ―이 전총리의 3·1절 골프 파동이후 공무원들의 골프를 사실상 전면 금지하는 방침을 발표했다가 청와대 관계자의 핀잔을 듣고 거두어들이는 등 ‘약한 모습’ 을 보였다는 지적이 있었지요.
“공무원들의 골프를 사실상 전면 금지한다는 것은 잘못 전달된 것입니다. 정확한 내용은 공직자들이 직무상 관련이 있는 사람 들과 골프 치는 것을 금지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이는 기존의 공 무원 행동강령의 정신으로 보아도 당연한 것입니다. 가족, 친지 나 동창 또는 정책 협의과정에서 사교로 하는 골프는 여전히 허 용되고 있습니다. 문제의 청와대 관계자는 취지를 정확히 모르고 말 한 것입니다. 신경쓰지 않습니다.” ―위원장님도 골프를 치시죠? 한달에 몇번 정도나 골프장에 가 십니까.
“배운 지 25년 정도 됐는데 지금도 80대 후반 정도의 스코어는 가능합니다. 요즘은 한달에 한두번 골프장에 나갑니다.” ―동반자는요? 내기도 하시는지.
“주로 부담없는 어릴적 친구들입니다. 때와 사람을 가리는 편 이며 친구들이니까 비용의 일부를 나누어 내는 정도의 내기도 가 끔은 합니다.” ―청렴위 산하에 공직자 비리 수사처(공수처)를 신설하는 문제 때문에 검찰과 갈등이 적지 않았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이 정권 이 검찰을 약화시키기 위해 공수처를 만든다고 의심합니다. 검찰 후배들도 불만이 있었을 것 같은데요.
“공수처는 지난번 대선에서 여야가 모두 공약했던 것입니다.
초기에 (공수처에) 수사권을 주는 문제로 검찰과 갈등이 있었지 만 기소권을 검찰에 유보하는 방안에 합의하여 국회에 제출, 논 란이 끝났습니다. 검사들은 내가 청렴위원장으로 온 뒤 오히려 안도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여야 모두 법안처리에는 소극적입니 다.?? ―1993년 25년간 몸담았던 검찰을 떠난뒤 1995년부터 국민대에서 법대 교수로 5년, 총장으로 4년을 보내셨는데요. 검찰 생활과 대학 생활을 비교 하신다면? 또 검찰 간부와 대학 총장으로서의 리더십의 차이는 무엇인가요.
“하는 일이 다르니까 직접 비교하기는 그렇고… . 저로서는 대 학생활이 더 인상에 남습니다. 공통점은 민주적 리더십만이 조직 을 제대로 이끌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항상 앞장서서 모범을 보이 고 상대방의 의견을 존중하고 들어줄 자세가 돼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무조건 따라가기만 해서는 안되고 필요한 순간에는 결단 을 내려야 합니다.” ―대학 개혁이 화급한 국가적 과제로 부각되고 있는데요.
“분야별로 보면 가장 앞서있는 곳이 기업이고 그 다음이 정부, 마지막이 대학 등 교육계라고 생각합니다. 부패 척결에서도 가 장 중요한 것은 교육입니다. 아직도 대부분의 대학은 시스템이 아닌 인적 요소에 의존하고 있습니다. 국민대 총장으로 있던 4년 동안 시스템을 구축하기 위해 애를 많이 썼지만 쉽지 않았습니 다. 대학에도 기업적 경영을 도입해야 하지만 학문과 지성의 전당 이라는 풍토랄까 그런 것 때문에 어렵습니다. 교육개혁을 위해서 는 교육부장관은 한 5년쯤 임기를 보장해줘야 한다는 생각도 듭 니다.” ―이 정부 들어 검찰 조직과 검사들의 위기의식이 적지 않은 것 같습니다. 후배 검사들에게 해주고 싶은 이야기는 무엇입니까.
“검사는 언제나 기본과 품격을 지켜야 합니다. 검사도 가정 등 일상생활이 있지만 성직자적인 측면이 있기 때문에 처신에 있어 서 속되지 않아야 하고 가급적 범속한 시류에 휘말리지 말아야 합니다.” ―최근 정몽구 현대·기아차 회장 신병처리 방향을 놓고 수사 검 사들이 고민이 많았고 특히 정상명 검찰총장은 검찰 선배들에게 자문을 했다고 하던데 위원장님한테도 전화가 왔습니까.
“… . 고민을 많이 했을 겁니다. 그 문제로 검찰 외부인사로 구성된 검찰 자문회의까지 소집됐다고 하더군요. 다양한 의견이 나올 수 있는 문제입니다. 하지만 어떤 조직이든 어려운 상황에 처할수록 원칙에 입각해 문제를 해결할 수밖에 없는데 이번 일도 그렇게 된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1993년 단지 재산이 많다는 이유로 대검 중수부장을 물러날때 받았던 상처는 많은 시간이 흐른 만큼 다 치유가 됐겠지요.
“당시는 그런 상황을 막아주지 못했던 윗사람들에 대한 환멸이 있었던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50대에 스스로를 재충전할 전 기가 되었다는 점에서 오히려 감사해야 할 측면도 있습니다. 나 중에 만났을때 그들은 죄인처럼 미안해 하고 오히려 제가 당당해 짐으로써 자연스럽게 용서가 된 것이지요.” ―지도층 공직자의 바람직한 자세는 어떤 것입니까.
“공과 사를 철저히 구별하고 매사에 솔선수범해야 합니다. 논 어에 ‘몸가짐이 바르면 명령하지 않아도 행하고 몸가짐이 바르 지 않으면 명령을 해도 따르지 않는다(其身正 不令而行, 其身不 正 雖令不從)’ 는 말이 나오지 않습니까.” ―인생을 되돌려 다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에 입학해도 법 대에 가서 검사가 되시겠습니까.
“아뇨. 역사나 고전문학을 공부하고 싶습니다.” soo-lj@munhwa.com
정성진 위원장은 누구
‘상속재산’ 탓 중수부장 물러나 국민대 총장 등 9년 ‘강단 생활’
[문화일보 2006-05-02 16:41]
정성진 국가청렴위원회 위원장은 검사시절부터 강직하고 정확하 게 일을 처리하면서도 온화함을 잃지 않아 그를 아끼거나 따르 는 선·후배들이 유난히 많다. 정 위원장의 자기관리는 유별나다 . 지금도 ‘수분지성(守分至誠)’ 을 좌우명으로 자신의 분수나 본분을 지키기 위해 노력하고, 백련강(百鍊鋼)이라는 글을 사무 실에 걸어 놓고 끊임 없이 스스로를 연마하고 있다.
평검사 시절 일찍이 ‘확실한 검찰총장감’ 이라는 말을 듣고 다녔지만 1993년 김영삼 문민정부가 들어서면서 25년간 몸담은 검찰을 떠나야만 했다. 너무 많은 재산을 신고한 것이 이유였 다. 부정으로 축재한 것도 아니고 이승만 정권과 군사독재에 항 거한 야당 지도자 고 서민호 선생의 외동딸인 부인이 어머니로부 터 상속받은 것이었다.
그를 따르는 20여명의 후배 검사들이 돈을 모아 사준 책가방을 들고 2년간 미국 스탠퍼드 대학과 일본 게이오 대학을 연수하고 돌아와 1995년 국민대 법대 교수로 변신, 5년은 교수로, 총장으 로 4년등 모두 9년을 대학에서 보냈는데 총장을 그만둘때 많은 교수들이 남아 달라고 간청할 정도로 대학 생활도 성공작이었다.
초등학교와 중·고교때는 각종 시험에서 전국 수석을 여러차례 차지할 정도로 수재였다. 어린 시절 대구의 책방을 뒤져가며 독 서를 많이 한 탓인지 시를 좋아하는 등 문학적 감수성이 남다르 고 조예도 깊다. 연초 시무식때는 직원들에게 시를 낭송해 주기 도 하는데 특히 같은 또래인 의사출신 재미 시인 마종기의 작품 을 ?종판磯? 언젠가 서울 광화문의 한 큰 건물에 나붙은 글, “착 한 당신, 피곤해도 잊지 말아요/ 아득하게 멀리서 오는 바람의 말을” 이라는 내용으로 끝나는 ‘바람의말’ 을 쓴 시인이다.
▲1940년 경북 영천 출생 ▲경북 중·고등학교, 서울대 법대 졸 업 ▲사시 2회 합격 ▲대검 중수부 과장, 서울지검 특수 3부장 ▲대구지검장 ▲대검 중수부장 ▲국민대 법대 교수, 국민대 총장 ▲한국형사정책학회 회장, 한국형사법학회 회장 ▲한국법학원 원장 ▲2004.8~현재 국가청렴위원회 위원장
“공직자는 公私 구분하고 솔선수범 해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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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경받는 원로가 없는 시대라고 한다. 극한 적 이념대립과 정치적 반목의 와중에 존경받을 만한 원로가 남아 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사표가 될만한 원로가 사라짐으로써 갈등 과 대립의 완충지대가 없어져 우리 사회의 파열음은 커져만 가 고 있다. ‘원로 부재의 시대’ . 문화일보는 아직도 존경받고 있는 각계의 원로들을 찾아 격주로 화요일마다 2일 신설된 ‘나 의 일, 나의 길’ 면을 통해 소개하기로 했다. 대검 중수부장과 국민대 총장을 역임한 정성진(66) 국가청렴위원 회 위원장은 후배 검사들로부터 여전히 존경받는 몇 안되는 검찰 원로중 한명이다. 부정부패 척결이 국가적으로 큰 과제인 가운 데 3·1절 골프파동, 이명박 서울시장 황제테니스 논란 등 공직 자의 처신과 관련한 현안이 잇따라 불거지고 있다. 정성진 청렴 위위원장을 지난달 28일 서울 계동 사무실에서 만나 공직자의 바람 직한 처신 등에 대한 생각을 들어보았다. ―위원장님이 참여정부의 공직을 맡은 것이 뜻밖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습니다. “안 갈수 있지 않았느냐고 말하는 사람이 더러 있습디다. 이 정부에 비판적인 사람들이 그러는데… . 제 생각은 다릅니다. 벼 슬 욕심이 남아서 이 자리를 맡은 것이 아니거든요. 검사생활 25 년에 검사장까지 지냈고 국민대 총장을 역임한 것으로 (벼슬은)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소명이라고 얘기하면 거창하고… . 운 명으로 받아들였습니다.” ―지금 청렴위에서는 이해찬 전국무총리의 3·1절 골프파동, 이 명박 서울시장의 이른바 ‘황제 테니스’ 논란, 이강철 청와대 정무특보의 청와대앞 횟집 개업 등 여러 현안을 조사중입니다. 하지만 여권 인사들과 야당쪽에 대한 형평성 시비도 있었는데요. “걱정하지 마십시요. 법과 원칙을 따르되 그런식으로 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대통령도 청렴위의 독립성과 공정성을 존중하고 있습니다.” ―이 전총리의 3·1절 골프 파동이후 공무원들의 골프를 사실상 전면 금지하는 방침을 발표했다가 청와대 관계자의 핀잔을 듣고 거두어들이는 등 ‘약한 모습’ 을 보였다는 지적이 있었지요. “공무원들의 골프를 사실상 전면 금지한다는 것은 잘못 전달된 것입니다. 정확한 내용은 공직자들이 직무상 관련이 있는 사람 들과 골프 치는 것을 금지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이는 기존의 공 무원 행동강령의 정신으로 보아도 당연한 것입니다. 가족, 친지 나 동창 또는 정책 협의과정에서 사교로 하는 골프는 여전히 허 용되고 있습니다. 문제의 청와대 관계자는 취지를 정확히 모르고 말 한 것입니다. 신경쓰지 않습니다.” ―위원장님도 골프를 치시죠? 한달에 몇번 정도나 골프장에 가 십니까. “배운 지 25년 정도 됐는데 지금도 80대 후반 정도의 스코어는 가능합니다. 요즘은 한달에 한두번 골프장에 나갑니다.” ―동반자는요? 내기도 하시는지. “주로 부담없는 어릴적 친구들입니다. 때와 사람을 가리는 편 이며 친구들이니까 비용의 일부를 나누어 내는 정도의 내기도 가 끔은 합니다.” ―청렴위 산하에 공직자 비리 수사처(공수처)를 신설하는 문제 때문에 검찰과 갈등이 적지 않았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이 정권 이 검찰을 약화시키기 위해 공수처를 만든다고 의심합니다. 검찰 후배들도 불만이 있었을 것 같은데요. “공수처는 지난번 대선에서 여야가 모두 공약했던 것입니다. 초기에 (공수처에) 수사권을 주는 문제로 검찰과 갈등이 있었지 만 기소권을 검찰에 유보하는 방안에 합의하여 국회에 제출, 논 란이 끝났습니다. 검사들은 내가 청렴위원장으로 온 뒤 오히려 안도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여야 모두 법안처리에는 소극적입니 다.?? ―1993년 25년간 몸담았던 검찰을 떠난뒤 1995년부터 국민대에서 법대 교수로 5년, 총장으로 4년을 보내셨는데요. 검찰 생활과 대학 생활을 비교 하신다면? 또 검찰 간부와 대학 총장으로서의 리더십의 차이는 무엇인가요. “하는 일이 다르니까 직접 비교하기는 그렇고… . 저로서는 대 학생활이 더 인상에 남습니다. 공통점은 민주적 리더십만이 조직 을 제대로 이끌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항상 앞장서서 모범을 보이 고 상대방의 의견을 존중하고 들어줄 자세가 돼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무조건 따라가기만 해서는 안되고 필요한 순간에는 결단 을 내려야 합니다.” ―대학 개혁이 화급한 국가적 과제로 부각되고 있는데요. “분야별로 보면 가장 앞서있는 곳이 기업이고 그 다음이 정부, 마지막이 대학 등 교육계라고 생각합니다. 부패 척결에서도 가 장 중요한 것은 교육입니다. 아직도 대부분의 대학은 시스템이 아닌 인적 요소에 의존하고 있습니다. 국민대 총장으로 있던 4년 동안 시스템을 구축하기 위해 애를 많이 썼지만 쉽지 않았습니 다. 대학에도 기업적 경영을 도입해야 하지만 학문과 지성의 전당 이라는 풍토랄까 그런 것 때문에 어렵습니다. 교육개혁을 위해서 는 교육부장관은 한 5년쯤 임기를 보장해줘야 한다는 생각도 듭 니다.” ―이 정부 들어 검찰 조직과 검사들의 위기의식이 적지 않은 것 같습니다. 후배 검사들에게 해주고 싶은 이야기는 무엇입니까. “검사는 언제나 기본과 품격을 지켜야 합니다. 검사도 가정 등 일상생활이 있지만 성직자적인 측면이 있기 때문에 처신에 있어 서 속되지 않아야 하고 가급적 범속한 시류에 휘말리지 말아야 합니다.” ―최근 정몽구 현대·기아차 회장 신병처리 방향을 놓고 수사 검 사들이 고민이 많았고 특히 정상명 검찰총장은 검찰 선배들에게 자문을 했다고 하던데 위원장님한테도 전화가 왔습니까. “… . 고민을 많이 했을 겁니다. 그 문제로 검찰 외부인사로 구성된 검찰 자문회의까지 소집됐다고 하더군요. 다양한 의견이 나올 수 있는 문제입니다. 하지만 어떤 조직이든 어려운 상황에 처할수록 원칙에 입각해 문제를 해결할 수밖에 없는데 이번 일도 그렇게 된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1993년 단지 재산이 많다는 이유로 대검 중수부장을 물러날때 받았던 상처는 많은 시간이 흐른 만큼 다 치유가 됐겠지요. “당시는 그런 상황을 막아주지 못했던 윗사람들에 대한 환멸이 있었던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50대에 스스로를 재충전할 전 기가 되었다는 점에서 오히려 감사해야 할 측면도 있습니다. 나 중에 만났을때 그들은 죄인처럼 미안해 하고 오히려 제가 당당해 짐으로써 자연스럽게 용서가 된 것이지요.” ―지도층 공직자의 바람직한 자세는 어떤 것입니까. “공과 사를 철저히 구별하고 매사에 솔선수범해야 합니다. 논 어에 ‘몸가짐이 바르면 명령하지 않아도 행하고 몸가짐이 바르 지 않으면 명령을 해도 따르지 않는다(其身正 不令而行, 其身不 正 雖令不從)’ 는 말이 나오지 않습니까.” ―인생을 되돌려 다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에 입학해도 법 대에 가서 검사가 되시겠습니까. “아뇨. 역사나 고전문학을 공부하고 싶습니다.” soo-lj@munhwa.com 정성진 위원장은 누구 ‘상속재산’ 탓 중수부장 물러나 국민대 총장 등 9년 ‘강단 생활’ [문화일보 2006-05-02 16:41] 정성진 국가청렴위원회 위원장은 검사시절부터 강직하고 정확하 게 일을 처리하면서도 온화함을 잃지 않아 그를 아끼거나 따르 는 선·후배들이 유난히 많다. 정 위원장의 자기관리는 유별나다 . 지금도 ‘수분지성(守分至誠)’ 을 좌우명으로 자신의 분수나 본분을 지키기 위해 노력하고, 백련강(百鍊鋼)이라는 글을 사무 실에 걸어 놓고 끊임 없이 스스로를 연마하고 있다. 평검사 시절 일찍이 ‘확실한 검찰총장감’ 이라는 말을 듣고 다녔지만 1993년 김영삼 문민정부가 들어서면서 25년간 몸담은 검찰을 떠나야만 했다. 너무 많은 재산을 신고한 것이 이유였 다. 부정으로 축재한 것도 아니고 이승만 정권과 군사독재에 항 거한 야당 지도자 고 서민호 선생의 외동딸인 부인이 어머니로부 터 상속받은 것이었다. 그를 따르는 20여명의 후배 검사들이 돈을 모아 사준 책가방을 들고 2년간 미국 스탠퍼드 대학과 일본 게이오 대학을 연수하고 돌아와 1995년 국민대 법대 교수로 변신, 5년은 교수로, 총장으 로 4년등 모두 9년을 대학에서 보냈는데 총장을 그만둘때 많은 교수들이 남아 달라고 간청할 정도로 대학 생활도 성공작이었다. 초등학교와 중·고교때는 각종 시험에서 전국 수석을 여러차례 차지할 정도로 수재였다. 어린 시절 대구의 책방을 뒤져가며 독 서를 많이 한 탓인지 시를 좋아하는 등 문학적 감수성이 남다르 고 조예도 깊다. 연초 시무식때는 직원들에게 시를 낭송해 주기 도 하는데 특히 같은 또래인 의사출신 재미 시인 마종기의 작품 을 ?종판磯? 언젠가 서울 광화문의 한 큰 건물에 나붙은 글, “착 한 당신, 피곤해도 잊지 말아요/ 아득하게 멀리서 오는 바람의 말을” 이라는 내용으로 끝나는 ‘바람의말’ 을 쓴 시인이다. ▲1940년 경북 영천 출생 ▲경북 중·고등학교, 서울대 법대 졸 업 ▲사시 2회 합격 ▲대검 중수부 과장, 서울지검 특수 3부장 ▲대구지검장 ▲대검 중수부장 ▲국민대 법대 교수, 국민대 총장 ▲한국형사정책학회 회장, 한국형사법학회 회장 ▲한국법학원 원장 ▲2004.8~현재 국가청렴위원회 위원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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