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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우리 대학 해외 현장 취재 1] 교재·교수·강의 없다, 1년 내내 실전프로젝트

[IT교육 혁신 현장 가다] [상]
기업·대학·비영리학교 뭉쳐 '자동차 SW 기술자' 키운다

 

 


지난달 18일 오전 독일 볼프스부르크시에 있는 ‘42 볼프스부르크’ 랩에서 한국 대학생들이 직접 만든 모형 자율주행차를 시연하고 있다. 이들은 지난 1년간 폴크스바겐그룹코리아, 국민대, 비영리 코딩 학교 ‘42’가 함께 개발한 자동차 소프트웨어 인재 양성 프로그램에 참여했다. 

 


지난달 18일 오전 독일 볼프스부르크시의 ‘42 볼프스부르크’ 캠퍼스 랩. 한국 대학생 5명이 수십 명 관중 앞에 섰다. 4개월간 만든 모형 자율주행차를 시연하는 자리다. 한 학생이 컴퓨터로 프로그램을 조작하자 차량은 장애물을 피해 달리고, 주차까지 완벽히 해냈다. 지켜보던 외국인들이 질문을 쏟아냈다. “‘쿠다’(개발자용 소프트웨어)를 어느 부분에 사용했죠?” “자율주행 프로그래밍에 제일 유용했던 도구는 뭔가요?” 학생들은 30분 넘게 막힘 없이 영어로 질문에 답했다. 학생들의 발표를 참관한 폴크스바겐AG의 소프트웨어 전문가 올리버 하트콥씨는 “1년 만에 이런 프로젝트 성과를 낸 것은 놀라운 일”이라고 말했다.


이 학생들은 지난 1년간 독일에서 자동차에 특화된 소프트웨어(SW) 기술을 배웠다. 폴크스바겐그룹코리아가 국민대, 비영리 코딩학교 ‘42 볼프스부르크’와 함께 만든 프로그램(SEA:ME)에 참여한 것이다. 2022년 4명을 선발해 보냈고, 작년 파견한 2기 10명이 지난달 1년 과정을 끝냈다. 2025년까지 매년 10명씩 파견할 예정이다. 학생들의 독일 체재비는 모두 폴크스바겐그룹코리아가 댄다. 과정을 수료한 학생들이 한국 대기업과 독일 회사에 취업하면서 “견학하고 싶다”는 교육 기관들이 늘고 있다. 교육계에선 “수요가 급증하고 있는 IT 인재를 키우기 위해 사회 다양한 분야가 서로 협력하는 모델”이라는 말이 나온다.


기업과 대학, 비영리 코딩학교가 손잡게 된 건 2년 전 전화 한 통에서 시작됐다. 폴크스바겐그룹코리아가 사회 공헌 활동의 일환으로 대학생들에게 자동차 SW 기술을 가르치는 프로그램을 만들고 싶어 고민하다 국민대에 연락했다. 국민대가 인하대, 충북대 등 대학 6곳과 함께하는 ‘혁신융합대학 미래자동차 컨소시엄’의 주관 대학을 맡고 있었기 때문이다. 혁신융합대학은 여러 대학이 인적·물적 자원을 공유하고 협력하면 교육부가 예산을 지원하는 사업이다. 그때부터 폴크스바겐그룹코리아와 국민대, 42볼프스부르크는 프로그램을 짜고, 학생들을 선발했다.


교육을 맡은 ‘42′는 2013년 프랑스 이동통신 회사 프리모바일의 자비에 니엘 회장이 사비를 기부해 만든 무료 코딩학교다. 올해 도입 11년 만에 31국 54개 캠퍼스로 확산될 정도로 선풍적 인기다. 교재·교수·강의가 없는 혁신적인 ‘3무(無)’ 교육 시스템이 유명하다. 이론보다 실무에 바로 써먹을 수 있는 코딩을 가르친다. 폴크스바겐 본사가 있는 볼프스부르크 캠퍼스는 2021년 개교했다.


한국 학생들에게도 이런 ‘42′의 독특한 교육 방식을 그대로 적용했다. 1년 내내 동료들과 팀을 짜서 실전 프로젝트를 수행한다. 예컨대, ‘자동차 인포테인먼트(오디오 등 오락 장치) 시스템을 개발하라’는 과제를 받으면, 팀별로 연구해 4개월 만에 결과물을 내놓는 식이다. 가르치는 사람도, 평가자도 없다. 다른 학생들에게 묻고 서로 토론하며 배우는 ‘동료 학습(Peer learning)’을 한다.


고다현(국민대 자동차공학과 4년)씨는 “처음엔 정해진 커리큘럼도, 관리해주는 사람도 없으니까 ‘내가 제대로 하는 게 맞나’ 의문도 들었지만, 우리끼리 끊임없이 대화하며 해결하다보니 나중엔 방향이 보이더라”고 말했다. 김준호(국민대 전자공학부 3년)씨도 “기술뿐 아니라 개발자들과 소통하는 법, 프로젝트 관리 능력을 키워서 좋았다”고 말했다.


42 볼프스부르크의 프라틱 프라자파티 커리큘럼 리더는 “소프트웨어 산업계에선 원래 가르쳐주는 사람이 없고 동료에게 배워야 한다”면서 “동료 학습을 통해 곧장 취업 현장에 나갈 준비를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가르치는 사람은 없지만, 조언자는 있다. 독일 현지의 자동차 소프트웨어 기술자와 연구자 20여 명이 ‘펠로’로 참여해 커리큘럼을 같이 짜고 학생들이 필요할 때 조언해 준다. 이들 덕분에 산업 현장의 기술 변화를 그대로 학생들이 배운다. 예컨대, 메르세데스-벤츠 그룹의 소프트웨어 자회사 ‘엠비션’의 엔지니어인 배창혁씨도 펠로다. 배씨는 짬 날 때마다 베를린에서 기차를 타고 볼프스부르크까지 와서 펠로 활동을 한다. 그는 “지금 업무에 활용하는 내용을 학생들에게 그대로 알려주고 있다. 학부만 졸업한 친구들보다 큰 경쟁력을 갖는 것”이라고 말했다.


프로그램을 수료한 학생들에겐 대기업들의 러브콜이 쏟아지고 있다. 1기 수료생 4명 중 3명은 LG전자, LG에릭슨, 삼성전자 등에 취업했다. 모두 2~3군데 합격해 골라 갔다. 지난달 과정을 끝낸 2기 중에서도 이미 1명은 현대자동차에 취업했고, 1명은 폴크스바겐의 자회사 카리아드에 인턴으로 채용됐다.


폴크스바겐그룹코리아는 이달 한국에서도 ‘해커톤(’해킹’과 ‘마라톤’의 합성어·소프트웨어 프로그램 개발 대회) 형식으로 비슷한 프로그램을 개최한다.

 

 


독일 볼프스부르크시에 있는 비영리 코딩 학교 '42볼프스부르크' 전경.이 곳에서 다양한 국적의 사람들이 무료로 코딩을 배우고 있다. 국민대, 인하대 등에서 파견된 한국 대학생들도 1년 간 자동차에 특화된 소프트웨어 기술을 배운다. 

 

 


독일 볼프스부르크에 있는 '42 볼프스부르크' 사무실에서 SEA:ME 커리큘럼 리더 프라틱 프라자파티씨가 본지와 인터뷰하고 있다. 사무실 벽면을 마치 수영장처럼 꾸며놨다. 이는 '42'만의 독특한 입학 시험 이름에서 따왔다. 42는 18세 이상 성인이면 누구나 코딩을 무료로 배울 수 있지만, '피신(Piscine, 프랑스어로 '수영장'이라는 뜻)'이라는 이름의 까다로운 입학 테스트를 거쳐야 한다. 수영장에 들어가면 스스로 수영을 할 수 있듯, 누가 가르쳐주지 않아도 동료와 프로젝트를 하면서 스스로 코딩을 배운다는 뜻이다. 한국 학생들도 한국에서 이와 비슷한 코딩 테스트와 면접을 거쳐 선발됐다. 

 

 

 

 

 

 

 

 

 

 

 

 

※ 이 기사는 '뉴스콘텐츠 저작권 계약'으로 저작권을 확보하여 게재하였습니다.


 

[조선일보 우리 대학 해외 현장 취재 1] 교재·교수·강의 없다, 1년 내내 실전프로젝트

[IT교육 혁신 현장 가다] [상]
기업·대학·비영리학교 뭉쳐 '자동차 SW 기술자' 키운다

 

 


지난달 18일 오전 독일 볼프스부르크시에 있는 ‘42 볼프스부르크’ 랩에서 한국 대학생들이 직접 만든 모형 자율주행차를 시연하고 있다. 이들은 지난 1년간 폴크스바겐그룹코리아, 국민대, 비영리 코딩 학교 ‘42’가 함께 개발한 자동차 소프트웨어 인재 양성 프로그램에 참여했다. 

 


지난달 18일 오전 독일 볼프스부르크시의 ‘42 볼프스부르크’ 캠퍼스 랩. 한국 대학생 5명이 수십 명 관중 앞에 섰다. 4개월간 만든 모형 자율주행차를 시연하는 자리다. 한 학생이 컴퓨터로 프로그램을 조작하자 차량은 장애물을 피해 달리고, 주차까지 완벽히 해냈다. 지켜보던 외국인들이 질문을 쏟아냈다. “‘쿠다’(개발자용 소프트웨어)를 어느 부분에 사용했죠?” “자율주행 프로그래밍에 제일 유용했던 도구는 뭔가요?” 학생들은 30분 넘게 막힘 없이 영어로 질문에 답했다. 학생들의 발표를 참관한 폴크스바겐AG의 소프트웨어 전문가 올리버 하트콥씨는 “1년 만에 이런 프로젝트 성과를 낸 것은 놀라운 일”이라고 말했다.


이 학생들은 지난 1년간 독일에서 자동차에 특화된 소프트웨어(SW) 기술을 배웠다. 폴크스바겐그룹코리아가 국민대, 비영리 코딩학교 ‘42 볼프스부르크’와 함께 만든 프로그램(SEA:ME)에 참여한 것이다. 2022년 4명을 선발해 보냈고, 작년 파견한 2기 10명이 지난달 1년 과정을 끝냈다. 2025년까지 매년 10명씩 파견할 예정이다. 학생들의 독일 체재비는 모두 폴크스바겐그룹코리아가 댄다. 과정을 수료한 학생들이 한국 대기업과 독일 회사에 취업하면서 “견학하고 싶다”는 교육 기관들이 늘고 있다. 교육계에선 “수요가 급증하고 있는 IT 인재를 키우기 위해 사회 다양한 분야가 서로 협력하는 모델”이라는 말이 나온다.


기업과 대학, 비영리 코딩학교가 손잡게 된 건 2년 전 전화 한 통에서 시작됐다. 폴크스바겐그룹코리아가 사회 공헌 활동의 일환으로 대학생들에게 자동차 SW 기술을 가르치는 프로그램을 만들고 싶어 고민하다 국민대에 연락했다. 국민대가 인하대, 충북대 등 대학 6곳과 함께하는 ‘혁신융합대학 미래자동차 컨소시엄’의 주관 대학을 맡고 있었기 때문이다. 혁신융합대학은 여러 대학이 인적·물적 자원을 공유하고 협력하면 교육부가 예산을 지원하는 사업이다. 그때부터 폴크스바겐그룹코리아와 국민대, 42볼프스부르크는 프로그램을 짜고, 학생들을 선발했다.


교육을 맡은 ‘42′는 2013년 프랑스 이동통신 회사 프리모바일의 자비에 니엘 회장이 사비를 기부해 만든 무료 코딩학교다. 올해 도입 11년 만에 31국 54개 캠퍼스로 확산될 정도로 선풍적 인기다. 교재·교수·강의가 없는 혁신적인 ‘3무(無)’ 교육 시스템이 유명하다. 이론보다 실무에 바로 써먹을 수 있는 코딩을 가르친다. 폴크스바겐 본사가 있는 볼프스부르크 캠퍼스는 2021년 개교했다.


한국 학생들에게도 이런 ‘42′의 독특한 교육 방식을 그대로 적용했다. 1년 내내 동료들과 팀을 짜서 실전 프로젝트를 수행한다. 예컨대, ‘자동차 인포테인먼트(오디오 등 오락 장치) 시스템을 개발하라’는 과제를 받으면, 팀별로 연구해 4개월 만에 결과물을 내놓는 식이다. 가르치는 사람도, 평가자도 없다. 다른 학생들에게 묻고 서로 토론하며 배우는 ‘동료 학습(Peer learning)’을 한다.


고다현(국민대 자동차공학과 4년)씨는 “처음엔 정해진 커리큘럼도, 관리해주는 사람도 없으니까 ‘내가 제대로 하는 게 맞나’ 의문도 들었지만, 우리끼리 끊임없이 대화하며 해결하다보니 나중엔 방향이 보이더라”고 말했다. 김준호(국민대 전자공학부 3년)씨도 “기술뿐 아니라 개발자들과 소통하는 법, 프로젝트 관리 능력을 키워서 좋았다”고 말했다.


42 볼프스부르크의 프라틱 프라자파티 커리큘럼 리더는 “소프트웨어 산업계에선 원래 가르쳐주는 사람이 없고 동료에게 배워야 한다”면서 “동료 학습을 통해 곧장 취업 현장에 나갈 준비를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가르치는 사람은 없지만, 조언자는 있다. 독일 현지의 자동차 소프트웨어 기술자와 연구자 20여 명이 ‘펠로’로 참여해 커리큘럼을 같이 짜고 학생들이 필요할 때 조언해 준다. 이들 덕분에 산업 현장의 기술 변화를 그대로 학생들이 배운다. 예컨대, 메르세데스-벤츠 그룹의 소프트웨어 자회사 ‘엠비션’의 엔지니어인 배창혁씨도 펠로다. 배씨는 짬 날 때마다 베를린에서 기차를 타고 볼프스부르크까지 와서 펠로 활동을 한다. 그는 “지금 업무에 활용하는 내용을 학생들에게 그대로 알려주고 있다. 학부만 졸업한 친구들보다 큰 경쟁력을 갖는 것”이라고 말했다.


프로그램을 수료한 학생들에겐 대기업들의 러브콜이 쏟아지고 있다. 1기 수료생 4명 중 3명은 LG전자, LG에릭슨, 삼성전자 등에 취업했다. 모두 2~3군데 합격해 골라 갔다. 지난달 과정을 끝낸 2기 중에서도 이미 1명은 현대자동차에 취업했고, 1명은 폴크스바겐의 자회사 카리아드에 인턴으로 채용됐다.


폴크스바겐그룹코리아는 이달 한국에서도 ‘해커톤(’해킹’과 ‘마라톤’의 합성어·소프트웨어 프로그램 개발 대회) 형식으로 비슷한 프로그램을 개최한다.

 

 


독일 볼프스부르크시에 있는 비영리 코딩 학교 '42볼프스부르크' 전경.이 곳에서 다양한 국적의 사람들이 무료로 코딩을 배우고 있다. 국민대, 인하대 등에서 파견된 한국 대학생들도 1년 간 자동차에 특화된 소프트웨어 기술을 배운다. 

 

 


독일 볼프스부르크에 있는 '42 볼프스부르크' 사무실에서 SEA:ME 커리큘럼 리더 프라틱 프라자파티씨가 본지와 인터뷰하고 있다. 사무실 벽면을 마치 수영장처럼 꾸며놨다. 이는 '42'만의 독특한 입학 시험 이름에서 따왔다. 42는 18세 이상 성인이면 누구나 코딩을 무료로 배울 수 있지만, '피신(Piscine, 프랑스어로 '수영장'이라는 뜻)'이라는 이름의 까다로운 입학 테스트를 거쳐야 한다. 수영장에 들어가면 스스로 수영을 할 수 있듯, 누가 가르쳐주지 않아도 동료와 프로젝트를 하면서 스스로 코딩을 배운다는 뜻이다. 한국 학생들도 한국에서 이와 비슷한 코딩 테스트와 면접을 거쳐 선발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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